읽고본느낌

델마와 루이스

샌. 2024. 6. 9. 10:52

 

1991년에 나왔으니 어느덧 30년이 넘은 영화다. 감독은 리드리 스콧이고 델마 역은 지나 데이비스, 루이스 역은 수잔 서랜드가 맡았다. 브래드 피트가 제이드 역으로 짧게 나오는데 배우로 데뷔한 초창기의 브래드 피트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역이 찌질한데다 연기가 어설퍼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토록 명성이 자자한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를 이제야 찾아봤다. 역시 라스트의 충격이 큰 영화였다. 권위적인 남편을 둔 델마와 식당 웨이트리스인 루이스는 일상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난다. 해방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강간을 당하는 델마를 구해주려다 루이스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둘은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멕시코로 넘어가려던 계획도 틀어지고 둘은 그랜드 캐니언에서 최후의 선택을 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일종의 로드 무비라 할 수 있다. 미국을 서쪽으로 횡단하는 길 위에서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주체적인 의식이 깨어난다. 깨우침과 자아실현을 다루는 로드 무비 영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길은 곧 인생을 의미한다. 그들이 달리는 길 위에서의 시간은 인간 성장의 과정과 같다. 주인공이 여성이고 남성과의 대립이 자주 나오므로 페미니즘 영화로 분류해도 무난할 것 같다. 나 역시 처음부터 그렇게 알고 보았다.

 

델마와 루이스는 성격이 다르지만 서로를 보충해주는 좋은 파트너라 할 수 있다. 영화 초반은 루이스가 의젓한 반면 델마가 철부지로 그려지는데, 중반 이후에는 델마가 여정을 적극적으로 주도해 나간다. 가부장제에서 여성을 옭아매는 굴레를 주체적으로 벗어나가는 의지로 읽혔다. 델마가 강도짓을 하여 도피 경비를 마련한 것은 세상의 고정관념의 벽을 깨뜨린 상징적인 순간이다.

 

두 사람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영화를 봤는데 통쾌했던 장면은 성희롱을 일삼던 트럭 운전사를 혼내주는 장면이었다. 더럽다고 회피하지 않고 행동으로 응징하는 모습이 사이다처럼 시원했다. 30년 전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 또한 파격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장면이다. 경찰에 포위되어 절벽에 내몰린 델마와 루이스는 항복하는 대신 액셀을 최대로 밟고 달려나간다. 그리고 공중에 뜬 채 화면은 정지한다. 이탈과 비상, 초월을 이만큼 심쿵하게 보여주는 장면도 없다. 말 그대로 화룡점정이다.

 

물론 꼭 이런 선택을 했어야만 했나,라는 안타까움은 있다. 만약 우발적인 살인 뒤에 자수했더라면 정당방위가 인정되고 루이스는 얼마의 처벌을 받은 뒤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델마는 다시 감옥 같은 가정에 갇혔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말한다.

"그저 눈만 뜨고 있었을 분, 한 번도 깨어 있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어. 그러나 지금은 깨어 있어!"

 

영화를 보고 나서 안도현의 시 한 구절이 이렇게 변형되어 다가왔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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