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영화 아홉 편

샌. 2024. 6. 19. 10:43

최근 열흘 사이에 영화 아홉 편을 봤다. 극장에서 신작을 본 건 아니고 집에서 주로 넷플릭스를 통해 본 것이었다. 영화는 한 달에 한두 편을 보는 것이 고작인데 이처럼 단기간에 몰아 본 것은 드문 일이었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독서를 하기는 힘드나 영화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떠나고 싶을 때 영화에 몰입하면 번뇌에 시달리는 나를 잊게 된다. 이번 영화 아홉 편은 그런 효용성이 컸다.

 

1. 화양연화(花樣年華)

 

두 번째 보는 것이지만 처음 봤을 때가 너무 오래 되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생활 공간이나 인물의 성격에서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니 동병상련을 가진 두 남녀의 사랑을 절제있게 잘 그려낸 수작이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과 성격에 많이 공감했다. 영화의 무대가 1960년대의 홍콩이니 우리 세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랑법이다. 왕가위  감독의 연출 테크닉도 개성이 있고 좋았다. 장만옥의 뒤태와 의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 아이리시맨

 

마피아의 세계를 다룬 영화로 전문 킬러였던 한 남자의 일생을 대하 드라마의 느낌이 나게 보여준다. 상영 시간도 세 시간이 넘는다.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등의 명배우를 만날 수 있다. 1975년에 실종된 미국의 운송노조 지도자 지미 호파 사건도 자세하게 나온다. 주먹 세계를 주름잡았던 인물들이 시간이 흘러 초라한 말년을 보내는 장면에서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영화 '대부'의 현대판 버전으로 주인공들의 묵직한 연기가 볼 만하다.   

 

 

 

3. 흔적 없는 삶

 

참전군인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아버지(윌)와 함께 인적 끊긴 숲에서 살아가는 딸(톰)이 있다. 둘은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거주지가 발견되고 복지기관에 의해 사회 적응 훈련을 받게 된다. 톰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하지만 윌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획일적인 국가의 복지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보다는 나중에 만나는 캠핑장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관계가 둘의 마음을 녹여준다. 부녀가 각자의 길을 찾아 헤어지는 장면은 애틋하다.

 

 

 

4. 오펜하이머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전기 영화다. 그의 젊은 시절과 원자폭탄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사상을 검증하는 청문회 장면이 교대로 나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권력 다툼에 의해 곤경에 처하게 되는 한 과학자의 모습을 잘 담아낸 작품이다. 이제 거대 과학은 정치와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도 과학자의 이런 딜레마는 계속될 것이다. 

 

 

 

5.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패션계를 다룬 영화이니 화면은 밝고 화려하다. 하지만 미란다의 비서로 들어가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앤드리아에겐 전쟁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남친과 헤어지는 것도 마다않고 초인적인 노력으로 미란다에게 인정을 받았지만 앤드리아는 결국 자신의 진실했던 꿈을 찾아 떠난다. 앤드리아가 미란다한테 온 휴대폰을 분수대에 던지는 장면은 일품이다. 앤드리아를 맡았던 앤 해서웨이가 참 멋있게 보인 영화였다.

 

 

 

6. 포가튼 러브

 

폴란드 영화로 고전적인 향기가 나는 영화다. 저명한 외과의사가 딸을 데리고 가출한 아내를 찾아나섰다가 강도에게 폭행을 당해 기억상실증에 빠져 버린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여긴다.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뻔한 신파조로 진행하지만 인간적인 감동이 촉촉하게 가슴을 적신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전 폴란드의 전원 풍경이 무척 따스하다. 그 시절만 해도 사람 살아가는 온기가 있었다는...

 

 

 

7. 디센던트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채 죽음을 앞둔 아내의 비밀이 드러난다. 어린 딸 둘은 말썽을 부리며 종잡을 수 없는 가운데 지혜롭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남편의 이야기다. 일에 바빠 가족과 가까이 지내지 못한 삶의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뒤 사태를 수습해 나가는 주인공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포기하고 버림으로써 새로운 삶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8. 테라코타 전사들의 수수께끼

 

최근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진시황의 무덤에서 나온 테라코타 전사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 접근한다. 8천 점의 전사들이 대부분 불타고 파손된 채로 발견된 것이다. 진시황이 죽자 조고의 국정 농단으로 천하를 통일한 대제국이 하루 아침에 멸망해 버렸다. 이 영화를 보니 더욱 서안에 가고 싶다.

 

 

 

9. 인턴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니로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인테넷 쇼핑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된 70대의 벤과 회사 CEO인 줄스가 만나면서 세대간의 벽이 허물어지는 따스한 영화다. 영화 촬영 당시 나와 비슷한 또래의 드니로인데 이렇게 멋있는 노신사로 나오다니, 너무 넘사벽의 인물이다. 밝고 활달한 앤 해서웨이도 기분을 좋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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