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19

저들에겐 총이 우리에겐 빛이 / 박노해

이 한겨울에 우리 다시 만나니슬프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눈물과 미소로 너를 바라본다 용기 내줘서 고마워살아있는 네가 눈부셔우린 꼭 이겨낼 거야 저들에겐 총이우리에겐 빛이 우리,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우리, 서로가 나라를 지키고될 때까지 우리 함께 할 거야 역사의 악인은 얼굴을 바꾸며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오지만우리는 지금 살아있는 빛으로승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으니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아이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어선령들이 우리를 가호하고 있어 저들에겐 탐욕이 우리에겐 영혼이저들에겐 총칼이 우리에겐 사랑이저들에겐 파멸이 우리에겐 희망이 우리 인생의 '별의 시간'에다치지 말고 지치지 말고빛으로 모이자, 될 때까지 모이자 - 저들에겐 총이 우리에겐 빛이 / 박노해  윤석열이 지난 12월 3일에 '아닌 밤..

시읽는기쁨 2024.12.16

유유히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선정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이다. 12월 3일 이전에 고른 것이지만 묘하게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맞아떨어졌다. 어제는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국민이 준 권력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광란의 칼춤'을 추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누구의 말대로 그는 오로지 '자신을 탄핵시킬 능력'만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번 탄핵 과정에서 국회 앞에 모여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특히 이번에는 8년 전의 촛불 시위와 달리 10대와 20대의 여성들이 많이 나왔다. 정치에 무관심한 MZ세대라고 폄하했었는데 내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다양한 색깔로 빛나는 응원봉을 흔들며 시위를 축제 마냥 즐기는 그..

참살이의꿈 2024.12.15

거인의 나라 / 신경림

모두들 큰 소리로만 말하고큰 소리만 듣는다큰 것만 보고 큰 것만이 보인다모두들 큰 것만 바라고큰 소리만 좇는다그리하여 큰 것들이 하늘을 가리고큰 소리가 땅을 뒤덮었다작은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아무도 듣지를 않는작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아무도 보지를 않는그래서 작은 것 작은 소리는싹 쓸어 없어져버린 아아우리들의 나라 거인의 나라 - 거인의 나라 / 신경림  거인이 되고 싶은 욕망들이 모여 여기 한 거인을 만들었다. 그 거인은 나흘 전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거리낌 없이 너무나 당당하게, 미소까지 지으며. 거인이 하늘에서 별안간 툭 떨어질 리 없다. 그리고 우리는 박수를 쳤다.  "(거인이) 권력을 잡게 되면, 그는 어떤 죄를 지어도 괜찮은 자유를 얻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

시읽는기쁨 2024.12.08

김대중 육성 회고록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윤석열의 황당한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다. 어리석은 지도자가 나라를 어떻게 절단 내는지 생생하게 보고 있다. 반면에 이 책에서는 김대중이라는 큰 정치인의 모습이 대비되어 빛나 보였다. 우리나라 국민이 제일 좋아하는 대통령은 노무현이다. 올해 조사에서는 31%의 지지를 받았다. 그 뒤를 박정희, 김대중이 따른다. 이것은 정서적 선호도가 크게 작용한 결과인 것 같다. 능력이나 인품면에서 제일 뛰어난 대통령은 김대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더욱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은 2006년부터 1년여에 걸쳐 대통령을 인터뷰한 내용을 풀어쓴 것으로 올 여름에 한길사에서 펴냈다. 전기나 평전과 달리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니 바로 옆에서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실감이 났다. 한 인간의..

읽고본느낌 2024.12.07

청주에 다녀오다

나에게 청주(淸州)라면 교육의 도시면서 깨끗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런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예전부터 있었다. 아내와 함께 청주에 다녀왔다. 새로운 거처로 적당한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콕 집은 동네도 있었다. 가는 길에 안성의 금광호수와 진천의 배티성지에 먼저 들렀다. 5년 전에 금광호수의 박두진문학길을 걸은 적이 있지만 최근에 세워진 하늘전망대가 어떤지 보고 싶어서였다. 쌀쌀했으나 겨울 하늘의 구름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청주의 목적지는 사천동이었다. 청주의 외곽지대로 한적했으며 가까이에 성당과 병원이 있어서 우리 조건에 맞았다. 하지만 청주공항이 가까워 비행기 소음이 심한 게 단점이었다. 청주공항은 전투기도 이용하기 때문에 그 날카로운 굉음이 낯설었다. 사천동성당을 둘러보는..

사진속일상 2024.12.04

[펌]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

길위의단상 2024.11.29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한 달째 계속되는 가운데 어제는 서울대학교 교수 525명이 윤석열 정부 퇴진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전국 90여 대학에서 참여한 교수는 5천 명이 넘는다. 종교계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28일 천주교 사제 1466명이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냈다.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민심이 아우성을 외면할 수 없어 시국선언의 대열에 참여한다고 사제들은 밝혔다. 윤석열 정부로부터 민심이 떠난 것은 여론조사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 지지도가 고작 20%에 그친다. 10%대를 기록한 조사도 있었다. 이 정도면 심리적 탄핵 수준이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정부는 반성할 줄 모르고 고집을 부린다. 국..

길위의단상 2024.11.29

있는 자리 흩트리기

정치인 중에서 호감이 가는 인물이 김동연 경기도지사이다. 그분에 대해서는 매스컴에 노출되는 정도만큼만 알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좋아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지상으로는 그나마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보인다. 얼마 전에는 전국 시도지사 직무 수행 평가가 있었는데 김 지사가 1등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는 김 지사가 쓴 책이다. 무엇보다 제목에 끌려 읽어 보았다. 부제가 '나와 세상의 벽을 넘는 유쾌한 반란'이다. 내가 기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가정 환경을 극복하고 입신출세를 한 그의 삶과 생각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김 지사는 상고 출신으로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야간대학을 다니고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대목을 보면 초인..

읽고본느낌 2024.09.27

깊은 밤 / 도종환

어려서 아버지께 편지를 자주 쓴 것첫 줄을 쓰기 위해 별을 올려다본 것슬픈 밤마다 별들과 가만히 눈을 맞춘 것실패한 아버지를 찾아 떠도는어머니가 보고 싶어 혼자 조용히 운 것수업 시간에 창 밖을 자주 내다본 것화폭에 칠한 색감에 몰입하는 시간이 좋았던 것수시로 도서실로 달려가던 오후'사랑이 무성한 수풀' 같은 소설 제목에 끌려무성한이란 말과 수풀에 대해 수많은 상상을 한 것나이 들어서 결국 숲속에서 살게 되었고영혼을 편하게 하는 일이 숲의 일이란 걸 알게 된 것내 인생에서 잘한 일을 들라면나는 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진 것인내의 길이를 길게 늘여가는 게 시간이고시간이야말로 은혜롭다는 것시간이 사람을 깊게 한다는 말을 믿은 것어머니에게 여린 마음의 씨앗을 물려받은 것그 씨앗이 자라제비꽃 ..

시읽는기쁨 2024.09.15

해리스 vs 트럼프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인 해리스(Kamala Harris)와 트럼프(Donald Trump)의 미국 대통령 선거 TV 토론이 어제 있었다. 우리 시간으로 아침 10시에 시작했는데 생중계를 보느라 처음부터 끝까지 TV 앞을 지키고 있었던 건 처음이었다. 남의 나라 정치 쇼에 내가 왜 이렇게 관심이 큰지 나 스스로도 의아했다. 해리스라는 새로 등장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컸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트럼프는 워낙 비호감이라 해리스를 응원하며 토론을 지켜봤다. 노회한 트럼프를 여유 있게 상대하면서 토론을 주도해 나가는 해리스가 멋있었다. 부드러우면서 강인해 보이는 이미지도 좋았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해리스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의 국내 정책에 대한 논쟁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

길위의단상 2024.09.12

힐빌리의 노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J.D. 밴슨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1984년 생인 밴슨은 정계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정치 신인이다. 그는 2016년에 자전적 소설인 를 썼고, 2020년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유명해졌다. 이번에 밴스가 부통령 후보에 지명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보게 된 영화다. 'hillbilly'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두멧사람, 시골사람이라는 뜻으로 특히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 남부의 산악 지대 주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밴스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영화에도 이들의 삶이 궁핍하고 거칠게 그려져 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더욱 열악한 상태에 빠진 것 같다. 잘 드러나지 않는 미국의 어두운..

읽고본느낌 2024.07.28

이재명의 먹사니즘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다." 지난 10일에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재명 후보가 한 말이다. 먹사니즘/먹고사니즘은 '먹고살다'와 '-ism'의 합성어로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태도다. 또는 생계유지에 급급해 다른 것들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꺼리는 태도를 의미하기도 해서 부정적인 의미가 큰 용어다. 차기 대통령이 유력시 되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국민의 주목을 받는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강조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설마 이 후보의 본심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의문을 갖는다. 첫째, 먹사니즘이 과연 이 시대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후보는 ..

길위의단상 2024.07.14

서울의 봄

작년에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였으나 늦게야 보게 되었다. 10.26으로 '서울의 봄'이 오는가 싶었으나 전두환이 주동한 하나회의 정치군인들에 의해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나고 세상은 다시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 영화는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불법 쿠데타를 막으려 했던 수경사령관 장태완을 악과 선의 대립 구도로 짜면서 그날 밤의 9시간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인 만큼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되게 묘사한 장면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장태완과 전두환이 광화문에서 대치한 장면이 그랬다. 장태완은 그때 이미 부하에 의해 체포된 상태였다고 알고 있다. 진압군에 앞장을 섰던 수경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 헌병감 김진기 등이 힘을 못 쓴 이유는 부하들 ..

읽고본느낌 2024.06.26

유신

박정희의 유신시대는 나의 20대와 겹친다. 유신시대 7년 동안 대학생과 사병의 신분이었으니 아름다운 청춘을 암흑의 시대에서 보낸 셈이다. 보통 '10월유신'이라 부르는데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단행한 초헌법적 비상조치를 말한다.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한 1972년 10월 17일부터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의 기간이다. 이 동안 아홉 번의 긴급조치와 계엄령, 위수령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말살했다. 사학자인 한홍구 선생이 쓴 은 이 비극의 시대에 대한 기록으로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여서인지 되풀이되는 역사에 대한 비감이 서려 있다. 사건들마다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나서 내 20대를 돌아보면서 흥미롭게 읽었다. 돌아보니 197..

읽고본느낌 2024.06.25

the BUCK STOPS here!

지난 9일에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취임한 지 2년이 되는데 고작 두 번째였다. 이것만 봐도 처음에 장담했던 국민과의 소통은 무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제 불통의 이미지로 굳어 버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보다가 '역시나'라는 실망에 TV를 끄고 말았다. 대통령의 발언 내용보다 내가 주목한 것은 기자회견 전 모두 발언을 할 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팻말이었다. 거기에는 'the BUCK STOPS here!'라는 생소한 영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뜻이 무엇인지, 왜 저런 영어 문장을 내세웠는지 궁금했다. 'buck'을 사전에서 찾아봐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얼핏 든 느낌은 '내 앞에서 헛소리하지 말라!'로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갈치는 게 아닌가 ..

길위의단상 2024.05.17

포스트 트루스

우리 시대를 특징하는 단어 중 하나에 '탈진실[post-truth]'이 있다. 2016년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 post-truth'를 선정하기도 했다. 2016년은 트럼프가 등장하고 당선된 해다. 트럼프가 선거 운동 중에 한 발언의 70%가 가짜였다는 보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제는 미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세상을 보면서 누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은 죽었는가?" 는 미국의 철학자인 리 매킨타이어가 쓴 책이다. 정치적 상황을 중심으로 탈진실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한다. 지은이는 타깃은 주로 트럼프와 공화당이다. 그쪽이 일방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탈진실'의 점잖은 정..

읽고본느낌 2024.03.22

그리고 봄

조선희 작가의 따끈따끈한 소설이다. 소설의 무대가 2022년으로 작금의 정치 상황을 앓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당선되었고 그를 반대한 사람들은 집단우울증에 빠졌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TV 뉴스를 보지 않게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희와 영한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딸 하민은 3번을 찍었고, 아들 동민은 소위 '2찍'이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부니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은 이런 부모 자식간의 갈등에 더해 청년 세대의 진로와 취향, 퇴직 후의 생활 등의 우리가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를 경쾌한 필치로 다룬다. 정희는 기자 출신의 엘리트 엄마이고, 영한은 은퇴한 전직 교수다. 하민은 커밍 아웃하고 동성 연인과 함께 독일로 떠났고, 동민은..

읽고본느낌 2024.03.16

견리망의(見利忘義)

'교수신문'에서는 연말이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올해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의로움을 잊고 이익만 챙긴다'는 뜻으로, 전국 교수 1,300여 명이 뽑았다.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로 유명한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뒤집어서 만든 말인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를 들라면 극심한 이기주의가 아닐까 한다. 옛날이라고 인간성이 달랐을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의로움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제는 다들 철면피가 되고 뻔뻔해졌다. 도시와 시골, 잘 사는 이나 못 사는 이나 차이가 없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었고,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되었다. 견리망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정치판이다. 자신이나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는 의로움 따위는 헌신짝만..

길위의단상 2023.12.17

정치인의 얼굴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이웃에 살아 가끔 길에서 만나는데, 서로 목례를 하며 짧은 인사말 정도는 나눈다. 이분이 처음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지인의 친구여서 짧은 상견례를 가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여서 거리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때는 인상이 후덕하고 푸근해서 누구에게서나 호감이 간다는 말을 들었다. 당선이 된 데는 그런 이미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무난한 의정 활동에 재선을 했으니 어느덧 8년이 흘렀다. 그런데 요사이 얼굴은 많이 지치고 찌들어 보였다. 얼마 전에는 뒷산에서 마주쳤는데 표정이 영 말이 아니었다. 미소는 짓지만 얼굴에 배인 어두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8년 전과 비교하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싶었다. 이분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정치인이 그..

길위의단상 2023.11.09

여름 하늘

염제(炎帝)의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다. 한낮 땡볕 가운데를 걸어도 긴 시간이 아니라면 즐길 만하다. 집 에어컨도 이제 한철 소명이 끝났다. 대신 선풍기 도움은 당분간 받아야겠지. 여름 하늘이 아름답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 뭉게구름이 떠 간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풍경만 바라봐도 지리할 수가 없다. 길을 걸으면서 연신 하늘로 고개를 쳐든다. 그때마다 하늘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변화무쌍한 청(靑)과 백(白)의 그림판이다. 가을이면 운동회가 열렸다.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아이들은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고함치며 뛰놀았다. 청과 백으로 나눈 것이 하늘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지만 하늘은 누가 누굴 이기는 마당이 아니다. 청과 백이 어울리는 조화의 세계다. 지..

사진속일상 2023.08.18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정치는 프레임 싸움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프레임의 주도권을 선점하는 진영이 여론을 이끌어 나간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외친들 도리어 코끼리를 생각나게 해 줄 뿐이다. 반대하는 순간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되어 있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쓴 이후 '프레임'이란 말은 유행어처럼 번졌다. 벌써 20년 전이다. 그때는 미국에서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고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면서 민주당이 참패한 때였다. 진보 진영이 왜 졌는지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프레임'이라는 핵심 단어로 풀고 있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한 결과의 ..

읽고본느낌 2023.08.12

어머, 몰랐어 / 박봉준

동네 미장원에서 할머니들이 수군거리는데 선거에 나온 아무개가 빨갱이라여 빨갱이를 뽑으면 큰일 나지 암, 나라가 망하지 머리를 말다 듣기 민망스러운 미장원 원장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는 윤사월 해처럼 길어지고 그래서 그런지 그 빨갱이가 보기 좋게 떨어졌는데 나중에 미장원 원장이 친구 사이인 그 빨갱이 부인을 만나 할머니들 얘기를 했더니 어머, 내 남편이 빨갱이가 된 걸 우리는 여태 몰랐어 선거 후에도 기력이 남았는지 한바탕 휘도록 웃었다는 빨갱이 부인 - 어머, 몰랐어 / 박봉준 미국에 살고 있는 대학 동기가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어제 양재동 모임에 나왔다. 이젠 고국에 돌아와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사회주의 국가가 될 텐데 겁이 나..

시읽는기쁨 2023.07.07

위기의 민주주의

2019년에 제작된 브라질 정치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넷플릭스에 올려져 있다. 2002년에 룰라가 군사 독재를 물아내고 브라질의 대통령이 된 때로부터, 룰라의 후계자였던 지우미가 탄핵되고 부패 스캔들로 룰라가 구속된 2018년의 상황까지를 다룬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겹쳐보이면서 먼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았다. 브라질은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룰라가 세 번째로 당선되었지만 극우인 보우소나루와는 1.8% 차이였다. 보우소나루의 극력 지지층에서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최근에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식이면 룰라가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파 기득권층이 다시 어떤 음모를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치 구조상 안정을 찾기는 쉽지..

읽고본느낌 2023.03.23

다읽(17) - 동물농장

학창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동물들의 삽화가 들어간 책이었다. 완전한 번역본이었다기보다 다이제스트 판이었는지 모른다. 주인에게 반란을 일으킨 동물들의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지 않았나 싶다. 50여 년이 넘어 다시 읽어보니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냉소적인 정치 풍자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반골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사회주의자로서 러시아 혁명에 기대를 걸었으나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저지른 만행에 환멸을 느꼈다. 마르크스가 역사의 필연으로 예견한 노동자와 인민의 낙원은 한 사람의 권력 야욕 앞에서 무참하게 스러졌다. 그는 부패하는 혁명의 과정을 똑바로 목격했다. 을 통해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혁명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 필..

읽고본느낌 2023.02.19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씨가 쓴 진보 비판서다. 문재인 정권 때 한국일보에 연재된 칼럼을 묶었다고 한다. 진중권 씨는 한때 진보 논객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극우 논객'(?)으로 돌변해서 당황했었었고 지금도 의아한 건 마찬가지다.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들어볼 만한 목소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읽게 되었다. 책을 내려고 쓴 글이 아니라서인지 논리적인 짜임새는 좀 엉성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상황을 다룬 내용도 상당 부분 나온다. 어쨌든 문재인 정권과 진보 진영의 비판이 중심이다. 진중권 씨가 집중적으로 까는 것은 진보가 집권하면서 등장한 팬덤 정치다. 팬덤(fandom)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다. 팬덤은 배타적인 나르시시즘을 바탕으로 하기에 정치에서는 진..

읽고본느낌 2023.01.20

성남 희망대공원

성남 단대동에 살고 있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인근에 있는 희망대공원을 찾았다. 희망대(希望臺)공원은 1970년대에 성남시에서 만든 최초의 공원이라고 한다. 지하철 단대오거리역에서 가깝다. 희망대공원은 성남 제1공단근린공원과 붙어 있다. 이름으로 봐서 옛날에 이곳에는 공단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살지 않았으니 옛 모습과 비교는 어렵지만 면모가 일신된 것은 확실하다. 두 공원이 맞붙은 곳에 이 원형 육교가 있다. '공단'과 '희망'을 연결해 주는 다리다. 원형 육교에서 바라본 공원 아래쪽 모습이다. 배롱나무는 하얀 겨울 외투를 입고 있다. 희망대공원은 얕은 야산에 조성되어 있다. 산을 끼고 도는 산책로다. 산 꼭대기에는 공원 표지석과 팔각정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성남에 산 적이 있었다. 그때의..

사진속일상 2023.01.10

빈곤 포르노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요사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통령 부부가 캄보디아를 방문했는데 김건희 여사가 독자 일정으로 병원을 방문해서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을 안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부터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이 이것을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비판하니까, 여당에서는 여성 혐오와 아동 비하라고 발끈했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는 모금 유도를 위해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영상을 말하는 용어다. 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이런 행위를 '빈곤 포르노'라는 개념으로 비판적으로 사용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먹방을 'Korean Food Porno'로 부른다고 한다. '포르노'가 우리가 상상하는 외설..

길위의단상 2022.11.17

정치적 부족주의

"인간에게는 부족 본능이 있다. 우리는 집단에 속해야만 한다. 우리는 유대감과 애착을 갈구한다. 그래서 클럽, 팀, 동아리, 가족을 사랑한다. 완전히 은둔자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도사나 수사도 교단에 속해 있다. 하지만 부족 본능은 소속 본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 본능은 배제 본능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은 자발적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어떤 부족은 즐거움과 구원의 원천이고 어떤 것은 권력을 잡으려는 기회주의자들의 증오 선동이 낳은 기괴한 산물이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건 일단 속하고 나면 우리의 정체성은 희한하게도 그 집단에 단단하게 고착된다. 가령 개인적으로는 얻는 것이 없다고 해도 내가 속한 집단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맹렬하게 나서고, 별다른 근거가 없는데도 외부인에게 징벌적인 위..

읽고본느낌 2022.10.23

할아버지는 왜 화를 내요?

"할아버지는 왜 자꾸 화를 내요?" 어느 날 손주한테서 느닷없이 받은 질문이다. 뜨끔했다. 아내에게서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겠지만 손주는 달랐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 손주가 반문했다. "답답해서 그래요?" 맞았다. 조금 전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다. 질문이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화가 날 때 참을 수 없나요?" 나는 겨우 답했다. "열에 아홉은 참고 한 번 화를 내는 거야." 옆에 있던 아내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과 동시에 손주가 말했다. "내가 볼 때 열이면 두 번만 참고 여덟 번은 화내는 것 같아요." 옆에서 아내는 손뼉을 쳤다. 손주한테서까지 이런 말을 듣는 게 너무 창피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내가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

길위의단상 2022.10.07

200일 & 50일

200일은 TV를 멀리 하고 있는 날짜다. 올 3월 9일에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바라지 않던 후보가 당선되었다. 표차는 0.7%였다. 앞으로 5년 동안 TV 화면으로 그를 봐야 하는 일이 견딜 수 없었다. TV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00일이 지났다. 단, 스포츠 중계는 예외다. PBA 당구대회가 열리면 어쩔 수 없이 TV를 켠다. 다음달부터 배구 시즌이 시작된다. 여자배구를 좋아하니 자주 TV 앞에 앉게 될 것이다. 그 정도는 허용하기로 한다. 왜 그 사람이 싫을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적은 없었다. TV를 안 보겠다는 결심도 처음이었다. 요사이 그 사람이 보여주는 처신을 보면 내 판단이 얼토당토한 것은 아니다. 부인한테서 받는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TV를 보지 않으니..

참살이의꿈 202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