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05

내가 대통령이면 / 김해자

큰일은 절대 하지 않으리 정권 바뀔 때마다 뒤집어엎는 백년지대계 같은 일에 손대서 안 그래도 어질어질한 우리 아이들 갈팡질팡 비틀대지 않게 하리 다만 아주 작은 것,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인데 작고 작아 티도 안 나는 일 몇 가지는 해야지 교실마다 황토빛 은은히 도는 커튼을 치고 향나무 침대 몇 개 두어 쉬는 시간에 아이들 쉬어가게 해야지 졸려서 눈꺼풀이 내려앉는 아이들 몇 분이라도 허리 쫙 펴게 글자로 하는 공부에 흥미 없는 아이들은 들로 밭으로 쏘다니게 해야지 가만히 누워 하늘 올려다보게 가만히 앉아 이슬 한 방울 바람이 흔드는 쑥잎 하나 가만히 들여다보게 들여다보다 들여다보다 그 속으로 들어가도록 쑥부쟁이 되고 개미가 되고 흙이 되고 하늘이 되고 야생 고양이 되고 바람이 되고 바람과 하늘의 영혼으로 ..

시읽는기쁨 2010.07.08

1 번

우연치고는 참으로 절묘하지 않니? 어뢰 파편에 적혀있다는 파란색의 '1 번'이라는 글씨 말이야. "찍어 찍어 1 번 좋아 1 번 좋아 파란당 파란당이야 무조건 무조건이야." 적개심과 불안을 부추기고, 간첩도 잡고, 전교조도 때려잡고, 이러면서 그날을 향하여 점점 에스컬레이터 시키겠지. 정점을 향해. 어제 MB는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어. 왠지 소름이 끼치더라. 그러나 난 내기 걸 수 있어. 그날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거라는 걸. 이런 걸 보면 역사는 코미디 같아. 우린 그 소극(笑劇)의 꼭두각시, 그런데 찬 바람이 너무 거세다. 슬프고 우울해. 많이 슬프고 우울해.....

길위의단상 2010.05.25

[펌] 노무현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난 그 흔한 노빠도 아니고 좌빨도 아니다. 그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전쟁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30대 청춘이다. 김영삼보다 김대중이 좀 더 똑똑해 보여 찍었고 수구꼴통이란 닉네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나라당이 싫어서 김대중을 찍었고 이회창보다는 노무현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좀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해서 그에게 표를 줬을 뿐이다. 저번 대선에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애초부터 도덕성이 결여된 수준 이하의 후보에게 차마 표를 줄 수 없어 어쩔수 없이 정동영을 찍었던 그런 힘없는 백성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고 있노라면 막장드라마도 울고 갈 굵직굵직한 미니시리즈들이 씌여지고 있는 듯하다. 본시 막장드라마일수록 결과는 뻔한데 하루하루 놓치기 아까운 ..

길위의단상 2009.05.03

사르코지의 익살

오늘 아침 신문에 재미있는 사진이 실렸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국빈방문하는 환영식에서 부인의 손을 슬그머니 잡으니까 브루니의 얼굴이 빨개지며 겸연쩍은 듯 살짝 고개를 숙인 장면이다. 대통령의 익살스런 표정도 재미있고, 그에 반응하는 브루니의 표정도 귀엽다.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은 동양인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엄숙한 환영식장에서 저런 파격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사르코지에 대해서는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친미적인 정강 정책으로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는데 사람 자체는 무척 진솔해 보인다. 적어도 위선이나 가식이 느껴지지 않아 좋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부인과 이혼하고 열세 살 아래의 모델 출신 미녀와 결혼해서 화제가 되었다. 만약 한국에서 그랬다면 ..

길위의단상 2008.06.24

정과 정의 대결

어제는 제 18대 총선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곳은 정동영 씨와 정몽준 씨가 출마해서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은 지역구였다. 덕분에 TV로만 보던 두 사람과 악수도 해 보았다. 가까이서 본 그분들은 선거 운동에 지쳐서인지 무척 안스럽게 보였다.워낙 유명인들이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과는 뭔가가 다르리라는 선입견이 무의식 중에 있었는데 그저평범한 이웃 사람의 모습이어서 조금은 의외였다.그분들을 통해서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명인들에 대한 환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대결의 승패는 여론조사에서부터 예상된 것이었다.지역구민들이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은 지역의 일꾼을 뽑는 측면이 강하므로힘 있는 여당 의원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당선된 정몽준 씨..

길위의단상 2008.04.10

영혼이 없는 사람들

얼마 전 서울대 교수 80여 명이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을 보고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대운하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닌 진실과 거짓, 과학과 허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학자적 양심에 따라 침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성인들의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는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대운하 논쟁은 지금 수면 아래로 잠복한 상태지만, 또 하나 새 정부 들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영어교육이다.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인수위원회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 중의 하나가 교육개혁이고, 그 중에서도 영어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나는 왜 우리가 영어에 그렇게 올인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영어몰..

길위의단상 2008.02.02

잔치 뒤의 씁쓸함

대선 잔치판이 끝났다.오후 여섯 시, 투표가 끝난 뒤 예측 발표를 듣고는 기분이 우울해져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 와중에도 잠이 오는 것이 신기했다. 대통령 자리는 하늘이 점지해줘야 하는가 보다. 정권교체와 경제가 화두인 시대에서 이명박 같은 사람이 당선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야속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민심이 천심이라지만 나로서는 거의 절반에 이르는 득표로 그가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이 도시 이해되지가 않는다. 이번 선거판에서 최대의 화두는 경제였고, 이 문제 앞에서 모든 이슈는 묻혀 버렸다. "잘 살게만 해 주면 됐지, 다른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버스의 라디오로 들린이 한 마디가 나를 더욱 섬찟하게 한다. 우리의 가치관이 언제 이렇게 형이하학적..

길위의단상 2007.12.20

절망이 아니었던 시대가 있었던가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후배 K가 현실 상황의 절망감에 대해 울분을 토로했다. 늘 올곧게 생각하고 살려는 사람이라 답답해 하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고 공감이 되었다. 선거로 과연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도 나왔고, 대중들 수준이 이런 단계에 머물러서는 결코 민의가 역사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데 대해서도 공감했다. 이 시대의 화두는 오직 경제다. 코 앞에 닥친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가 최대 이슈가 되고 있고, 국민들 관심사도 부자가 되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 국민들 머리 속에는 오직 먹고사니즘 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는극심한 생존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로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사람들은 제 덫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그런 현실의 아귀다툼에서 한 발짝 물러..

길위의단상 2007.12.06

문국현의 출사표

새 세상에 대한 갈망이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 정치판에서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이 지금껏 증명되고 있지만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정치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데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한 정치적 좌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며칠 전 문국현이라는 분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들의 잠들어 있는 의식을 깨우는 태풍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미풍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분의 발언을 들으며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내용에 눈이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았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아직 멀고, 그리고 여나 야나 기성 정치 노선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진 나 같은 사람들이라면 주목할 만한 후보 출현..

길위의단상 2007.08.29

민주화 20년의 경험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한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라는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첫 회는 정치 분야로 어제 역사박물관에서 ‘민주화 20년의 경험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나?’라는 주제로 열렸다. 주제발표는 고대 최장집 교수, 토론자는 한림대 최태욱 교수, 경향신문 이대근 편집부국장이었고, 정관용 시사평론가가 사회를 보았다. 평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강연과 토론을 들으면서 더욱 참담한 기분에 빠졌다. 6.10 항쟁 이후로 20년이 지났고, 소위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도 10년이 되었건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고, 개혁에 대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으니 어찌 보면 배반당한 혁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를 외쳤던 그들은 이제 기득권 세력이 되어 민중을 외..

사진속일상 2007.06.28

산문시 /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

시읽는기쁨 2007.01.11

대통령의 말

대통령의 말이 또 회자되고 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보수언론이나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언론은 대통령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듯 사사건건 말꼬리 잡듯이 사설과 칼럼을 통해 모욕적인 언사조차 서슴치 않고 있고, 일반인들도 TV에 나온 몇 초의 문제되는 장면만 보고는 비난 일변도다. 대통령이 욕먹고 있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너무 심하다 싶은 심정은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발언이었는지 인터넷 동영상으로 1시간 8분에 이르는 연설을 전부 들어 보았다.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한 연설인데 위원들의 질문이나 건의사항에 답하는 형식으로 주로 안보, 국방에 대한 대통령의 소신을 밝힌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군데군데 문제의 발언이 섞여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은 외교안보를 중심으로 한 국정 ..

길위의단상 2006.12.25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타는 목마름으..

시읽는기쁨 2006.09.10

극단 '여의도'

70년대 후반에 있었던 일이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선배 한 분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전날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귀가했는데 집에 들어오지를 않은 것이다. 인품이 워낙 중후하고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신 분이라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했다. 주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엉뚱한 일을 저지를 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고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도대체 행적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갔을 때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유가 궁금했지만 이상하게도 모두들 입을 닫으며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했다. 선배님 집에서도 찾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분위기가 며칠 지나고 나서야 대체적인 진상을 알..

길위의단상 2004.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