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20

안녕들 하십니까?

어느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가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과 부드러운 내용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보통 대자보라고 하면 운동권 용어를 쓰는 격문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변했다. 원리주의적 이념이나 투쟁적 언어는 통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피부에 닿는 소통과 공감의 언어가 아니면 관심을 끌 수 없다. 학생의 대자보는 사회 현실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학우를 비판하기에 앞서 안녕들 하시냐고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니 마음이 열린다. 안녕하지 못하다고 응답하는 많은 대자보가 이를 증명한다. 전에 진보 쪽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분이 방송 연설 때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란 멘트를 해서 신선한 느낌을 주었던 것과 비슷하다. 이젠 혁명도 감성..

길위의단상 2013.12.20

우리 시대

아일랜드에 가 있는 친구가 한국이 왜 이리 어수선하냐며 메일을 보내왔다. 차라리 인터넷이 없었으면 싶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봤을 때는 거의 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나 보다. 신부가 강론 중에 한 시국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국가보안법으로 잡아들이려 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종북'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너무 답답하다. JTBC '뉴스9'에서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신부가 가난한 이에게 빵을 주면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지만, 그가 왜 가난한 것인지 사회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빨갱이라 비난을 듣게 된다."

길위의단상 2013.11.28

귀태(鬼胎)

민주당 홍익표 대변인의 '귀태' 발언으로 정국이 달아오르더니 이제 진정되어 간다. 여당이 국회 일정을 거부하자 문제의 발언을 한 야당 대변인이 사퇴하고 대표가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마무리되고 있다. 홍 대변인의 발언은 이랬다. "작년에 나온 책 중에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에 귀태(鬼胎)라는 표현이 있다. 귀신 귀(鬼)자에다 태아 태(胎)자를 써서,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당시 일본제국주의가 세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에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아베 총리는 시기 노부스케의 외손자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의 장녀이다." 귀태라는 말의 ..

길위의단상 2013.07.15

논어[24]

어느 사람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정계에 나서지 않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옛 글에 '효도로다! 효도로 형제끼리 우애하며 집안일을 보살핀다' 하였으니, 이것도 다스리는 것인데, 왜 꼭 정계에 나서야만 되나?" 或 謂孔子曰 子奚不爲政 子曰 書云 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 爲政 14 공자에게 있어 사람살이의 기본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효제(孝弟)가 알파요 오메가다. 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하는 마음이라면, 밖에서도 어른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을 믿고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확장되어 나간 사회가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공동체였다. 결국 정치의 근본도 효와 제다. 공자에게 가(家)와 국(國)은 규모만 다를 뿐 질적인 차이가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

삶의나침반 2013.04.04

논어[23]

자장이 벼슬 구하는 길을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많이 듣되 의심나는 점은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그러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많이 보되 갈피를 못 잡겠거든 아예 해볼 생각을 마라. 그러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에 빈틈이 적고, 행동에 거침새가 적으면 벼슬이란 저절로 굴러들게 마련이다." 子張 學干祿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行寡悔 祿在其中矣 애공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이 따르게 됩니까?" 선생은 대답하기를 "곧은 사람을 골라 굽은 자 위에 두면 백성들이 따르고, 굽은 자를 골라 곧은 사람 위에 두면 백성들은 따르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조諸枉 則民服 擧枉조諸直 則民不服 - 爲政 13 벼슬을 구하려는 제자와, 사람을 쓰려는 애공의 서..

삶의나침반 2013.03.28

논어[13]

선생님 말씀하시다. "법령만을 내세우면서 형벌로 억누르면 백성들은 슬슬 빠질 궁리만 찾는다. 곧은 마음으로 지도하면서 예법을 가르치면 백성들은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 爲政 3 새 대통령 당선자가 내세우는 게 '법과 원칙'이다. 그러나 법과 원칙이 누구의 편이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강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엄격한 게 법이고 원칙이었다. 지배자, 통치자, 권력자들은 '법대로'를 외친다. 그 그늘에서 생기는 민중의 눈물을 부디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약육강식의 혼란기였다.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았다. 실제로 진시황은 법가(法家)의 논리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해 천하를 통일했다. 그런데 공자는 덕치(德治)와 예치(..

삶의나침반 2013.01.21

토론TV가 있었으면

이번 대통령 선거에 누가 당선되느냐에 관심이 있다 보니 낮에도 TV를 자주 보게 되었다. 지상파 방송은 대선 관련 보도를 거의 안 해서 종편을 주로 봤다. 종편이 여당 편향이라는 걸 알지만, 여와 야를 대변하는 사람들 사이의 토론은 그런대로 봐 줄 만했다. 내가 보기에는 4개의 종편 중에서 그나마 MBN이 가장 나았던 것 같다. 선거 기간 중 종편에 자주 출연했던 사람들이 있다. 정치전문가, 정치평론가라고 부르던데 일부는 정말 자질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 치 혀만 믿고 까불어대는 세객(說客)이라 불러 적당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당파에 너무 편향적이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발언을 해서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이번에 박근혜 정권 인수위의 수석대변인으로 뽑힌 윤창중이었다. 이 사람..

길위의단상 2012.12.30

선거의 추억

제18대 대선이 끝났다. 박근혜 후보가 51.6%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비록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분이지만 축하를 보낸다. 당신을 지지하지 않은 14,950,303명이 있음을 잊지 말고, 낮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어 주길 부탁드린다.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민생, 민생 하는데 그것보다 민본(民本)이 우선이다. 나에게도 선거에 대한 직접적인 추억이 있다. 어렸을 때 일이다. 4.19 직후 시행된 지방자치제에 따라서 면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는데 선친이 거기에 출마한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는데 집안이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거린 정도와 선거 마지막 날 장면이 기억난다. 투표가 끝나고 선친은 졌을 거라며 술을 드시고 일찍 귀가해서 잠이 들었다. 개표 결과를 볼 필요도 없다고 포기..

길위의단상 2012.12.23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지난 4.11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을 색깔로 표시한 지도다. 부끄러운 우리의 현주소다. 내가 선거권을 가지고 투표를 시작한 이래 동쪽 지역은 언제나 이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세월이 흘렀는데도 똑같다. 패거리 의리도 이만하면 알아줄 만하다. 그나마 서쪽은 알록달록 물이 들고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뭘까를 생각한다. 나도 고향이 동쪽이지만 고향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물론이나 정치적 냉소주의는 핑계다. 단순한 지역색 이상의 무엇이 인간을 좌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인간은 떼로 움직이게 되면 멍청해지도록 설계되어 있는지 모른다. 지역, 파벌, 민족으로 갈라져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역사는 수도 없이 많다. 선거만 끝나면 뒤를 덜 보고 나온 것처럼..

길위의단상 2012.04.24

애절양 / 정약용

갈밭 젊은 아낙 오랫동안 울더니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는다 출정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있다 해도 사내가 제 자지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구나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다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다며 억울한 하소연 하려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간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다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는 형벌도 억울한데 민땅의 자식 거세도 진실로 슬픈 것이거늘 자식을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프거늘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

시읽는기쁨 2011.11.28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 바츨라프 하벨

일단 내가 시작해야 하리, 해보아야 하리. 여기서 지금, 바로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어디서라면 일이 더 쉬웠을 거라고 자신에게 핑계 대지 않으면서, 장황한 연설이나 과장된 몸짓 없이, 다만 보다 더 지속적으로 나 자신의 내면에서 알고 있는 존재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살고자 한다면. 시작하자마자 나는 홀연히 알게 되리. 놀랍게도 내가 유일한 사람도 첫 사람도 혹은 가장 중요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그 길을 떠난 사람 가운데에서 모두가 정말로 길을 잃을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내가 길을 잃을지 아닐지에 달렸다는 것을. -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 바츨라프 하벨 홍세화 씨가 이 시를 인용하며 진보신당 당 대표에 출마하는 변을 밝혔다. 그분이 당 대표에까지 나서게 된 것이 의외이긴 하지만 작금의..

시읽는기쁨 2011.11.14

당황과 황당

티뷰론을 타고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이며 달릴 때... 스쿠프가 추월을 하면 당황스럽지만 티코에게 추월당하면 황당하다. 맛있게 사과를 먹다가... 벌레 한 마리가 나오면 당황스럽지만 벌레 반쪽만 있으면 황당하다. 그이가 외박을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팬티를 뒤집어 입고 있으면 당황스럽지만 여자 팬티를 입고 있으면 황당하다. 여자가 트럭 뒤에서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데... 트럭이 앞으로 가버리면 당황스럽지만 뒤로 후진해 오면 황당하다. 남자가 트럭 옆에 서서 볼일을 보는데... 트럭이 앞으로 가버렸는데 상대편에서 남자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 당황스럽지만 여자가 쪼그려 앉아 있다면 황당하다. . . 그리고 최근에는 . . . .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로... 시장직은 목 매달아 놓고 무릎 꿇고 ..

길위의단상 2011.08.22

장두노미

장두노미(藏頭露尾),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0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다.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고 있다는 뜻인데,진실을 숨기면서 들통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꿩이 매를 만나면 혼비백산하여 땅에 머리를 처박는데 몸은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 숨으나마나다. MB 정권이 하는 짓거리가 꼭 그와 같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유난히 장두노미스러운 말잔치가 성행하고 있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인 녹색성장, 공정사회, 국격 등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최근에 MB가 한 발언이다. 4대강 사업이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의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그 사람은 강산(江山)이라고 하면 토목공사밖에 연상을 못 하는 것 같다. 착각이라고 하면 그런대로 봐 줄 ..

길위의단상 2010.12.31

탐욕의 세계를 바꾸자

G20 서울회의가 다음 주에 열린다.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는데 정부에서만 요란스레 나대는 것 같다. 그런 꼬라지가 꼭 장학사가 찾아온다고 한 날의 옛날 학교 풍경을 연상시킨다. 사실 손님맞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의에서 다루는 의제 내용이다. 세계 흐름을 주도하는 주요국 지도자들 모임이기 때문에 무슨 내용을 의논하는지 당연히 국민에게 자세히 알려야 한다. 홍보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청소하고 쓰레기 줍는데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한 시민이 포스터에 쥐를 그렸다고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제발 국격(國格)이라는 말이나 안 썼으면 좋겠다. 너무 호들갑을 떨면 국가 열등감으로밖에 안 보인다. 이번 서울회의의 의제는 환율,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 국제금융기구 개편, 개도국 성장을 돕기 위한 계획 등..

참살이의꿈 2010.11.06

우파와 좌파

일부 사람들이 과거의 노무현과 김대중 정권을 좌파 정권이라고 부를 때는 어이가 없다. 심지어는 대북 지원 정책을 문제 삼고는 빨갱이 정권으로 부르기도 한다. 내가 볼 때 노무현이나 김대중 정권은 우파로 분류해야 맞다. 일부 이념이 진보적이긴 하지만 한미 FTA를 체결한 것이나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하는 등 그들이 추구한 정책이 지금의 자본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공고히 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좌파나 우파, 진보나 보수라는 구분이 말하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뒤죽박죽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개념 정리나 통일된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를 하더라도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기 어렵다. 어느 분의 글에서 본 것인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하여 사..

길위의단상 2010.07.13

내가 대통령이면 / 김해자

큰일은 절대 하지 않으리 정권 바뀔 때마다 뒤집어엎는 백년지대계 같은 일에 손대서 안 그래도 어질어질한 우리 아이들 갈팡질팡 비틀대지 않게 하리 다만 아주 작은 것,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인데 작고 작아 티도 안 나는 일 몇 가지는 해야지 교실마다 황토빛 은은히 도는 커튼을 치고 향나무 침대 몇 개 두어 쉬는 시간에 아이들 쉬어가게 해야지 졸려서 눈꺼풀이 내려앉는 아이들 몇 분이라도 허리 쫙 펴게 글자로 하는 공부에 흥미 없는 아이들은 들로 밭으로 쏘다니게 해야지 가만히 누워 하늘 올려다보게 가만히 앉아 이슬 한 방울 바람이 흔드는 쑥잎 하나 가만히 들여다보게 들여다보다 들여다보다 그 속으로 들어가도록 쑥부쟁이 되고 개미가 되고 흙이 되고 하늘이 되고 야생 고양이 되고 바람이 되고 바람과 하늘의 영혼으로 ..

시읽는기쁨 2010.07.08

1 번

우연치고는 참으로 절묘하지 않니? 어뢰 파편에 적혀있다는 파란색의 '1 번'이라는 글씨 말이야. "찍어 찍어 1 번 좋아 1 번 좋아 파란당 파란당이야 무조건 무조건이야." 적개심과 불안을 부추기고, 간첩도 잡고, 전교조도 때려잡고, 이러면서 그날을 향하여 점점 에스컬레이터 시키겠지. 정점을 향해. 어제 MB는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어. 왠지 소름이 끼치더라. 그러나 난 내기 걸 수 있어. 그날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거라는 걸. 이런 걸 보면 역사는 코미디 같아. 우린 그 소극(笑劇)의 꼭두각시, 그런데 찬 바람이 너무 거세다. 슬프고 우울해. 많이 슬프고 우울해.....

길위의단상 2010.05.25

[펌] 노무현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난 그 흔한 노빠도 아니고 좌빨도 아니다. 그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전쟁보다는 평화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30대 청춘이다. 김영삼보다 김대중이 좀 더 똑똑해 보여 찍었고 수구꼴통이란 닉네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나라당이 싫어서 김대중을 찍었고 이회창보다는 노무현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좀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해서 그에게 표를 줬을 뿐이다. 저번 대선에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애초부터 도덕성이 결여된 수준 이하의 후보에게 차마 표를 줄 수 없어 어쩔수 없이 정동영을 찍었던 그런 힘없는 백성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고 있노라면 막장드라마도 울고 갈 굵직굵직한 미니시리즈들이 씌여지고 있는 듯하다. 본시 막장드라마일수록 결과는 뻔한데 하루하루 놓치기 아까운 ..

길위의단상 2009.05.03

사르코지의 익살

오늘 아침 신문에 재미있는 사진이 실렸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국빈방문하는 환영식에서 부인의 손을 슬그머니 잡으니까 브루니의 얼굴이 빨개지며 겸연쩍은 듯 살짝 고개를 숙인 장면이다. 대통령의 익살스런 표정도 재미있고, 그에 반응하는 브루니의 표정도 귀엽다.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은 동양인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엄숙한 환영식장에서 저런 파격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사르코지에 대해서는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친미적인 정강 정책으로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는데 사람 자체는 무척 진솔해 보인다. 적어도 위선이나 가식이 느껴지지 않아 좋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부인과 이혼하고 열세 살 아래의 모델 출신 미녀와 결혼해서 화제가 되었다. 만약 한국에서 그랬다면 ..

길위의단상 2008.06.24

정과 정의 대결

어제는 제 18대 총선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곳은 정동영 씨와 정몽준 씨가 출마해서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은 지역구였다. 덕분에 TV로만 보던 두 사람과 악수도 해 보았다. 가까이서 본 그분들은 선거 운동에 지쳐서인지 무척 안스럽게 보였다.워낙 유명인들이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과는 뭔가가 다르리라는 선입견이 무의식 중에 있었는데 그저평범한 이웃 사람의 모습이어서 조금은 의외였다.그분들을 통해서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명인들에 대한 환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대결의 승패는 여론조사에서부터 예상된 것이었다.지역구민들이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은 지역의 일꾼을 뽑는 측면이 강하므로힘 있는 여당 의원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당선된 정몽준 씨..

길위의단상 2008.04.10

영혼이 없는 사람들

얼마 전 서울대 교수 80여 명이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을 보고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대운하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닌 진실과 거짓, 과학과 허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학자적 양심에 따라 침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성인들의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는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대운하 논쟁은 지금 수면 아래로 잠복한 상태지만, 또 하나 새 정부 들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영어교육이다.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인수위원회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 중의 하나가 교육개혁이고, 그 중에서도 영어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나는 왜 우리가 영어에 그렇게 올인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영어몰..

길위의단상 2008.02.02

잔치 뒤의 씁쓸함

대선 잔치판이 끝났다.오후 여섯 시, 투표가 끝난 뒤 예측 발표를 듣고는 기분이 우울해져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 와중에도 잠이 오는 것이 신기했다. 대통령 자리는 하늘이 점지해줘야 하는가 보다. 정권교체와 경제가 화두인 시대에서 이명박 같은 사람이 당선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야속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민심이 천심이라지만 나로서는 거의 절반에 이르는 득표로 그가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이 도시 이해되지가 않는다. 이번 선거판에서 최대의 화두는 경제였고, 이 문제 앞에서 모든 이슈는 묻혀 버렸다. "잘 살게만 해 주면 됐지, 다른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버스의 라디오로 들린이 한 마디가 나를 더욱 섬찟하게 한다. 우리의 가치관이 언제 이렇게 형이하학적..

길위의단상 2007.12.20

절망이 아니었던 시대가 있었던가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후배 K가 현실 상황의 절망감에 대해 울분을 토로했다. 늘 올곧게 생각하고 살려는 사람이라 답답해 하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고 공감이 되었다. 선거로 과연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도 나왔고, 대중들 수준이 이런 단계에 머물러서는 결코 민의가 역사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데 대해서도 공감했다. 이 시대의 화두는 오직 경제다. 코 앞에 닥친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가 최대 이슈가 되고 있고, 국민들 관심사도 부자가 되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 국민들 머리 속에는 오직 먹고사니즘 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는극심한 생존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로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사람들은 제 덫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그런 현실의 아귀다툼에서 한 발짝 물러..

길위의단상 2007.12.06

문국현의 출사표

새 세상에 대한 갈망이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 정치판에서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이 지금껏 증명되고 있지만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정치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데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한 정치적 좌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며칠 전 문국현이라는 분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들의 잠들어 있는 의식을 깨우는 태풍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미풍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분의 발언을 들으며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내용에 눈이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았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아직 멀고, 그리고 여나 야나 기성 정치 노선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진 나 같은 사람들이라면 주목할 만한 후보 출현..

길위의단상 2007.08.29

민주화 20년의 경험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한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라는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첫 회는 정치 분야로 어제 역사박물관에서 ‘민주화 20년의 경험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나?’라는 주제로 열렸다. 주제발표는 고대 최장집 교수, 토론자는 한림대 최태욱 교수, 경향신문 이대근 편집부국장이었고, 정관용 시사평론가가 사회를 보았다. 평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강연과 토론을 들으면서 더욱 참담한 기분에 빠졌다. 6.10 항쟁 이후로 20년이 지났고, 소위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도 10년이 되었건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고, 개혁에 대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으니 어찌 보면 배반당한 혁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를 외쳤던 그들은 이제 기득권 세력이 되어 민중을 외..

사진속일상 2007.06.28

산문시 /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

시읽는기쁨 2007.01.11

대통령의 말

대통령의 말이 또 회자되고 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보수언론이나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언론은 대통령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듯 사사건건 말꼬리 잡듯이 사설과 칼럼을 통해 모욕적인 언사조차 서슴치 않고 있고, 일반인들도 TV에 나온 몇 초의 문제되는 장면만 보고는 비난 일변도다. 대통령이 욕먹고 있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너무 심하다 싶은 심정은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발언이었는지 인터넷 동영상으로 1시간 8분에 이르는 연설을 전부 들어 보았다.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한 연설인데 위원들의 질문이나 건의사항에 답하는 형식으로 주로 안보, 국방에 대한 대통령의 소신을 밝힌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군데군데 문제의 발언이 섞여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은 외교안보를 중심으로 한 국정 ..

길위의단상 2006.12.25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타는 목마름으..

시읽는기쁨 2006.09.10

극단 '여의도'

70년대 후반에 있었던 일이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선배 한 분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전날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귀가했는데 집에 들어오지를 않은 것이다. 인품이 워낙 중후하고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신 분이라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했다. 주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엉뚱한 일을 저지를 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고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도대체 행적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갔을 때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유가 궁금했지만 이상하게도 모두들 입을 닫으며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했다. 선배님 집에서도 찾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분위기가 며칠 지나고 나서야 대체적인 진상을 알..

길위의단상 2004.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