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산문시 / 신동엽

샌. 2007. 1. 11. 15:1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산문시 / 신동엽

 

꿈꾸는 것은 자유렷다....

이 정도는 되어야 좋은 나라, 좋은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요즘 대권을 노리는 사람들, 하나 같이 좋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지만 그러나 좀팽이들이야. 고작 돈 많은 부자 나라 만들겠다는 게 그들의 공약이란 말이지....

 

그리고 시인의 이런 나라를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퇴근하는 광부들 뒷주머니에는 기름묻은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가 꽃혀있고....

아이들은 경쟁터에 내몰리지 않아도 꽃동산처럼 풍요롭고....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꽃이름 새이름 지휘자이름은 훤한 국민들....

억만금을 준대도 자기네 포도밭 땡크기지로 줄 수 없다며 지켜내는 농민들이 있고....

휴가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에 줄 서 있고....

그리고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 싣고 시골길 시인을 찾아가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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