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옹손지 / 김관식

샌. 2007. 1. 6. 08:53

해 뜨면

굴(窟) 속에서

기어나와

노닐고

 

매양

나물죽 한 보시기

씨래기 밥 두어 술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다

 

남루(襤褸)를 벗어

바위에 빨아 널고

발가벗은 채

쪼그리고 앉아서

등솔기에 햇살을 쪼이다

 

해지면

굴(窟) 안으로

기어들어

쉬나니

 

- 옹손지(饔飡志) / 김관식

 

인간에게는 자유 본능이 있다. 그것이 일상의 굴레에 매몰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렇지 않다면 노예에 다름 아닐 것이다. 세속적 명리를 추구하다가도 '이건 아닌데'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옹손지(饔飡志)란 아침, 저녁의 끼니를 뜻한다고 한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러나 먹고사니즘에서의 초탈을 꿈꾸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대한민국 시인 김관식은 보통 사람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았다. 어떻게 보면 그의 생은 짧고 불우했지만 세상을 향한 그의 몸부림은 자유의 의미와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묻게 해준다. 시인의 언행은 이 시대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탐욕과 경쟁 심리에 시달리는 내 마음을 편히 쉬게 하고 싶다. 등에 놓인 무거운 짐 벗어놓고, 아무 것도 없는 등솔기로 따스한 햇살 쪼이고 싶다.

 

그러나 우선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꿈꾸는 내 욕심부터 버려야 할 것 같다. 그것 또한 등에 진 짐 하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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