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면
굴(窟) 속에서
기어나와
노닐고
매양
나물죽 한 보시기
씨래기 밥 두어 술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다
남루(襤褸)를 벗어
바위에 빨아 널고
발가벗은 채
쪼그리고 앉아서
등솔기에 햇살을 쪼이다
해지면
굴(窟) 안으로
기어들어
쉬나니
- 옹손지(饔飡志) / 김관식
인간에게는 자유 본능이 있다. 그것이 일상의 굴레에 매몰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렇지 않다면 노예에 다름 아닐 것이다. 세속적 명리를 추구하다가도 '이건 아닌데'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옹손지(饔飡志)란 아침, 저녁의 끼니를 뜻한다고 한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러나 먹고사니즘에서의 초탈을 꿈꾸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대한민국 시인 김관식은 보통 사람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았다. 어떻게 보면 그의 생은 짧고 불우했지만 세상을 향한 그의 몸부림은 자유의 의미와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묻게 해준다. 시인의 언행은 이 시대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탐욕과 경쟁 심리에 시달리는 내 마음을 편히 쉬게 하고 싶다. 등에 놓인 무거운 짐 벗어놓고, 아무 것도 없는 등솔기로 따스한 햇살 쪼이고 싶다.
그러나 우선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꿈꾸는 내 욕심부터 버려야 할 것 같다. 그것 또한 등에 진 짐 하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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