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민주화 20년의 경험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나

샌. 2007. 6. 28. 11:15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한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라는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첫 회는 정치 분야로 어제 역사박물관에서 ‘민주화 20년의 경험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나?’라는 주제로 열렸다. 주제발표는 고대 최장집 교수, 토론자는 한림대 최태욱 교수, 경향신문 이대근 편집부국장이었고, 정관용 시사평론가가 사회를 보았다.


평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강연과 토론을 들으면서 더욱 참담한 기분에 빠졌다. 6.10 항쟁 이후로 20년이 지났고, 소위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도 10년이 되었건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고, 개혁에 대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으니 어찌 보면 배반당한 혁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를 외쳤던 그들은 이제 기득권 세력이 되어 민중을 외면하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기게 하는 주범이 되어 있다.


현 정치 상황을 진단하면서 공통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따른 민주주의의 약화를 들었다.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것이 김대중 정부이고, 노무현 정부는 그 정책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미 FTA를 왜 그렇게 밀실에서 래디컬하게 추진했는지 미스터리라고 한 토론자는 말했다. 만약 보수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다면 엄청난 반대와 논란에 부딪쳤을 것이고, 그것이 도리어 진지한 논의와 검토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은 민주화 주도 세력에게 발등을 찍힌 격이 되어 버렸다.


민주주의 후퇴란 쉽게 말해 현재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엄연히 존재하는 노동3권은 실종되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하면 무조건 나쁜 놈들이라고 욕을 먹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볼 생각은 아예 없다. 기업 중심, 시장 중심이 정책이 결국은 우리 사회를 획일화 시키고 승자 독식의 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힘없는 민중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민중이라는 말조차 이젠 별로 쓰지 않는다. 어느 조사에서는 민주주의보다는 경제 성장을 원한다는 사람이 90%에 이르렀다. 대중들은 경제 성장이 되면 그 부스러기라고 얻어먹을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현 상황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정당 정치의 후진성이다. 정책이나 이념으로 경쟁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기능은 작동되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뭉치고 헤어지는 이익집단들만 있을 뿐이다. 특히 범여권으로 명칭하며 대통합 운운하는 무리들의 행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한미 FTA를 극력 반대했던 김근태와 찬성했던 손학규가 손을 맞잡고 있다. 그들이 집권한다고 해도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여권이 하는 말이란 게 고작 “이제 와서 한나라당은 아니지 않느냐?”는 논리밖에 없으니 그들의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되돌아보면 개혁 기회를 무산시켜 버린 노 대통령이 무척 원망스럽다. 5년이 지난 뒤에 드러난 실상은 무능과 통치 철학의 빈곤이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핀잔까지 들으며 대통령 입장을 옹호했던 나로서는 한없이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정치와 진보, 발전과 개혁에 대한 절망을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참여정부의 공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늘 한탄하지만 국민들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꺼뜨린 책임은 무엇으로 질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특정인 누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다. 세계의 흐름은 이미 미국화라고 할 수 있는 시장 포퓰리즘으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발전되고 부강한 나라가 되고자 하는 집단적 열망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이런 흐름을 거역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시장 가치와 경쟁이 목표인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아니라, 사회공동체의 가치와 평등이 우선되는 가치를 만들고 지켜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유럽식 모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미국식 가치가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신봉되는 이런 국민의식에서 하루 빨리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나 제도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각성이다. 씁쓸한 마음으로 강연회장을 떠나며 우리의 갈 길은 참으로 멀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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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한겨레 21'에 실린 김규항 님의 글 '민주화 20년, 자본화 20년'을 여기에 옮긴다. >

 

신문이고 방송이고 올해 따라 별스럽게 ‘6월항쟁, 6월항쟁’ 한다 했더니 20주년이란다. 내 또래들의 술자리에라도 끼면 늘 그 이야기들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6월항쟁이 뭔지도 모르더라고.” “아는 애들도 있지만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지 아무 감회가 없어.” “요즘 애들이야 지 생각만 하지 사회문제에 도통 관심들이 없잖아.” “아, 체 게바라 티셔츠 입고 다니는 애가 체 게바라가 누군지 모르더라니까.” 이야기는 어김없이 아쉬움에서 개탄으로 변해가곤 한다.


하긴 청년 시절 목숨까지 내놓고 군사 파시즘과 싸웠던 사람들이 요즘 청년들을 보면 왜 아쉬움이 없을까. 사회나 이웃에 대한 관심보다는 제 개인의 문제에나 집중하는, 한없이 사소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개탄의 소리를 듣자면 적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런 너희는 지금 뭐 그리 다른데’ 싶어서다. 이제 삶이 사소하기로야 요즘 청년들보다 못할 게 없는 그들의 개탄은 우습다. 역사를 추억만 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을 개탄하는 일은 말이다.


옛 투사들의 그런 심란스런 모습만큼이나, 민주화 20년이라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심란스럽기만 하다. 농민들은 제 나라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버림받았으며 현대판 노예 비정규 노동자는 끝없이 늘어만 가고 삶의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내세운 대부업자들에게서 기어코 거덜이 난다. 박정희의 딸(이자 정치적 아들) 입에서조차 ‘양극화’라는 말이 나오니 이게 과연 현실인가 코미디인가?


왜 이렇게 된 걸까? 민주화한 지 20여 년이라는데 왜 인민들의 삶은 민주화할수록 고단해져만 가는 걸까? 그 의문을 해결할 길이 없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고 진보고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대통령 후보에게 몰려간다. 무지스런 시장만능주의자에다 개발주의자이기까지 한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인민들의 삶은 더욱 거덜이 나겠지만 막막한 사람들은 제 막막함만큼이나 맹목적이다.


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일 텐데, 인민이 주인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 군사 파시즘이 물러가고 선거에서 자유롭게 한 표를 행사하고 언론의 자유가 생기면, 그걸로 인민이 주인인 사회인 건가?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일 뿐이다. 그럼 진짜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이런저런 학술적이고 고상한 논설들을 넘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한 소녀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먹고,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이다.”(아이티의 전 대통령 아리스티드가 지은 <가난한 휴머니즘> 중에서) 그렇다, 그게 민주주의다. 한국 사회는 지난 20년 동안 민주화한 게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점점 멀어져온 것이다. 그래서 인민들의 삶은 ‘민주화할수록’ 고단해진 것이다.


한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군사 파시즘과 싸웠다. 1987년 군사 파시즘이 물러나고 비로소 민주주의의 준비가 마련되었지만 바로 그 순간 더 큰 비극이 시작되었다. 한국인들이 벅찬 감회에 젖어 ‘민주화가 되었다!’ 축제를 벌일 때 그 틈새로 자본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바람이 들어왔다. 그 후 20년은 아무런 망설임도 견제도 없는 극단적인 자본화의 판이었다. 자본화의 선봉에 선 개혁세력은 민주주의의 준비를 민주주의라 거짓 선전하며, 군사 파시즘에서 벗어난 한국 사회를 차곡차곡 자본의 손아귀에 넘겨주었다. 행여 들킬세라 개혁세력은 끊임없이 조선일보니 수구기득권 세력이니 따위를 들먹이며 군사 파시즘의 공포를 환기했고, ‘모든 사람들이 먹고,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사회’를 좇는 사람들을 “비현실적이며 80년대식 몽상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몰아붙여 인민들에게서 격리시켰다.


그 결과가, 민주화의 허울을 쓴 자본화 20년의 결과가 오늘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심란스런 현실이다. 민주화 20년? 싱거운 소리들 마라. 억울하고 슬픈 일이지만, 한국에서 민주화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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