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대통령의 말

샌. 2006. 12. 25. 15:20

대통령의 말이 또 회자되고 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보수언론이나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언론은 대통령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듯 사사건건 말꼬리 잡듯이 사설과 칼럼을 통해 모욕적인 언사조차 서슴치 않고 있고, 일반인들도 TV에 나온 몇 초의 문제되는 장면만 보고는 비난 일변도다. 대통령이 욕먹고 있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너무 심하다 싶은 심정은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발언이었는지 인터넷 동영상으로 1시간 8분에 이르는 연설을 전부 들어 보았다.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한 연설인데 위원들의 질문이나 건의사항에 답하는 형식으로 주로 안보, 국방에 대한 대통령의 소신을 밝힌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군데군데 문제의 발언이 섞여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은 외교안보를 중심으로 한 국정 운영에 대한 술회와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 그리고 협조를 부탁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큰소리로 비난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의 직설화법은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내가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른 데에 있다.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목표로 원칙과 신뢰를 강조했다. 결국 원칙이라는 이 목표가 지금까지의 갈등을 키워온 셈이 되었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협보다는 외길로 나가는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합에도 눈을 돌렸으면 정책 추진이 훨씬 더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은 보수 세력과의 대화가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식민지 시대와 좌우 대결, 전쟁, 독재시대를 거치며 대립되는 두 진영 사이의 대화는 점점 어려워졌다. 그래서 집권 초기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을 메우기 위해 중간 역할을 기대하며 고건 총리를 기용했었는데 결국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언론 보도를 보면 마치 총리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식으로 오해를 하게 생겼다. 물론 이런 발언에 내년 선거를 앞둔 대통령의 정치적 술수가 담겨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인사권자가 충분히 유감을 가질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숱하게 비난을 듣고 있는 대통령의 코드 인사라는 것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해 보면 대통령제 자체가 코드 인사를 허용하고 있다. 정책을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으면 자신의 소신껏 인재를 모아 국가 운영을 하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제이다. 그런데 야당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색깔을 무기삼아 무조건 발목을 잡는다. 아마 역대 대통령 중 현 대통령만큼 비토를 당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본인이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언론이나 국민의 딴지걸기가 지나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조용한 안보를 강조한 대통령의 말은 옳다. 이제 국방력으로나 국력으로나 북한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국민의 불안심리를 이용하기보다 국민을 안심시키고 실상을 알려주는 정책에 나는 찬성한다. 미 2사단의 후방 배치나 용산 기지 이전, 전작통제권 이양 등에서 보였던 보수와의 갈등에서도 나는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한다. 여기서 대통령은 흥분한 목소리로 과격한 표현을 쏟아내었다. 그것이 언론에는 사진과 함께 과격 발언으로 인용되어 호되게 비난받고 있는 것이다. 도리어 비난받고 털어내야 할 것은 우리 국민의 대미의존심리라고 생각한다. 당당한 국민이 되지 못하면 나라도 대통령도 당당해질 수 없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에 대한 대통령의 변명은 유감이다. 초강대국 미국과의 유대를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잘 한 장사 아니냐는 말은 대통령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정 목표로 원칙을 강조했는데 인간이나 국가가 지켜야 할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과 평화, 그리고 명분이다. 이익을 위해서는 명분마저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원칙이 아니다. 생명과 환경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이 보이지 않는 사례는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새만금과 대추리를 대하는 대통령의 시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대통령 발언의 일부 대목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보수 언론에서 마치 대통령을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대통령이 의사 표현을 했다 하면 무언가 트집을 잡아서 가만 두지 않는다. 마치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것 같다. 막강한 언론 권력에 세뇌되었는지 많은 국민들 또한 그런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가부장적이거나 카르스마가 있는 권위적인 인물을 지도자로 원하는 것이나 아닌지 종종 의심이 든다. 자발적 복종에 의한 평화를 더 원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대통령은 대통령감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좋게 해석하면 이런 대통령 스타일에 익숙하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권위는 찾아볼 수 없고 솔직담백한 직설 화법은 대통령의 어법으로 어울리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그것이 도리어 장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이나 우리 사회의 여론을 이끄는 지배 집단에 대하여 정면으로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한 대통령은 없었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타협하지 않는 대통령이 눈에 가시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참여정부 4년간의 나라 운영이 잘못된 점이 많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스타일 또한 못마땅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일부 보수 언론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발목을 잡는 행태는 고쳐져야 한다고 본다.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지만 자신 또한 그런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 결국은 이 모든 갈등이 변화와 저항, 진보와 보수의 이념 다툼일지 모른다. 대통령이 말만 했다하면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보면서 사회나 국민의식의 성숙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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