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부동산 광풍 가운데서

샌. 2006. 12. 20. 12:25

송년회에 나가는 A의 발걸음은 무겁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대화가 술 몇 잔 들어가면 으레 아파트 얘기, 돈 얘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종부세를 천만 원이나 내었다고 조금은 계면쩍어 하면서 의기양양해 하는 친구에서부터 “너 어디 살지?” “거기도 많이 올랐지?”라는 질문은 인사가 되었고, 그런 부동산에 관한 말이 나올 때마다 괜히 주눅이 들기 때문이다. 왜냐면 A는 서울에 살면서도 현재 자기 소유의 집이 없다. 그래서 요즈음처럼 부동산 광풍 속에서 집 가진 친구의 재산 가치가 자꾸 높아지는 것을 보면 솔직히 배가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유전자 조작이라도 해서 인간성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A가 원래 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6년 전에 강남에서 살고 있던 32평 아파트를 2억7천만 원에 처분했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내려가겠다며 미래의 터를 구하기 위해 집을 팔고 전세살이로 돌아선 것이다. 세상살이란 게 묘해서 A가 집을 팔자말자 서울의 집값 폭등이 시작되었다. 그 집 시세가 지금은 12억이 되어 있다. 6년 만에 5배, 10억 가까이 오른 것이다. 미쳤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A가 어렵사리 장만한 시골 터는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면서 살아갈 터로서의 가치를 잃고 만다. 겨우 손해를 보지는 않고 철수했지만 A의 손에 남겨진 돈은 6년 전의 그 액수밖에 되지 않는다. 전세금을 합쳐도 이 돈 가지고는 이제 서울 어디서도 아파트 하나 장만하기 어렵게 생겼다. 만약 그가 독특한 꿈을 꾸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세상이 주는 공짜 혜택을 만끽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로만 보면 한 선택이 6년 만에 10억 가까이의 재산을 날린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하다. 작금에 A에게 벌어진 이런 사태는 득과 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하늘의 뜻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A가 전에 살던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은 1988년이었다. 그때 분양가가 4천5백만 원이었는데 당시는 부동산 침체기였는지 미달이 되어서 추가 모집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림픽이 지나고 부동산이 폭등하기 시작했고 값이 1억, 2억을 손쉽게 넘어갔다. A는 부동산 광풍의 수혜자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A는 세상이 미쳤다고 하면서도 그런 시류를 즐겼었다. 미친 세상을 개선하거나 변화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재산 가치가 높아지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방관자며 구경꾼으로 지낸 것이다. 결국 A가 12년 뒤에 그 아파트를 2억7천만 원에 팔았으니 여섯 배의 이득을 챙긴 셈이다.


이제 A는 똑 같은 부동산 광풍을 정반대의 입장에서 맞고 있다. 수치적으로는 지금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지만 양쪽에 닮은 점이 많다. 그런데 A 입장에서는 전에는 수혜자였지만 지금은 빼앗긴 자의 처지에 서 있다. 전에는 희희낙락했지만 지금은 침울하다. 전에는 당당했지만 지금은 의기소침해져 있다. 같은 바람인데 사람의 입장에 따라 온풍이 되기도 하고 냉풍이 되기도 한다. 온풍 속에 있는 사람이 냉풍 맞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힘들다. 냉풍 속에서는 따스한 마음을 가지기가 어렵다. 그런데 두 바람을 함께 경험한 사람은 상대편을 이해하는 마음이 다소라도 넓어질 것이다. A는 부동산 광풍의 진원지 가까이에서 그 두 바람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기는 이런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사실 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스트레스 받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본다. 욕심 부리는 사람들은 더 챙기지 못해 스트레스고, 없는 사람들은 챙길 힘조차 없어 스트레스다. 그냥 가만히 살고 싶은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못 살게 구는 것이 지금 세상이다. 끝없이 욕심을 잉태하는 자본주의라는 세상의 구조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은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사람들은 파이를 더 크게 해야 한다고 난리들인데. 파이가 커지면 내 몫으로 돌아오는 게 당연히 많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주류들은 여전히 경쟁과 효율의 가치에 매달리고 있다. 그런 가치가 우선되는 세상이 과연 살 만한 곳이 될까? 지금은 힘들더라도 다가오는 세상에 희망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살벌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A는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것들이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불로소득의 혜택을 보았으면 그것을 토해낼 때도 있어야 마땅한 것이다. 옛날에 집 없는 사람의 아픔을 헤아려보지 못한 도덕적 불감증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이다. 허리에 놓인 짐 하나를 덜어내었으니 A의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하다. 이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선택이었든 그가 걸은 걸음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A는 따스한 가슴으로 이 겨울을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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