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레밍의 질주

샌. 2007. 1. 15. 11:27

대학교 때 최기철 교수님의 생물학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 민물고기 연구의 일인자셨던 선생님은 편안한 외모처럼 강의도 구수하게 하셨는데 여러 생물들의 특이한 행태에 대해 많은 예를 들어주셨다. 본 강의보다 그런 예들이 더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 '레밍'이라는 쥐 얘기는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레밍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고 있는 들쥐 종류인데 레밍의 특이한 행동이 생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레밍은 서식 환경이 좋아져 개체수가 어느 한계 이상 늘어나면집단적으로 이동을 시작하고 결국은 바닷가 절벽에 이르러 모두가 집단 자살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호수고 산이고 거칠 것이 없이 무조건 전진만 하다가 마지막에는 바다에 이르러 최후를 맞는다. 이런 행동이 후손들을 살리기 위한 레밍의 이타적 행동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지 연구중이라는 얘기였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비록 들쥐 종류지만 그런 무지막지한 행동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유전자 프로그래밍이 왜 그런 식으로 되어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레밍의 행동에 대한 지금의 해석은서식 환경이 나빠져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고로 해석하는 것 같다. 그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돌진하는데 절벽이든 바다든 그냥 나가다 보니 그런 집단 죽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밍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동물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금 레밍을 다시 생각해 볼 때 인간들의 행태에서도 그런 레밍적 특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집단에서 이탈하기를 두려워하고 맹목적으로 흐름을 쫓아가는 것이 바로 레밍적 특징에 다름 아니다. 권력, 돈, 종교, 기타 등등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 추구가 레밍의 질주와 전혀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인간보다 훨씬 지능이 높은 존재가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면 마치 우리가 레밍을 보고 멍청하다고 혀를 차듯 그들 또한 우리를 한심하다고 비웃을 게 틀림없다.

비근한 예로 최근에 부동산 값이 뛰고 불안심리에 자극 받아 너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구입 대열에 뛰어 들었다. 집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이 기회를 놓치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덤벼들었다. 집이 있는데도 더 욕심을 내는 사람들은 논외로 하고, 내가 아는 주변 사람 여럿도은행 대출을 받아유주택 대열에 합류했다. 무주택자의 절박한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런 행동이 집값 상승의 악순환을 점점 심화시킨다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덤벼들면 집값은 더 오르고 남아있는 무주택자들은 더욱 상실감에 빠진다. 집이 없는 서러움을 당한 사람들이 다른 이의 같은 서러움은 외면해 버린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나중에 후유증이 나타날 때 그 대가는 모두의몫이다. 어리석은 레밍의 행동에 다름 아니다.

그래도 인간의 인간다운 점은 레밍과 달리"No!"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침묵과 굴종의 무리에 반대로 서서 이 길은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과 지배계급이 달콤한 사탕을 흔들며 유혹을 해도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진보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믿는다.

현대 문명과 세태를 생각하다 보면 어리석은 레밍의 질주가 자꾸 떠오른다. 그들은 더 잘 살기 위해길을 떠났지만 결국은 그것이 죽음에로의 질주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작은 호수를 건너고 언덕을 넘을 때는 앞에 신천지가 도래할 듯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절벽이 나타나고 그들은 집단 관성에 의해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아니, 너무나 열심히 달려왔기에 멈추는 법을 아예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으로의 긴 낙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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