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 장의 사진(7)

샌. 2007. 1. 26. 10:20



지난 해에 첫째가 대학을 졸업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혹독한 통과 의례를 마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에서 세 사람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다른 모든 가정이 그러하듯 저 미소 뒤에는 많은 고뇌와 인내가있었음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살인적인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부를 잘 하는 쪽이나 못 하는 쪽이나 다 마찬가지다. 첫째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나는 한국 교육에 대해서 심각한 회의에 빠져 있었다. 단순히 우리 아이 성적을 어떻게 올리고 좋은 대학에 집어넣느냐는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아이를 제대로 기르고내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뇌였다. 당시의 나에게 한국의 교육은 악의 제도 그 자체였다. 거기에 승복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분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란 무관심과 소극적인 저항 뿐이었다. 그래서 첫째가 한창 입시 준비에 바쁠 때 실제로 나는 도와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 교육은 전적으로 아내 몫이었는데 나는 그런 것에 반대하다가 타박만 자주 들었다. 이제 많은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니 지금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리고 착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기보다는 뚜렷한 주관과 바른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랐다. 그저 시류에 영합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 고뇌하는 인간이 되어주길 희망했다. 그래서 첫째는수녀가 되거나 아니면 사회 봉사 계통의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수녀원 피정에도 보내 봤으나 아이는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학 진학시에도 전공을 선택할 때 나는 심리학을 권했는데 보통 사람들은 취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쓰잘데기 없는 학과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이는 거기에도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적성을 거스린내 욕심일 뿐이었다.

졸업은 고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고생의 시작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 학교 생활은 진짜 경쟁의 몸풀기에 불과하다. 졸업 후 바로 회사에 취직한 아이의 생활을 보면 마치 노예가 혹사당하는 것과 같다. 요사이 회사들은 효율성 때문인지 인원은 적게 뽑고 대신 노동 강도는 엄청 높은 것 같다. 그리고 무슨 야근이나 회식이 그렇게 많은지 밤 열두 시가 넘어 집에 들어올 때가 빈번하다. 도대체 자기 계발이나 독서, 취미 생활을 할 여유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주 5일제가 되었지만그 날들은 그냥 집에서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다. 우리 아이만 이렇게 유별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바빠야 하는지,인간이 부속품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비인간화된 세상의 구조를 탓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딴 생각을 하거나 의문을 품지 못하게 세상이 일부러 시간 여유를 주지 않으며 부려먹으려는 것으로 의심이 든다.

아이들 대학 생활을 보아도 우리 다니던 때와는 천양지차가 난다. 대학에서 이젠 낭만이라는 단어는 폐기처분된 것 같다. 입학해서부터 취직 경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인문학의 위기라며 교수들이 들고 일어났으나 이런 세상의 틀을 바꾸지 않는 한 한가롭게 인문학에 관심을 가질 학생들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걸 모른다면 교수들이 너무 순진한 것이다. 내 눈에는 적어도 바른 인문학 교수라면 인문학 회생을 위해 정책적 지원을 요구할 게 아니라 잘못된 길로 나가고 있는 세상의 방향을 바꾸는데 진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빈곤했으나 우리가 대학에 다닐 때는 낭만의 시대라고 부를만 했다. 자기 전공에 관계없이철학과 종교, 인생에 대해 논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좀더 현실적인 친구들은 사회 부조리와 정치 현실에 대해 몸을 던지기도 했다. 진로는 취업이냐 학문의 길이냐로 단순했다. 그리고 취업은 어디에나 가능했고, 지금같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라 직장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여러 분야로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었다.

일년 전의 사진을 보니까 여러 생각들이 떠오른다. 분명한 것은 경제 성장이 되고 GDP는 올라가는데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왜 사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쟁에 익숙해지고 돈을 쫓는 사이에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또 이런 소리도 들린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하라고, 몇 억을 모아야 노년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그러나 그때가 되면 파랑새가 다시 돌아올까? 주름살이 하나둘 늘어나면 과거의 탐욕과 극성이 자연스레 사라질 수 있을까?

나는 아이가 현실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힘든 현실을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현상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기를, 항상 내면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어떤 어렵게 보이는 상황에서도 마음의 여유와밝은 웃음을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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