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영혼이 없는 사람들

샌. 2008. 2. 2. 14:03

얼마 전 서울대 교수 80여 명이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을 보고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대운하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닌 진실과 거짓, 과학과 허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학자적 양심에 따라 침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성인들의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는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대운하 논쟁은 지금 수면 아래로 잠복한 상태지만, 또 하나 새 정부 들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영어교육이다.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인수위원회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 중의 하나가 교육개혁이고, 그 중에서도 영어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나는 왜 우리가 영어에 그렇게 올인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영어몰입교육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영어뿐만 아니라 일반 교과목까지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영어전문교사에게는 병역면제 혜택까지 주면서 독려하겠단다. 이 둘은 결국 여론의 비난을 받고 거둬들였지만 인수위 사람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로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욕을 들어도 마땅한 자들이다.


그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은 오직 국가경쟁력과 인재양성이다. 잘 사는 나라들은 전부 영어를 공용어처럼 사용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까지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후손들에게 참으로 가르쳐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세상엔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인간의 길인지 기성세대가 모범을 보여야 하고, 그런 길을 젊은 세대들에게 가르쳐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범위를 좁혀 생각하더라도 영어보다는 우리글을 아는 것이 우선순위다. 도대체 영어를 못하면 부끄럽고 우리말을 틀리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못된 사고방식은 언제부터 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프랑스는 일부러 자국어를 아끼며 영어쓰기를 배척한다고 한다. 우리와 프랑스의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런 프랑스와 같은 문화적 자존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온 국민이 영어에 능통할 필요는 없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어릴 때부터 모두가 영어에 몰입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항상 주장하는 효율성 측면에서도 결코 합치되지 않는다. 그들은 영어 사교육이 없어질 거라고 말하지만 이때까지의 학부모 열성을 볼 때 사교육이나 해외유학이 더 번창 하면 했지 절대 감소하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 당선인은 영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쉽게 말해서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미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당선인은 지난번 국립현충원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제발 한글이나 제대로 배우고 영어를 강조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당선인과 인수위 사람들은 영어에 무슨 한이 맺힌 사람들인 것 같다. 영어 올인이나 한반도 대운하는 사고방식 면에서 닮은꼴이다. 거기에는 경제제일주의, 실용주의가 기본 바탕으로 깔려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높아진다면 못할 일이란 없다. 영혼까지 팔고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이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 대한 성찰이다. 경제란 그런 목표에서 한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박정희 시대 이래로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었고, 또 어느 정도 목적 달성을 했지만 과연 지금의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국민소득이 높아진 만큼 행복해졌는가? 아직도 경제 성장과 소득에 우리의 행복을 맡길 것인가? 새 정부의 대운하나 영어교육 정책을 보면서 그런 우려가 점점 더 짙어진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으며, 만족할 수도 없는 존재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나 국민들의 좀더 철학적이고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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