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했다.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들은 공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시립 국악관현악단 정기 연주회였다. 여수 같은 소도시에선 자주 접할 수 없는 공연이고 더구나 우리 마을 아이들 중엔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덕양리에 사는 나는 어버이날 마을잔치 때 함께 사물놀이 공연을 했던 마을 아이들과 뒤풀이로 공연 관람을 약속했다.
드디어 공연이 있는 지난 14일, 거북공원에 도착한 우리들은 연주 모습을 잘 지켜볼 수 있는 맨 앞줄 가운데 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7시 공연이었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과 나는 5시부터 교대로 김밥이며 떡볶이를 먹으며 공연 리허설까지 지켜보았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져 오니 행사 관계자인 듯한 분이 오셔서 자리를 비켜줘야겠단다. 난 단호히 거절했다.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높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 자리를 내줄 순 없다고. 그리고 그런 분들은 오시는 대로 빈자리에 앉으면 되지 않느냐고. 얼마 후, 어떤 이들의 손을 빌려서 새 쫓듯 아이들에게 손사래를 하더니, 소위 높으신 분들의 자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싸늘한 눈빛이 나에게 머물더니 “맨 앞줄로 의자를 한줄 더 놓아버리면 되지”라는 소리가 들리고 자리가 놓였다. 설마 했던 나는 강하게 항의했다. 그들의 답변은 “행사를 빛낼 분을 위해 관례적으로 예약된 자리”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놓인 자리에 그 큰 덩치들은 앉았다.
공연이 끝나자 한 높으신 분이 다가와 “왜 내가 욕을 들어야 하느냐. 나는 억울하니 사과하라”고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비교육적으로 떠들면 되겠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나도 한껏 눈에 힘을 주며 “이렇게 싸우는 엄마가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외쳤고, 거친 숨을 쉬며 돌아왔다. 7살배기 아들에게 “엄마가 어제 왜 다투었지”라고 물었더니 “우리가 애써 맡은 자리인데 우리 허락도 없이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버렸잖아요”라고 말한다.
공연장에서 제일 좋은 관람석은 높은 분들의 자리이고, 여수시민 이외의 직함을 가지지 못한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심지어 공연중이라고 해도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이 관례라니…. 묻고 싶다! 비어 있을지라도 앉지 못하는 상석문화, 관례, 이런 것들은 그 뿌리가 무엇인지. 이런 관례(?)를 보고도 문제의식을 갖지 못할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따졌다. 소시민이 진정한 시민문화의 주체가 되는 날을 소망하면서 말이다.
- 한겨레 독자칼럼에서(박영미/전남 여수시 소라면)
이것은 며칠 전 한겨레신문의 독자칼럼에 실린 박영미 님이 투고한 글이다.
이런글을 볼 때마다 민주화되었다고 하는 우리 사회의 갈 길이 아직 멀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다.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의식은 아직도 권위적이고 관존민비식의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저변의 문화나 국민들의 의식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관과 접촉하는 경우에서 크게 작게 지금도 만날 수 있다.이런 경향은 서울보다는 대체로 지방에서 더욱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국민 전체의 의식 수준이 나아지고는 있다지만과거 유교문화의 부정적 잔재에서 벗어나기에는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10여 년 전 독일 연수를 갔을 때 받았던 문화적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선 학교에서 학교장은 높은 분이 아니라 심부름꾼이었다. 교장이라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작은 방에서 직접 커피를 대접하며 소님을 접대했다. 대학교수나 학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교수가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 껌을 씹으면서 강의를 듣는 풍경은 거의 쇼크 수준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들의 태도가 더욱 놀라웠다. 그렇다고 교수를 존경하는 학생의 마음이 덜한 것도 아니었다. 교수를 존경하는 풍토가 차라리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 학문적인 관계에서 그들은 거의 일대 일의 대등한 관계인것으로 이방인에게는 느껴졌다. 또 하나,우리를 태우고 다닌 버스 기사분이 있었는데, 식사를 할 때는 꼭 교수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그리고 긴 식사 시간동안 서로간에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우리 같으면 기사는 잘 보이지도 않는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식사를 했을 것이다. 처음 만나는 기사와 교수가 거리낌없이 같이 어울리는 사회라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동시에 부러웠다. 거기에 우리 사회를 비쳐보면 우리는 철저한 신분사회고 계급사회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외국에 나가보아야 그런 슬픈 현실을 절감할 수 있다. 민주와 평등, 그리고 선진국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그때에 실감했다. 국민소득이나 잘 산다는 것만 가지도 큰 소리를 칠 수는 없다.
글에서 읽는 박영미 님은 그래도 용감한 분이다. 나 같았으면 권위나 체면에 굴복해 말없이 자리를 양보하고 말았을지 모른다. 속으로는 더럽다고 욕하면서 부끄럽게도뒤로 물러섰을 것이다.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 싸울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여간한 용기가 아니다. 또 그런 행동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잘못된 것에 대해 따지고 항의하는 것이 민주시민에 제일 필요한 덕성이아닐까. 그것은 사랑하는 내 자식들을 더 나은 세계에서 살게 하기 위한 나의 책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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