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절망이 아니었던 시대가 있었던가

샌. 2007. 12. 6. 09:41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후배 K가 현실 상황의 절망감에 대해 울분을 토로했다. 늘 올곧게 생각하고 살려는 사람이라 답답해 하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고 공감이 되었다. 선거로 과연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도 나왔고, 대중들 수준이 이런 단계에 머물러서는 결코 민의가 역사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데 대해서도 공감했다. 이 시대의 화두는 오직 경제다. 코 앞에 닥친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가 최대 이슈가 되고 있고, 국민들 관심사도 부자가 되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 국민들 머리 속에는 오직 먹고사니즘 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에서는극심한 생존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로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사람들은 제 덫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그런 현실의 아귀다툼에서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대중적 지혜가 아쉽다고 술잔을 기울였다.

다음 날 K가 본인이 어느 카페에 올린 것이라며 짧은 글 한 편을 메시지로 보내 주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공포의 문화와 선망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공포는 더 이상 개인의 삶을 최소수준에서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권력의 해태와 공적 부조의 상실에서 오는 개인들의 절망감에서 비롯됩니다. 비정규직 50%의 사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 삶이 황무지로 유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에서 삶의 양지를 점한 사람에 대한 시선은 선망으로 작동합니다. 선망, 좀 더 레디컬하게 말하면 시샘이고 더욱 레디컬하게 말하면 증오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포와 증오의 주타킷이 바로 중산층입니다. 최상층은 타킷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오르지 못할 산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중산층이 대대적으로 몰락하면서 아직도 중산층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대대적으로 발동하고 있습니다. 왜 나는 진즉에 굴러 떨어졌는데 너희는 여전히 버티고 있느냐. 어서 내려오라는 겁니다. 그 싸움을 자본과 권력은 지켜보거나 즐기고 있습니다. 일종의 이이제이가 되는 셈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이이제이의 군주가 되고 있습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 성채를 건드릴 수 없다는 득의가 느껴집니다. 2007년 대선을, 대한민국 대중들은 '경제를 살린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가 남의 밥그릇을 뺏어다 자기에다 갖다 줄지도 모른다는 허위의식을 통해 투시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어이없는 일입니다. 부의 총량이 증가하면서 나의 몫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것 뺏어먹는 약탈을 통한 경제행위를 경쟁력으로 포장하고 있는 이 속임수의 경제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은 뚫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어느 강연에서 현대의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래밍된 세상의 구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의미와 인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심도있는 고민을 하지 않는 한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할 것이다. 후배가 지적한 대로 우리들 대부분은 이 속임수의 경제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하고 있다.

역시 며칠 전에 TV에서 다섯 명의 대통령 후보 진영의 대표자들이 나와서 술집에서 난상토론을 하는것을 보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정치인들의 수준을 여기서 다시 논할 생각은 없지만, 그 중에서이명박 측 대표로 나온모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후보의 지지율이 이렇게 계속 높은 것은 국민들이 그 정도는 다 이해해 주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그 정치인의 말대로 세상과 사람들이 이 정도로까지 변질되고 타락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IMF 이후 불안해진 세상은 사람들을 더욱 돈에 집착하게 만들고 있다. 파렴치 하더라도 경제만 잘 되게 해 준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헛된 주술에 온 국민이 취해 있는 것 같다. 마치 무뇌아들 처럼 누군가가 선동하는 욕망의 길로 너도나도 몰려간다. 이젠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져야 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런 풍조가 슬프고 우울하다.

남과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이제 꿈 꿀 수 조차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려는 사람은 가차없이 왕따시키고 매장시켜 버리는 세상이 되었다. 부도덕과 불의가 대낮의 거리를 거리낌없이 활보하며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있으니 어디서 인간적인 품위와 따스함을 찾을 수 있겠는가. 나로서는 대낮에 아테네 거리를 등불을 들고 돌아다닌 디오게네스의 심정이 더욱 절절이 실감되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런 위로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절망이 아니었던 시대가 언제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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