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어떤 대화

샌. 2007. 11. 30. 17:05
교사 아카데미에 K씨가 강사로 나왔다. 그분이 나누어준 자료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K씨와 열 살 된 아들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이다.

"어떤 아이들은 굶는데, 어떤 아이들은 먹을 게 남아서 버리잖아. 하느님은 어떤 아이가 더 마음이 아프실까?"

"음... 부자 아이들."

"부자 아이들?"

"응."

"설명해 볼래?"

"하느님은 사람이 다 평등하게 살 줄 아셨을 것 아냐. 그러니까 하느님은 굶는 아이들 생각 못하고 음식을 버리는 아이들 보면 마음이 아프실 거야."

'가난한 아이들'이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K씨 입장에서는 아이의 말이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했다.

"아빠가 예수님 이야기 하나 해줄까?"

"응."

"예수님이 회당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걸 보고 있었어. 부자들이 거들먹거리며 많은 돈을 헌금통에 넣고 가는데 어떤 가난한 아줌마가 얼굴이 발개져서 동전 한 개를 넣었어. 예수님이 그 아줌마가 누구보다 많이 냈다고 말했어. 왜 그랬을까?"

"응, 부자는 큰 돈을 냈지만 자기가 가진 걸로 보면 조금만 낸 거 아냐? 아줌마는 동전 두 개를 냈지만 가난해서 자기 걸 거의 전부를 낸 거니까 더 많이 낸 거 아냐?"

참고로K씨 아들은 학교에서최우수토론상을 받았을 정도로 열 살의 철부지라고 하기에는 대화나 의식 수준이 상당히 높다.

"이건 예수님이 들려준 이야긴데, 어떤 농장 주인이 날품 일꾼을 구해 일을 시켰어. 그 중엔 오후에야 일을 하러 온 사람도 있었어. 저녁에 품삯을 주는데 종일 일한 사람이나 오후부터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주는 거야. 당연히 종일 일한 사람들이 항의를 했지. 예수님은 그 주인이 옳다고 말했어. 왜 그랬을까?"

"응, 조금만 생각해봐도 돼?"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후부터 일한 사람들도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잖아. 그래서 똑같이 준 것 아냐?"

"그래. 그런데..."

"틀린 거야?"

"아니, 이런 건 수학문제처럼 맞다 틀리다만 있는 게 아니야."

"히히."

"예수님은 아침부터 종일 일했든 오후부터 일했든 하루 먹고사는 데 필요한 돈은 같다는 거야."

"그렇구나."

"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잖아? 두 사람이 일한 만큼 가지는 게 옳을까?"

"아니."

"왜?"

"예수님이 말한 것처럼 필요한 만큼 가져야하니까."

"그래. 그런데 세상은 어떻지?"

"안 그렇지 않아?"

"그래. 세상은 예수님 생각이랑 많이 다르지. 그래서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 부자인 것만으로 하느님 앞에선 부끄러운 거야. 넌 나중에 어떤 사람들 편을 들 거야?"

"가난한 사람들."

"괴로운 일도 많을 텐데."

"괴로워도 그게 맞잖아."

"그래. 괴로워도 그게 맞지. 그런데 꼭 괴롭기만 할까? 기쁨은 하나도 없을까?"

"아, 기쁨 있어!"

아이의 목소리가 커지며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 승호 문병 갈 때 내가 아끼는 카드 삼십 장하고 왕딱지 다섯 개 갖다 주었는데 기분이 참 좋았어."

"덜 아끼는 걸로 골라 줄 수도 있었는데 망설여지지 않았어?"

"망설여졌어. 그런데 주고 나니 몇 배 기분이 좋았어."

"망설이다가 그냥 덜 아끼는 걸로 주었다면 어땠을까?"

"부끄러웠을 거야."

"아무도 모르는데?"

"나한테 말야."

아이의 마지막 말에 K씨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K씨는 말했다.

"이런저런 지식과 교양과 사상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열 살 짜리 막내 아이보다 못한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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