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05

빈곤을 보는 눈

며칠 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최근 3년간의 국가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인 OECD 37개 국가 중에서 한국의 행복지수는 35위였다. 우리 밑으로는 그리스와 터키만 있었다. 상위권을 차지한 나라는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등이었다. 우리나라의 빈곤율 수치도 행복지수와 마찬가지로 하위권이다. 빈곤율은 약 15% 정도 되는데 우리 아래로는 미국과 일본 정도가 있다. 특히 노인의 빈곤율은 40%가 넘어서 심각한 수준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은 경제 규모만 그렇다 뿐이지 삶의 질은 형편 없다. 나라는 부자여도 국민은 힘들게 살아간다. 자칭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이 정권에서도 빈부격차나 빈곤율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에..

읽고본느낌 2021.05.22

제발

제발 국민 좀 들먹거리지 말아 다오. 국민이 너희들의 호구가 아니다. 상식과 정의를 내세우는 건 이해한다. 그건 너희들의 기득권과 조직을 위한 상식과 정의란 걸 다 안다. 어깨들이 '차카게 살자'라고 한들 분노하지는 않는다. 비웃어주면 된다. 너희들의 상식과 정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너희들은 뻑 하면 국민을 내세운다. 국민을 위해서 분골쇄신하겠다고 큰소리친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는 그 의무감 좀 벗어줄 수 없겠니? 검찰총장이 짧은 성명을 내고 사표를 냈다. 그 중에 '국민'이 두 번이나 나온다. 제발 애꿎은 국민팔이는 하지 말아다오. 여든 야든, 어떤 이익집단이든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흑심은 숨긴 채. 국민이 너희들의 들러리는 아니다. 국민은 너희들이 앞장서지 않..

길위의단상 2021.03.07

26일 동안의 광복

1945년 8월 15일부터 미군이 조선총독부에서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게양하는 9월 9일까지 26일 동안을 기록한 책이다. 부제가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은 시간들'이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한겨레신문의 길윤형 기자가 썼다. 1부는 8월 15일 광복 당일의 숨 가빴던 시간을 세 세력(여운형, 총독부, 송진우)의 입장에서 복원한다. 혼란한 때에 발빠르게 나선 쪽은 여운형이었다. 총독부는 치안 유지와 일본인의 안전을 위해 명망 있는 인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운형은 총독부의 방침에 협조하면서 건국동맹을 기반으로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든다. 광복을 전후한 시기의 중심인물은 여운형이었다. 그가 만든 건준은 안재홍 주도로 끝까지 좌우합작을 시도한다. 그러나 우익을 대표하는 송진우는 좌익에 이용당할 것을 두려워해 ..

읽고본느낌 2021.01.09

나는 5.18을 왜곡한다 / 최진석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왜곡한다. 1980년 5월 18일에 다시 태어난 적이 있는 나는 지금 5.18을 그때 5.18의 슬픈 눈으로 왜곡하고 폄훼한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면서 그들에게 포획된 5.18을 나는 저주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 금남로, 전일빌딩, 전남도청, 카톨릭센터, 너릿재의 5.18은 죽었다. 자유의 5.18은 끝났다. 민주의 5.18은 길을 잃었다. 5.18이 전두환을 닮아갈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속았다. 3.1, 4.19, 6.10, 부마항쟁의 자유로운 님들께 동학교도들의 겸손한 님들께 천안함 형제들의 원한에 미안하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를 가둔 5.18을 저주한다. 그들만의 5.18을 폄훼한다. 갇힌 ..

시읽는기쁨 2020.12.25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울 같은 책이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나라만 들어갈 수 있다는 '3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나라)에 들어간 일곱 번째 나라가 되었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이다. 대한민국은 경제적 성취와 정치적 민주화에서는 세계에서 독보적인 나라다. 반면에 '헬조선'이라는 말처럼 불명예의 기록도 다수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고,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불평등이 가장 심하고, 아이들이 가장 우울하고, 아이들을 가장 적게 낳고, 제일 서로를 불신하는 나라다. 이 정도면 지옥이라 할 만하다. 어느 외국 학자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

읽고본느낌 2020.11.03

친일과 대한민국

친구가 카톡으로 긴 글을 보내 주었다. 글쓴이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최진석 선생이다. 전에 EBS를 통해 선생의 노자 강의를 감명 깊게 들었던 적이 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념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 상황을 보는 것 같다. 성숙한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차피 한 번은 견뎌내야 할 통과의례인지 모른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언젠가는 발목을 잡는다. 친일과 반일에 관련된 논란도 그중 하나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독단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지만 선생의 견해 역시 경청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가을호에 실린 따끈따끈한 글이다. 친일과 대한민국 / 최진석 조국과 민족의 번영을 꿈꾸는 나는 작년 7월에 발표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

길위의단상 2020.09.01

시무7조 상소와 하교문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시무(時務)7조 상소문'이 화제다. 글쓴이는 진인(塵人) 조은산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필력을 갖춘 분이 아닌가 싶다. 이분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글재주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분 글을 옮겨 적다 보니 우리 사회의 공동체 정신이 무척 아쉽다는 걸 느낀다. 보수의 첫째 가치는 공동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민족을 경시하고 사리 추구와 외세 의존이 보수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 일부 극우의 사상이 점점 확산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분 글의 오독인 줄 모르지만, 내 가진 것을 앗기기 싫다는 혜택받은 자의 억지투정으로 읽힌다. 사악하다고까지는 차마 말하지 않겠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양극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길위의단상 2020.08.30

두 견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공평무사한 입장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누구나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과 현상을 본다. 심하게 말하면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객관적이면서 공평한 잣대는 없다. 컵이라는 실체가 있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사각형으로 보이기도 하고 둥글게 보이기도 한다. 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컵을 둥글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사각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중의 하나다. 작금의 윤미향 사태를 보면서 솔직히 뭐가 뭔지 헷갈린다. 보도를 보면 윤미향은 시민운동을 가장한 사기꾼 같아 보이다가도, 다른 편 말을 들어보면 의혹 제기가 마녀사냥식으로 너무 지나친 것 같다. 만약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검찰 수사가 들어갔으니 내가 여기서 왈가..

길위의단상 2020.06.10

짜릿한 개표 방송

어제 실시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163석, 통합당이 84석, 정의당이 1석, 무소속이 5석을 얻었다. 민주당의 압승, 통합당의 참패다. 어느 선거나 결과가 조마조마하지만 이번 총선은 유례없는 진영 대결이 벌어져 더 흥미로웠다. 선거에서는 국민이 심판관이다. 이번 총선은 국민이 확실하게 민주당 손을 들어줬다. 통합당의 정치 행태에 환멸을 느낀 국민이 많았다는 얘기다. 민심이 어떠한지 통합당은 잘 성찰해야 할 것이다. 제발 우리나라 정치도 한 단계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막말을 일삼는 정치인도 사라져야 한다. 이번에 그런 의원들 대부분이 낙선한 건 다행한 일이다. 이래서는 표를 못 받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줬다고 생각한다. 21대 국회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길위의단상 2020.04.16

희망사항

보통 진보와 보수를 나눌 때 민주당은 진보, 통합당은 보수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내 기준으로는 민주당이나 통합당이나 모두 보수다. 민주당은 약간 진보적 색채를 띤 보수당이고, 통합당은 오른쪽으로 치우친 보수당이다. 진보라고 하면 정의당이나 녹색당, 민중당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나 통합당은 기득권층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민주당보다는 통합당이 훨씬 심하지만, 통합당과 다르다고 민주당을 진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재벌이나 부동산을 대하는 엉거주춤한 자세, 특히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보면 그렇다. 진보라면 사회가 다소 혼란을 겪더라도 복지나 평등, 정의의 문제에서 원칙을 견지하고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 말이나 구호만이 아니라 정치인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도 마땅..

길위의단상 2020.04.13

이순(耳順)

얼마 전에 초등 단톡방을 나왔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저주의 말이 너무 지나쳐서다. 경상도 농촌 출신에 나이가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들이니 정치 성향이야 뻔하다. 어디서 따오는지 황당한 글을 퍼서 나르는데 작년 여름부터 정도가 심해졌다. 태극기 부대의 집회가 기세를 올리기 시작할 때다. 단톡방에 있는 20여 명 중 나 혼자만 외톨이다. 나는 입도 뻥긋 못한다. 정기 모임에 나가서 정치 얘기가 나오면 너무 불편하다. 듣고만 있자니 속이 뒤집히는데 그렇다고 논쟁을 할 수도 없다. 도저히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에 나가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을 매일 쳐다보는 것도 스트레스여서 이번에 단톡방도 탈퇴했다. 7, 80년대에는 지역색이 국민을 둘로 가르더니, 2..

참살이의꿈 2020.03.05

신익희 생가

우리 고장 너른골 출신의 근현대 유명 인사로는 독립운동가며 정치가인 신익희 선생과 여배우인 최은희 씨가 있다. 너른 땅에 비해 인물은 그다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할 수 없다. 고향은 아니지만 이곳으로 시집 와서 묻힌 허난설헌 묘는 초월면 지월리에 있다.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1892~1956) 선생은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에서 태어났다. 서하리 현지에 생가가 보전되어 있다. 현재 가옥은 1925년에 지었다. 서하리 마을 입구에는 선생 생가를 알리는 돌담 벽이 있다. 여기서 100m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생가가 나온다. '조국의 독립과 정치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헌신한 실천적 정치 지도자'라는 선생의 약력을 읽어본다. 선생의 일생은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활동, 해방 후 정치 활동이라는 두 시기로..

사진속일상 2019.10.27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통계를 보면 사람들이 내 블로그에 찾아오는 횟수가 하루에 500~900번 정도다. 가끔 1천 회가 넘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2천 회를 넘은 날이 있었다. 아주 드문 경우다. 어떤 검색어로 들어왔는가 봤더니 박노해의 '동그란 길로 가다'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동그란 길로 가다'는 2012년 5월에 블로그에 올렸는데, 하루에만 이 시를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이 1천 명을 넘었다. 정경심 교수가 페이스북에 이 시를 인용하면서 많은 사람이 확인차 내 블로그에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시를 다시 읽어본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

길위의단상 2019.10.23

진보와 보수

"보수의 윤리는 합법에 있다. 그러나 진보의 윤리는 합법에 대한 질문에 있다." 김규항 씨의 글을 읽다가 무릎을 친 말이다. 요사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정치 공방이 거세다. 조국 후보자는 진보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딸에 대한 의혹에 대해 그는 말했다. "적법한 행위였고 부정한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합법이나 적법은 진보에서 변명으로 쓸 말이 아니다. "진보의 윤리는 합법에 대한 질문에 있다." 김규항 씨의 발언은 정곡을 찌른다. 한때는 '강남 좌파'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제는 '진보 귀족'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진보 귀족은 말로는 개혁,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지만 삶은 전형적인 기득권층을 닮았다. 합법이라는 그늘 뒤로 숨어서 제 이득 챙기..

길위의단상 2019.08.23

노래 / 김남주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지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노래 / 김남주 조국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에 인용해서 화제가 된 시다. '죽창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로 불려졌는데, 원래 제목은 '노래'다. 제목에 따라 시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죽창가'라고 하면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의분이 일어난다. 조국 민정수석은 SNS로 이번 사태의 진상이 무엇인지 법률학자답게 냉철하게..

시읽는기쁨 2019.07.23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소견

점잖게 말하면 '수출 규제'이고, 사실은 '경제 보복'이다. 위안부 합의 사항을 파기한 것과, 개인의 불법 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의 배상을 결정한 우리나라 대법원판결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역시 아베다운 행동이다. 첫째, 정치 문제를 무역으로 보복하는 일본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일본은 한국 반도체 제조에 꼭 필요한 소재의 수출 길을 막으려 한다. 자기들만 가지고 있는 핵심 기술이니 대체재도 마땅치 않다.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고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가하려는 치졸한 짓이다. 이렇게 하면 세계 자유무역의 질서는 깨진다. 상대국 정책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는 한국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이 명약관화하다. 껄끄러운 문재인..

길위의단상 2019.07.22

외계인이 와야 한다 / 이영광

콩가루 집안도 옆집과 싸움 나면 뭉치고 툭탁거리는 아이들도 딴 학교랑 축구 하면 함께 응원을 한다 딴 동네 딴 도시 딴 지방과 다툼이 나면 한 동네 한 도시 한 지방이 된다 전라도와 사이가 틀어지면 경상도가 된다 경상도와 맞설 때면 전라도가 된다 북한과 다툴 때면 남한이 되고 일본 중국과 분쟁이 나면 한 민족이 된다 월드컵만 열렸다 하면 아우성치는 대한민국이 된다 그러므로 외계인이 쳐들어와야 한다 성간우주를 안마당처럼 누비고 다니는 외계 우주선들의 어마어마한 습격 앞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을 것이다 서방과 아랍이 연대할 것이다 동아시아 제 국가들이 단결할 것이다 외계인이 와야 한다 기독교와 무슬림이 형제가 될 것이다 흑 백 황 적, 모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이 하나가 될 것이다 인간과 사자와 뱀..

시읽는기쁨 2019.05.22

한국은 노래방 / 김승희

당신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 노래방에서 당신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삼십분 넘게 앉아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에게 노래를 부를 것을 권한다 강요한다 애소하고 명령한다 노래방에서 당신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삼십분 넘게 앉아있어 본 적 있는가 당신은 남북통일에 반대하는 사람 DMZ를 만드는 사람 수원지에 독극물을 붓는 사람 성수대교를 무너뜨리는 사람 백범 김구를 암살한 바로 그, 그, 그 장본인이 된다 길은 이것뿐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남겨두고 노래방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당신은 아웃사이더가 된다) 노래를 부르라고 부르라고 잡아끄는 친구들의 팔목을 절단해 버리고 친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당신은 체제 부정자가 된다) (이제 당신은 비로소 노래부르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시읽는기쁨 2019.04.03

로이터 선정 올해의 사진

로이터통신이 올해를 대표하는 사진 100장을 선정했다. 로이터통신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밝은 뉴스보다는 어두운 뉴스가 많지만 보도사진의 특성상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어느 해나 그렇지만 내전이나 테러, 자연재해 사진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사진을 골라보았다. 우리나라 관련 사진도 5장이나 된다.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5월). 내전중인 시리아의 한 마을에서 아이가 가방 안에서 자고 있다(3월). 그린랜드에서 녹고 있는 빙산(6월). 미투 운동이 활발한 한 해였다. 우리나라도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뉴욕 재판소에 들어가는 하비 웨인스타인(5월). 미국은 더 힘이 세지고 있다. 미 육군 훈련을 참관하는 트럼프 대통령(8월). 나치의 망령은 아직 살아 있..

길위의단상 2018.12.16

노무현과 문재인

10여 년 전 노무현 정부 때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을 포함해 정책 입안자 상당수가 당시의 아픈 체험을 겪었을 텐데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듯하여 안타깝다. 서울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고 나서야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다. 사후약방문이다. 이런 즉흥적 처방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때려잡겠다고 얼마나 큰소리를 쳤는가. 그러나 시장은 콧방귀도 안 뀌었다. 그런 데서 뭔가를 배웠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가격 폭등의 쓰린 과거를 갖고 있다. 서울 집을 처분하고 시골로 내려간 건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믿은 일면도 있었다. 시골에 잘 정착했으면 서울 집값이 오르든 말든 ..

길위의단상 2018.09.14

어느 정치인의 죽음

그저께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노 의원은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 중 한 분이었다. 노동자와 서민 편에 섰던 분을 잃게 되어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이다. 그분을 자살로까지 내몬 정황이 그렇게 심각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이 자꾸 든다. 고인은 드루킹으로부터 4천만 원을 불법으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한다. 액수가 많지도 않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이런 일은 정치판에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러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고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는지 모른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정의당과 진보 정치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다. 아마 본..

길위의단상 2018.07.25

논어[297]

선생님 말씀하시다. "구야, 참된 인간은 '욕심이 납니다'라 하지 않고, 무어니 무어니 핑계를 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내가 듣기에는 '나라나 집을 지닌 사람은 사람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불공평할까 걱정하며,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않고 불안정할까 걱정한다'고 한다. 대개 공평하면 가난하지 않고, 화목하면 사람이 적지 않고, 안정하면 기울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 때문에 먼 데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다면 문화의 힘으로 따라오게 만들며, 이미 왔거들랑 안정을 시켜 주어야 한다. 이제 유와 구는 그 분을 돕되 먼 데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 것을 따라오게도 못하며, 나라는 갈가리 찢어져도 걷어잡지 못하고, 그러고서 국내에서 병력을 동원하려고 하니, 내 짐작에는 아마도 계손씨의 근심은 전유에게 있는 것..

삶의나침반 2018.07.10

4월 27일

하루 종일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아침 식사를 단식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자는 본당 신부님의 부탁이 있었다며 아내는 아침을 걸렀다. 나도 덩달아 따라 했다. 4월 27일 오늘,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평화로 나아가는 선언을 했다. 전에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보다 이번 판문점에서의 만남이 훨씬 더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 생중계의 효과인지 몰라도 군사분계선에서 둘이 악수하고 북쪽으로 넘어갔다 돌아오는 퍼포먼스부터 도보다리에서의 밀담 등 가슴 뭉클한 장면이 많았다. 몇 달 전까지도 한반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덮여 있었다. 평창올림픽 이후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통일이 되지는 않더라도 제발 좀 사이좋게 지내자. 이번 '판문점 선언'에 밝힌 대로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다. 지금까..

길위의단상 2018.04.27

하나씩 차근차근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막되었다. 두 달 전만 해도 올림픽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염려스러운 분위기였다.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한반도를 감쌌다. 다행히 올림픽에서 남북 공동 입장이 합의되고, 여자 아이스하키에서는 단일팀이 만들어졌다. 예술단과 응원단도 내려왔다. 갈등의 구조는 여전하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북에서 내려온 대표단은 문 대통령과 여러 차례 만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의지가 보여 반갑다. 10일 저녁에 남북 단일팀의 아이스하키 경기가 있었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일반 관람석에 나란히 앉아 응원했다. 남과 북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마음으로 환호하는 모습이 감격스러웠다.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불과 한 달 전만 해..

길위의단상 2018.02.13

대단하다

오늘 뉴스를 검색하다가 깜짝 놀랄 사진을 보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의 영부인들이 찍은 기념사진이다. 그런데 남성이 한 명 끼어 있다.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의 동성 연인이라고 한다. 베텔 총리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고 2015년에 동성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은 유럽연합 국가 지도자 중 최초의 동성 결혼이어서 화제를 모았단다. 총리의 연인은 이날 영부인의 자격으로 당당히 사진을 찍었다. 서양 사람들 의식은 정말 대단하다. 우리와 비교하니 더욱 그렇다. 지난달 대선 토론회에서는 동성애를 찬성하느냐의 여부로 논란을 벌였다. 진보 성향의 후보조차 찬성한다고 밝힐 수 없었다. 아마 소신껏 말했다면 우수수 표가 떨어졌을지 모른다. 만약 자신이 ..

길위의단상 2017.05.29

내 탓이오

접촉 사고가 나더라도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무조건 네 탓이라고 우겨라. 30년 전에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샀을 때 선배 운전자한테서 들은 충고였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긴다는 통설이 널리 퍼졌던 시기였다. 지금은 보험회사에 전화만 하면 과실 비율을 판정해 준다. 네 탓, 내 탓으로 낯 붉힐 일이 별로 없다. 겨울 스포츠로는 배구를 좋아한다. 특히 여자배구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즐겨 본다. 배구는 실수가 자주 나오는 경기다. 그럴 때는 손을 들거나 가슴에 손을 대면서 미안함을 표시한다. 대신에 동료들은 괜찮다고 격려해 준다. 배구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반대로 상대 팀에 대해서는 자기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다. 블로킹을 하다가 손가락에 맞았더라도 모른 척한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

참살이의꿈 2017.04.15

2016. 12. 9.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여섯 차례에 걸쳐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매운 시민의 외침이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남아있지만, 대통령 퇴진이라는 시민의 요구를 결코 무시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2016년 12월 9일, 이날은 역사에 시민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순실에 의한 국정 농단에 분개했지만, 촛불을 통해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 1조의 생생한 교육장이었다. 어떤 어둠의 세력도 빛을 이길 수는 없다. 수백만 명이 모였지만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폭력 사태와 계엄령 선포라는 대혼란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은 분노를 표현하되 마치..

길위의단상 2016.12.12

논어[220]

자하가 거보 지방 원이 되어 정치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성공을 서둘지 말고, 잔 잇속에 팔리지 마라. 서두르면 사리가 툭 트이지 않고, 잔 속수에 팔리면 큰 일이 되지 않거든." 子夏 爲거父宰 問政 子曰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 子路 13 지금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작은 이익[小利]'에 급급하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 때일수록 욕심을 버리고 정도(正道)를 걸어가길 충고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는 문구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한다. 안연편에 나온다. 자공이 정치에 대하여 선생님께 물으니, 국방, 민생,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중에서도 제일 귀한 것이 신뢰이고, "백성들은 믿음 없이는 지탱 못한다[民無信不立]"라고 ..

삶의나침반 2016.11.19

2016년 가을

충격적인 일이 닥치면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분노하게 되고, 그 뒤에는 우울증이 찾아온다. 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사회적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몇 주째 허탈과 우울증에 빠져 있다.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는 설마 그랬을까, 라고 생각했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분노하게 되고, 그 뒤로 우울증이 찾아왔다. 지금은 화를 내기도 지쳤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기력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십 년 넘게 블로그를 하면서 거의 매일 글을 올렸다. 집에 있으면서 컴퓨터를 열지 않은 적은 드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가 텅 빈 듯해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다. 바깥나들이도 귀찮다. 세..

길위의단상 2016.11.14

서프러제트

100년 전 영국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인 '모드 와츠'는 남편과 함께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여성은 아직 참정권도 얻지 못했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였다. 모드는 우연히 거리에서 서프러제트의 시위 장면을 보고 차별적인 현실에 눈을 뜬다. 서프러제트인 동료 노동자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하면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에게 딸이 있다면 그 딸은 어떤 세상을 살까요?"라고 남편에게 하는 질문에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모드는 서프러제트의 일원이 되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폭력 시위에 나선다. 감옥에도 가고 단식투쟁도 한다. 그 결과 집에서도 쫓겨..

읽고본느낌 201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