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이해한다

샌. 2022. 3. 11. 11:04

고등학교 동기 친구가 있다. 편의상 G라고 부르겠다. 우리는 시골에서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니 인연이 남다르다. 네 명이 올라왔는데, 둘은 일찍 세상을 뜨고 G와 나만 남았다. 그러니 각별한 사이가 아닐 수 없다. G는 나를 대부로 삼고 가톨릭 영세를 받았으니 종교적 끈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소원한 이유는 서로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견해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G는 경상도 출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보수이고, 나는 반대편이다. 정치 얘기가 나올 때마다 티격태격한다. 상대를 잘 아니까 조심하기 하지만 얘기를 하다 보면 정치가 화제에 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G는 문재인 대통령을 너무 싫어한다.

 

몇 년 전에 G의 집에 가서 하룻밤 자며 지낸 적이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을 하러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던 때였으니 2018년 9월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공항에 내리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는데, G는 밖에 할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장면을 왜 안 보느냐고 했더니 G는 이렇게 대답했다.

"문재인이 꼴 보기 싫어."

G는 아예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지경이었다. 얼마나 싫으면 TV 화면에 나오는 얼굴조차 보지 않으려 할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나선 길인데 잘 되기를 기원해 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는 탄핵 트라우마가 생각보다 깊은지 모른다.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미움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박근혜 탄핵 이후로 양 진영의 골이 너무 깊어졌다.

 

그저께 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아슬아슬하게도 윤석렬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0.7%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했다. 불과 24만 표 차였다. 나는 개표 방송을 보며 속이 쓰려서 애꿎은 술만 퍼마셨다. 덕분에 다음날은 침대에서 배를 움켜쥐고 뒹굴어야 했다. 곧 청와대에 들어갈 두 사람을 앞으로 5년 동안 봐야 한다니 상상하기도 싫었다. G를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나도 이유 없이 싫은 것이었다. 이런 부정적 기운이 어디서 오는지 나로서도 의아하다.

 

"경북이 나라를 구했다!"

"위대한 서울시민 만세!"

초등 동창들 단톡방에는 이런 문자들이 연신 올라왔다. 정치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웃을 원망하며 경원시하게 될까? 반면에 낙담하는 목소리도 크다.

"살 맛이 안 난다."

"앞으로 5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쓸데없이 감정 소모를 하는 건 아닌지 반성이 된다. 정책이나 태도에 대해 반대할 수 있지만 인간을 경멸할 이유까지는 없는 것이다. 국민을 들러리로 세우고 저희들끼리 정권을 주고받으면서 단물을 빠는 것이 정치인이 아닌가. 여든 야든 마찬가지다. 저들은 현재 상황이 자신의 정치적 야욕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저들의 꼭두각시놀음에 앞장서 박자를 맞춰줄 필요야 없지 않은가.

 

대통령 선거의 후유증으로 생긴 앙금을 정리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당분간 새 대통령 부부가 등장하는 장면을 바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친구야, 이제 네 심정을 이해한다. 자제하려 하지만 밉상으로 보이는 걸 어쩌겠니. 그리고 널 만나는 것도 당분간 보류다. 우리 둘이서 같이 TV 뉴스 화면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큰 기대는 안 하지만 윤 대통령이 우리 사회를 통합하고 갈등을 치유하는 훌륭한 리더가 될지 누가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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