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6, 70년대 상춘(賞春) 장소는 창경원이 유일했다. 해마다 벚꽃 철이 되면 창경원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밑의 사진 같은 모습은 그나마 질서가 잘 잡힌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고, 그래서 60년대 후반의 창경원의 봄을 기억한다.
그때 살던 곳이 돈암동이어서 걸어서 창경원까지 갔다. 어느 해 봄에는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함께 창경원 벚꽃놀이에 간 기억이 난다. 얼마나 상춘객이 많았는지 꽃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었다. 당시 창경원 안에는 동물원과 놀이기구가 있는 유원지도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종합 놀이공원이었던 셈이다.
당시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에 잠겨본다.
청춘남녀들에게는 창경원 밤 벚꽃놀이가 더 인기였다. 아마 나이 지긋하신 분들 중에서 창경원 봄밤의 데이트를 즐기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래는 1958년 4월의 경향신문 기사다. 창경원 밤 벚꽃놀이는 5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모양이다. 기사를 보면 낮 관람객을 모두 내보내고 원내를 청소한 뒤 저녁 7시부터 다시 야간 관람객을 받는다고 한다. 당시 입장료는 어른 100환으로 되어 있다. 밤 벚꽃놀이를 위해 600개의 전등과 써치라이트, 그리고 춘당지에는 네온까지 설치했다고 소개한다.
대학 신입생이었을 때 봄이었으니 1971년이었다. 그때 대학생들한테는 미팅이 유행이었다. 놀끼가 있던 애들은 이곳저곳 바쁘게 기웃거렸고, 나는 나가봤자 여학생이 쳐다보지도 않으니 짐짓 관심 없는 척했다. 그래도 두세 번 정도는 나가지 않았나 싶다.
한 번은 친구가 하도 강권해서 파트너를 정하는 쪽지를 하나 뽑았다. 창경원에서 밤 벚꽃놀이를 즐기는 개인 미팅이었다. 쪽지에 적힌 접선 방법이 창경원 분수대에서 담배를 거꾸로 물고 있으라는 거였다. 그러면 파트너가 알아서 찾아온다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서 나름대로 한껏 멋을 부린 다음 창경원 분수대에 나갔다. 쪽 팔리는 걸 무릅쓰고 담배를 거꾸로 물고 기다렸다. 잘하면 애인이 생길지 모르는 일인데 잠깐의 민망함은 견딜 수 있었다.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지나갈 뿐 다가오는 여학생은 없었다. 무려 30분을 더 기다렸다. 미련하게스리~ 그 뒤로는 미팅을 나간 적이 없었다.
옛날 사진을 보니 문득 떠오른 에피소드다. 이 사진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내 인생의 봄날 역시 봄날임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함에도 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사계절 중에 유일하게 '상(賞)'이 붙는 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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