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빈곤을 보는 눈

샌. 2021. 5. 22. 10:28

며칠 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최근 3년간의 국가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인 OECD 37개 국가 중에서 한국의 행복지수는 35위였다. 우리 밑으로는 그리스와 터키만 있었다. 상위권을 차지한 나라는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등이었다.

 

우리나라의 빈곤율 수치도 행복지수와 마찬가지로 하위권이다. 빈곤율은 약 15% 정도 되는데 우리 아래로는 미국과 일본 정도가 있다. 특히 노인의 빈곤율은 40%가 넘어서 심각한 수준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은 경제 규모만 그렇다 뿐이지 삶의 질은 형편 없다. 나라는 부자여도 국민은 힘들게 살아간다.

 

자칭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이 정권에서도 빈부격차나 빈곤율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고, 젊은이들은 정직한 꿈을 꾸는 대신 일확천금의 욕망을 쫓는다. 노무현 정권의 판박이를 보는 것 같다. 인간 중심이라는 구호는 거창하지만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는 냉소주의만 부추긴다. 문재인 정권도 혹독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 사회의 가난에 대한 진실과 거짓'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빈곤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하루 한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절대빈곤층은 많지 않지만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상대빈곤층은 점점 증가해 간다. 이는 우리의 정치 경제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천민자본주의 시스템이 득세하는 한 탈출구는 없다. 빈곤의 원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중요하다고 책은 강조한다. 커지는 빈부격차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첫째 과제라고 생각한다.

 

<빈곤을 보는 눈>은 열다섯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에게 투표하나'를 간추려 본다. 선거 때마다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 행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자들의 정당을 지지할까? 가난한 노동자는 자본자를 편드는 보수 후보에게 표를 던질까?

 

이는 미국도 비슷한데 유권자들은 정책보다 문화와 신앙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이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개의 본능으로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1) 연약한 대상을 보살피려는 본능

2) 공정함을 추구하는 본능

3) 자기가 속한 그룹에 충성하려는 본능

4) 권위를 존중하는 본능

5) 순결과 신성함을 소중히 여기는 본능

 

처음 두 가지는 거의 누구에게나 발달되어 있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에게 더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 보수당은 진보주의자들이 덜 중요하다고 여기는 세 가지 본능을 자극하고 호소한다. 사람들은 어떤 것에 대해 판단할 때 이성보다는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본능적 직감을 사용한다.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을 아무리 이성적으로 설득하려 해도 끝내 설득이 안 되는 이유다. 계급 투표를 당연시하는 것은 사람들이 철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설명이다.

 

계급적 처지가 계급적 행동을 낳기 위해서는 필요조건이 있다. 먼저 당사자가 자신의 계급을 자각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제대로 된 계급정당이 있어야 한다. 대중의 계급 의식의 결여, 정치에 대한 혐오 등이 겹친 상태에서 유권자만을 나무랄 수도 없다. 집값 폭등을 바라보는 집 없는 서민이 민주당 정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치인의 책무가 더 큰 이유다.

 

심화하는 빈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경제 구조와 개혁을 게을리하는 정치와 정책에 책임이 있다. 이 부조리한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려는 자들의 거짓 논리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을 때 해격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그들의 권위와 명성에 주눅 들지 않고 "당신들은 틀렸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과, 다른 나라들의 경험을 살피면서 더 나은 삶의 방안을 궁리하는 것이다. 루쉰의 말처럼, 본디 있다고도 또 없다고도 할 수 없는 희망은 마치 땅 위의 길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그리고 땅 위의 길은 생각의 길을 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산어보  (0) 2021.05.25
노매드랜드  (0) 2021.05.23
정약용의 여인들  (0) 2021.05.09
다읽(10) - 좀머씨 이야기  (0) 2021.05.05
내가 사랑한 지구  (0) 2021.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