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정약용의 여인들

샌. 2021. 5. 9. 11:36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선생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한 여인의 시중을 받았고 딸까지 낳았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여인의 이름은 진솔이고 딸은 홍임이다. 다산이 18년 간의 유배를 마치고 마재로 돌아올 때 진솔과 홍임도 동행했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하지만 다산에게 소실이 있었다고 해서 그분의 학문이나 인격에 흠이 되지는 않을 텐데, 후학들이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쉬쉬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에 흥미를 느끼던 차에 찾아본 책이 최문희 작가의 소설 <정약용의 여인들>이다.

 

소설에는 다산의 유배 생활을 중심으로 부인인 혜완(惠婉), 그리고 유배지에서 만난 진솔과 홍임의 이야기가 얽혀서 나온다. 혜완은 명문가의 따님으로 다산보다 한 살 위였다. 혜완은 선비집 안방마님으로서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준다. 다산도 부인 앞에서는 꼼짝을 못 한다 할까, 소설에서는 혜완이 마재에 온 진솔과 홍임을 내쳐도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한다. 어쨌든 혜완은 다산의 유배 생활 18년 동안 집안을 지킨 여인이었다.

 

이름만 알려졌을 뿐 진솔과 홍임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소설에서는 유배 초기인 주막에서 진솔을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이후 18년 동안 진솔은 다산을 지극정성으로 모신다. 다산만 아니라 제자들의 밥까지 맡아서 다산초당의 살림을 꾸린다. 다산은 진솔 덕분에 병약해진 몸을 추수르고 저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진솔은 다산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는데 소설에서는 다산을 닮은 천재 소녀로 그려진다. 다산도 아들보다 재능이 뛰어난 홍임을 무척 아낀다. 그러나 다산의 해배 이후 두 모녀는 다산과 영원히 이별한다. 진솔은 강진에 내려가 다산초당에서 홀로 홍임을 기르면 살았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다산은 여성적인 고운 선비의 이미지다. 다정다감했을 다산이 진솔과 홍임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무관심했는지 안타깝다. 다산이 둘에 대해서 직접 발설한 말이 한 마디도 없다. 물질적 도움은 고사하고 둘의 안부를 묻거나 서신조차 보내지 않았다. 여기에는 안방 마님인 혜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른다. 반면에 진솔은 한 마디 원망도 없이 오직 다산만을 마음속에 그리며 살아간다.

 

<정약용의 여인들>은 근엄한 학자가 아니라 보통 남자로서의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아끼고 신뢰하며 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체면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가 홍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숨기고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다산에게 버림받은 진솔의 심정을 읊은 '남당사(南塘詞)'가 전한다. 작자 미상이지만 다산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작가는 이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어 <정약용의 여인들>을 썼다고 한다. '남당사'의 두 구절이다.

 

천고에 빛나는 문장 세상에 특출한 재주

만금을 주고도 한번 만나기 어렵거니

갈가마귀 봉황과 어울려 짝이 될 수 있으랴

미천한 몸 복이 넘쳐 재앙이 될 줄 알았지요

 

어린아이 총명도 해라 그 아비 닮았는가

아빠를 부르고 울먹이며 "언제 와요?"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무슨 죄라고 이 아이는 유배지에 남아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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