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노매드랜드

샌. 2021. 5. 23. 09:32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다. '노매드랜드(Nomadland)'는 '유목민의 땅'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미국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여자 주인공인 펀은 석면 원료를 생산하는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수입이 끊기고 집까지 잃는다. 2008년 미국의 경제 위기는 우리나라 IMF처럼 많은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밴에 살림살이를 싣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단기 일자리를 얻으면서 살아간다. 현대판 유목민의 삶이다. 그렇다고 펀이 절망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만나면서 서로 아픔을 공유하고 도와주며 꿋꿋하게 살아낸다. 무리를 이끌고 지도하는 밥 웰스를 비롯해 영화에 나오는 인물 다수는 배우가 아닌 실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펀이 만난 사람 중에 스완키라는 할머니가 있다. 암이 전신으로 번져 시한부 삶을 살고 있지만 병원에서 죽기 싫어 홀로 길 위에 섰다. 스완키는 과거에 아름다운 여행 경험으로 간직한 알래스카로 가는 중이다. 다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이런 삶을 살고 있다. 펀도 정착 생활을 할 기회가 생기지만 거부한다.

 

나는 이 영화를 저항과 용기라는 키워드로 읽고 싶다. 우리는 비정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언제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른다. 복지 제도가 잘 된 북유럽과는 다른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계다. 펀은 모든 걸 버리고 최소한의 수입으로 생존하는 삶을 선택한다. 욕망에 찌든 인간들과 달러의 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저항 의식과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펀이 만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내부의 목소리에 따르면서 타인이나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홈리스'와는 다르다. 펀은 "나는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야"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영화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쓸쓸하고 우울하다. 체제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모습이 안타깝다. 영화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도록 애쓰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내 혼자 잘 산다고 결코 잘 사는 길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클로이 자오는 중국계 젊은 여성 감독이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 문제와 함께 인간 내면의 모습을 잔잔하게 포착해내는 실력이 놀랍다. 작년 아카데미의 작품상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다. '노매드랜드'도 다루는 주제가 일맥 상통하지 않나 싶다. 아카데미 삼관왕의 박수를 받을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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