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자산어보

샌. 2021. 5. 25. 11:43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신하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영화에 나오는 정약전의 독백이다. 그렇다면 정약전은 동생인 정약용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가졌는지 모른다. 조선 시대 유학자가 이런 사상을 품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정약전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멋진 대사다. 실제로 노론 사이에서는 정약용보다 정약전이 더 위험한 인물이라는 평이 있었다. 그래서 정약전의 유배지가 절해고도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1801년, 정조라는 방패막이 사라지자 남인을 향한 신유박해의 피바람이 불고 정약종은 순교를 한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각각 흑산도와 강진에 갇힌다. 잘 나가던 집안이 하루아침에 폐족이 된 것이다. 정약전은 16년간 흑산도와 우이도에서 유배 중 죽었고, 정약용은 18년의 유배를 마친 후 고향 마재에 돌아왔다. 우애 깊은 두 형제는 같으면서 다른 고난의 길을 걸었다.

 

'자산어보'는 섬에 유폐된 정약전의 삶을 담백한 흑백 화면으로 담아낸 영화다. 창대라는 젊은이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물고기를 관찰하고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쓰면서 신산한 세월을 견뎌낸다. 또한 정약전 옆에는 과수댁이 있어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준다. 둘 사이에는 뒤에 아들까지 두게 된다.

 

영화에서는 창대가 육지로 나가 과거에 합격하고 관리가 되는 과정이 그려지지만 허구다. 그런 창대를 통해 조선 말기의 부패한 정치상을 고발하려는 의도는 스토리 구성상 괜찮아 보인다. 섬 생활만으로는 영화가 너무 단조롭게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목민심서>를 비롯해 유학의 이념을 구현하는 책을 많이 저술했지만, 정약전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어류 도감을 펴냈다. 이것이 둘의 차이를 설명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 않는가 싶다. 정약용은 현실을 직시하며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고 싶어 했지만, 정약전은 아예 고개를 돌렸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육지로 나가는 창대를 대하는 정약전 역시 그런 태도를 보여준다.

 

유배 생활의 외로움과 번민, 어쩌면 울분에 가득 찼을 심정이 영화에서 제대로 느껴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실제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죄인의 유배가 수발을 받으며 너무 편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서다. 잠깐 나오는 정약용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유배 생활이 길어지면서는 병고에 시달리며 무척 힘들어했던 걸로 알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지식인의 고뇌를 그려내는 데는 미진한 감이 있지만,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이라는 인물을 이 시대에 소환한 의미는 크다. 격동기의 동아시아에서 서구 학문에 관심을 보인 이런 신진 학자들이 붕당정치를 끝장내고 나라를 개혁했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아쉽게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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