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경계에 흐르다

샌. 2021. 6. 6. 10:47

최진석 선생의 철학 산문집이다. 철학이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것일진대, 제목처럼 이 책의 중심 주제는 '경계적 삶'이다.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을 모은 탓에 산만하긴 하지만 선생이 말하려는 바는 명료하게 읽힌다.

 

'경계, 비밀스러운 탄성'이라는 서문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경계에 있을 때만 오롯이 '나'다. 경계에 서지 않는 한, 한쪽의 수호자일 뿐이다. 정해진 틀을 지키는 문지기 개다. 경계에 서야 비로소 변화와 함께 할 수 있다. 변화는 경계의 연속적 중첩이기 때문이다. '진짜 나(眞我)'는 상相에 짓눌리지 않는 존재다. 이러면 부처가 되는 필요조건은 일단 채워진다. 동네 부처라도 될 요량이면 경계의 흐름 속으로 비집고 스며들어야 한다.

 

경계에 서 있으면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미래로 몸이 기운다. 미래가 열리지 않는 것을 한탄하지 마라. 내가 그저 한쪽을 지키는 성실한 투사임을 한탄해라. 경계에 서 있는 상태를 자유롭고 독립적이라 한다.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만 창의적이고 혁명적이다. 거기서 모든 위대함이 자란다. 하지만, 경계는 안타깝게도 비밀스럽다.

 

절대자유의 한계 지우지 못하는 큰 경지를 장자는 '대붕大鵬'으로 묘사한다. 대붕은 원래 작은 물고기였다. 길고 투철한 학습의 공력(積厚之功)이 극한까지 커져서 질적인 전환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던 찰나에 수양의 터전인 우주의 바다에 동요가 일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9만 리를 튀어 올라 새가 되었다. 이것이 '대붕'이다. 한쪽을 붙잡은 채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경계에 흘러야 주체는 튀어 오르는 탄성을 가질 수 있다. 탄성은 경계의 자손이자 위대함을 격발하는 방아쇠다. 대붕은 9만 리를 튀어 오르는 내내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세계는 한 순간도 멈추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고 쉼 없이 흐르며 변한다. 경계적 삶이란 이런 흐름과 함께 하는 삶이다. 특정 이념이나 신념에 사로잡히면 틀 속에 갇히고 굳어 버린다. 경계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한쪽을 선택하면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그 세계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그것을 세계의 전부로 착각한다. 한쪽을 선택하여 거기에 빠지면 바로 그 프레임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깨어 있는 사람은 경계에 사는 사람이다.

 

선생은 '확고한 신념'을 제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좁혀 보면 좌빨이나 극우꼴통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죽더라도 내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장렬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깊게 박힌 말뚝 같거나 딱딱한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오히려 사람들의 왕래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고집이거나 완고함이거나 추태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생명의 논리에 반하는 짓거리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마음'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확고한 마음이 사라져야 폐쇄적인 틀도 사라져서 자신이 온전한 자신으로 드러나고, 그렇게 되어야 세계를 보고 싶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경계적 삶이다.

 

이런 글을 보면서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가 떠오른다. 선생의 용어를 빌리면 군자란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겠다. 중용의 정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장자가 말한 '물들기 전 어린아이의 마음' 역시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자유로운 정신은 특정한 이념이나 신념,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히는 것 싫어한다.

 

<경계에 흐르다>의 한 대목을 옮긴다.

 

"왜 쓸쓸한가? 혼자이기 때문이다. 고독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곳 안에서 '우리'로 지내는 일이 이미 생명의 활기를 놓친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나'는 그 '우리'를 벗어나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 '고독'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변화'를 놓친 맥빠진 '우리'들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자태를 지키면서도, 나는 그저 쓸쓸할 뿐이다. 그래서 장자는 최고의 인격을 이렇게 표현하더라. '봄날처럼 따뜻하면서도, 가을처럼 처연하구나(凄然似秋 煖然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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