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11) - 월든

샌. 2021. 6. 19. 11:28

이번에 수문출판사에서 안정효 선생의 <월든> 번역본이 나왔다. 새로운 번역은 어떤 맛일까 싶어 책을 사서 읽었다. 책 제목은 소로우의 원제 그대로 써서 <월든 숲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이다. <월든>을 다시 읽으니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20여 년 전의 내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금 책장에 있는 책 중에서 다섯 권을 남기라면 <월든>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소중했으며 지금도 역시 귀한 책이다. 내 내면의 북소리가 울릴 때 그 울림을 외면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는 책이 <월든>이다. 그리고 이 책에 스며 있는 '월든 정신'을 나는 사랑한다.

 

'월든 정신'은 소로우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 잘 나와 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까닭은 인생을 생생하게 의식하며 살아가고, 삶의 본질적인 면목들만 접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내가 충실하게 배워서,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내가 인생을 헛되게 살지는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며, 나날의 삶이 너무나 소중하여, 삶답지 않은 삶이라면 살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리고 또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 소망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나는 삶에 깊이 잠겨 보고 싶었으며, 삶의 정수를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스파르타인처럼 강인하게 살기 위해 삶이 아닌 모든 요소를 큰 낫을 휘둘러 시원스럽게 베어내고는 다시 칼로 바싹 잘라 내버리고, 내 인생을 구석으로 몰아넣어 최소한의 조건만 남겨 놓고 따져서 천박한 삶은 아니었는지 실체가 밝혀지면, 그렇다, 그렇다면 그 천박함의 적나라한 전모를 포착하여 온 세상에 널리 알리겠으며, 반대로 숭고한 삶이라고 확인된다면, 그것을 체험으로 터득하여, 나의 다음번 인생 여로에서 참된 지침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었다."

 

'월든 정신'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삶의 지침은 간소함이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면 하루 세 끼를 먹는 대신 한 끼만 먹고, 백 가지 음식 대신 다섯 가지만 찾고, 다른 사항들 역시 같은 비율로 줄여야 옳다."

 

또한 '월든 정신'에는 세상에 대한 단호한 거역의 몸부림이 들어 있다.

 

"철로에 과일 껍질이나 모기 날개가 떨어질 때마다 탈선하는 기차가 되지는 말자."

 

"기차 화통이 기적을 울리면, 아파서 목이 쉴 때까지, 얼마든지 울리라고 그냥 내버려 두자."

 

소로우에게 있어 월든 호수 옆을 지나는 기차는 타락한 문명의 상징이었으며, 동시에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변화 물결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소루우가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은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유효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조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소로우는 2 년여 동안 월든 호수의 오두막에서 문명을 떠난 생활 실험을 했다.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삶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소로우가 완전한 은둔의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매일 아니면 하루 걸러서 마을 산책을 했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었다. 오두막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소로우 본인은 사교 활동을 좋아하지 은둔자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번에 읽을 때는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눈에 들어와서 더 친근감이 들었다.

 

요사이 나는 너무 무겁다. 살펴보면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고, 타성에 젖은 삶을 살고 있다. 이젠 소로우를 언급하기조차 부끄럽다. 그런 와중에 다시 <월든>을 읽었다. 20여 년 전에는 들떠 있었지만, 지금은 허물어진 유적을 쓸쓸히 바라보는 느낌이다. 또다시 새롭게 <월든>을 읽을 기회가 과연 찾아올까?

 

1998년에 나온 이레출판사의 <월든>. 2000년 7월에 두 번째, 2001년 7월에 세 번째 읽었다고 적혀 있다.
이번에 읽은 수문출판사에서 나온 안정효 선생 번역의 <월든>
은행나무출판사에서 50만 부 발간을 축하하며 나온 특별 에디션. 번역자는 이레와 같은 강승영 선생이다. 기념으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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