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빈곤 포르노

샌. 2022. 11. 17. 09:48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요사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통령 부부가 캄보디아를 방문했는데 김건희 여사가 독자 일정으로 병원을 방문해서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을 안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부터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이 이것을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비판하니까, 여당에서는 여성 혐오와 아동 비하라고 발끈했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는 모금 유도를 위해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영상을 말하는 용어다. 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이런 행위를 '빈곤 포르노'라는 개념으로 비판적으로 사용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먹방을 'Korean Food Porno'로 부른다고 한다. '포르노'가 우리가 상상하는 외설적인 영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당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심지어 '국모(國母) 모독'이라고 한 것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이 조선 시대인 줄 착각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모금 단체에서는 아프리카 아동의 비참한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촬영할 때 일부러 흙탕물을 식수로 사용하게 하는 등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개발도상국과 가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우려가 있다. 또한 시청자 입장에서 심히 불편하기도 하다. 내가 보는 바둑TV에는 아프리카 후원자를 모집하는 유니세프 광고가 나오는데 늘 같은 비참한 광경을 보는 게 마음이 편치 않다. 도리어 역효과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무엇이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곤 포르노'는 공론화시킬 가치가 충분하다.

 

대통령 부인의 행위를 '빈곤 포르노'라는 자극적인 용어로 규정하는 건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진에서 받는 느낌은 왠지 어색하다. 뭔가 연출된 인상을 받는다. 내가 삐딱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대통령 부인의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의 과거 행적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여서다. 가난을 동정이나 시혜의 차원에서 바라봐선 안 될 것이다. 그들도 존엄한 인격체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불행한 것도 아니다. 한 면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그들의 가난을 특정인의 이미지를 위해 도구로 사용한다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어쨌든 빌미만 생기면 벌어지는 여야의 정쟁이 너무 심하다. 트집을 잡는 쪽이나 그에 맞대응하는 쪽이나 마찬가지다. 인류가 부족 사회를 벗어난 지가 언제인데 정치판에서는 여전히 부족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빈곤 포르노'를 통해 어떻게 사회 구조가 빈곤을 야기하는지, 그 해법은 무엇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마땅할 텐데 엉뚱하게도 '포르노'라는 단어만 가지고 낯 뜨거운 진영 싸움을 하고 있다. '빈곤 포르노'는 어설프게 낭비할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미운 놈은 뭘 해도 밉게 보이는 법이다. 반면에 이쁜 놈은 무슨 짓을 해도 이쁘게 보인다. 그게 인간의 마음이다. 가난한 제3세계의 현장을 찾아간 대통령 부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사진으로 흉내만 내지 말고 봉사와 희생, 헌신을 앞으로의 삶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빈곤 포르노'라는 말을 꺼낸 사람이 머쓱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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