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트레커에서 나오다

샌. 2022. 11. 26. 11:05

14년간 함께 했던 모임인 트레커에서 나왔다. 요 몇 년 동안 참여하는 횟수가 적다 보니 뜸하게 만나게 되고 마음도 멀어지게 되었다. 끝이 다가왔음을 작년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해외 트레킹에서 연이어 배제되는 걸 보면서 굳이 회원으로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긴 시간 함께 했던 인연을 쉽게 놓지 못했다. 즐거웠던 추억거리가 많은 트레커였다.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을 계기로 트레커 모임에 가입했다. 2008년 가을이었으니 14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내 산행과 여행의 대부분을 트레커와 함께 했다. 특히 해외 트레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9년 랑탕, 2015년 야쿠시마, 2016년 뉴질랜드는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트레킹이었다. 트레커가 아니었다면 맛보지 못했을 값진 경험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트레커에 감사한다.

 

트레커 회원은 10여 명 남짓이다. 나간 사람도 있고 새로 들어온 사람도 있지만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나에게 트레커의 매력은 사람들이다. 트레커 모임에 나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산을 오르고 걷는 일이 최우선인지라 잡다한 세상사는 화제에 오르지 않는다. 아파트가 어떠니, 주식이 어떠니 하는 얘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노래방에 간 적도 없다. 나한테 딱 맞는 모임이다.

 

장점이 때로는 단점이 된다. 변화가 없는 조직은 매너리즘에 빠진다. 너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또한 일부에게는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 여러 명이 탈퇴를 했다.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트레커에서 해외 트레킹은 큰 행사다. 전에는 모두가 함께 하는 행사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부가 끼리끼리 가는 것으로 변했다. 공지를 하지 않으니 나 같은 사람은 아예 알지도 못한다. 몇 번 건의를 했지만 별무 효과였다. 이렇게 되면 작은 모임 안에서도 벽이 생긴다. 올봄 산행에 참여했는데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트레커가 멀게 느껴지고 씁쓰레했다. 전우익 선생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끼리끼리만 즐기면 무슨 재민겨."

 

트레커 활동의 중반까지는 내 역할이 있었다. 산행을 할 때면 차 두 대가 필요했는데 하나는 내 몫이었다. 운전을 했기 때문에 상당한 배려를 받으면서 나 또한 트레커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었다. 묘하게 한 달에 두 번 손주와 만나는 날과 트레커 산행일이 겹쳐 못 나가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나름의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모두의 이해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그나마 탁구 모임으로 일부 트레커와 만날 수 있어 아쉬움은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탁구도 끊기고 더욱 소원해졌다. 온라인상에서의 소통 역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타인을 내 마음에 대입하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인연이 다했음을 알았지만 14년의 추억이 발목을 붙잡아서 머뭇거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그들에게 투명인간을 넘어 부담이 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참여도 못하면서 이름만 걸치고 있으니 민폐일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결정을 해야 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늦었는지 모른다. 뭐라고 핑계를 대든 트레커 활동에 소극적이었던 나한테 책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왈가왈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한 인연이 또 떠나간다. 서운하면서도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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