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말년은 조용히 책을 보며 지내고 싶은 게 내 소망이다. 책을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책읽기가 죽을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자면 몸과 정신의 기능이 온전히 유지되어야 한다. 책을 가까이하고 싶어도 작은 활자는 눈이 아파서 힘들다는 지인들 얘기를 자주 듣는다. 돋보기를 쓰기는 하지만 다행히 나는 아직까지 책을 읽는 데 불편함은 없다.
공자는 자평하기를 자신이 뛰어난 점은 없지만 호학(好學)만은 다른 누구보다도 앞선다고 했다. 호학은 공자에게 의무가 아니라 의미며 즐거움이었다. 나는 독서에서만은 - 질이 아닌 양에서 -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한 해에 보통 70권 내외를 읽는다. 한창 많이 읽었을 때는 100권을 넘었다. 독서량에서는 3, 40대일 때가 제일 미흡했다. 아마 지금까지 읽은 책이 2천 권은 넘을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 실태를 조사한 통계를 보면 책을 일 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53%라고 한다.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이었다. 휴대폰과 미디어의 영향인지 이마저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선진 외국과도 차이가 많다. 몇 년 전 뉴질랜드에 갔을 때 휴양지 어디서나 책을 손에 든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자연환경보다 더 부러운 점이 이런 독서 문화였다. 우리는 각자 목소리만 크지 의외로 책은 읽지 않는다. 내실이 없다는 뜻이다.
단지 책을 많이 읽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분야가 독서다. 나이가 칠십에 들어도 여전히 책을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대견하며 뿌듯하다. 독서는 내 평생의 취미이자 기쁨이다. 책과 함께 하는 고적(孤寂)은 달콤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이면 상대방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한다. 책 한 권을 가지고도 대화는 가지를 치면서 이어진다. 나는 특정 분야를 정해 놓고 책을 읽지 않으니 잡식에 가깝다. 젊었을 때부터 관심을 가진 분야는 종교와 철학이었는데 여전히 강력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요사이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나 수필에 손이 더 자주 간다. 아무래도 두뇌가 노쇠해지니 어려운 의미는 소화하기가 힘들다.
책을 읽다보면 책 속에 반드시 다른 책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메모를 해뒀다가 찾아 읽는다. 책이 책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읽을 책이 끊어지지 않고 눈앞에 나타난다. 나는 이것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법이라고 명명한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에서는 화자가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이 책 역시 메모장에 등록되었고, 언젠가는 찾아서 읽을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책이 소롯이 담긴 메모장을 열어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