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정치와 술

샌. 2022. 1. 28. 15:02

당구 모임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만난다. 매주 한 번이지만 나는 거리도 있고 해서 출석률이 좋지 않은 편이다. 나가면 네댓 시간 당구치고 반주를 겸해 저녁을 먹는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대체로 각 소주 1병씩 마신다.

 

어제는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생각지도 않게 과음을 했다. 정치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열을 받은 게 첫째 이유였다. 진보와 보수로 나눌 때 나는 왼쪽이다. 당연히 정치적 견해에서는 우리 또래에서 외톨이다. 반대하는 진영의 대통령이나 후보를 욕하는 게 얼마나 맛있는 술안주인가. 노털들이 서로 박자를 맞추며 비난하는 소리에 종내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목소리가 높아졌고 애꿎은 소주병만 늘어갔다.

 

술자리는 2차로 이어졌다. 다행히 대통령 선거와 후보에 대한 얘기는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되었지만 술은 이미 통제를 넘어섰다. 소주를 3병 넘게 마신 것 같다. 제일 많이 취한 내가 아마 헛소리 대잔치의 왕관을 쓰지 않았나 싶다.

 

그 와중에도 다시 당구장에 들어가 비틀거리는 공과 씨름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영업 시간이 저녁 9시로 제한되지 않았다면 또 어떤 사단을 벌렸을지 모른다. 필름이 끊어져서 집에 어떻게 왔는지 도통 모르겠다. 내려가는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져 주변 사람들이 놀라면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기억만 난다.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너무 창피한 일이라 선명하게 남아있을 게다.

 

오늘은 아무 대꾸도 못한 채 아내의 지청구를 들으며 몸을 사리고 있다. 술은 마실 때는 즐겁고 기고만장하지만 다음날은 괴롭고 의기소침해진다. 내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까, 이불 킥을 하며 후회한다. 이재명을 양아치라 한들 내가 발끈할 이유는 뭐란 말인가. 술이 취하면 인간 됨됨이가 드러나는 법이다. 맨 정신일 때 고상한 척하면 뭣하나, 못나고 못난 놈이다.

 

중년이었을 때는 술에 취해서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보도에 쓰러져 잠든 적도 흔했다. 아내는 한밤중에 나를 찾아 다니느라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퇴직 전에는 아예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일이 가끔 생겼다. 지하철을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의식은 있지만 "내 집에는 어떻게 가지?"라는 질문에 답을 못하니 황당했다. 이런 증상이 알코올에 의한 치매의 전조 현상이라는데 자업자득이니 어쩌겠는가.

 

그래도 어젯밤에는 용케 집은 찾아왔다. 그만 하면 양호하다고 나는 되지도 않은 자기 위안을 하며 쓰린 속을 달랜다. 당분간 당구 모임에는 발을 끊어야겠다. 친구들한테 너희들과는 술 못 마시겠다고 할 수는 없고, 겨울이니 겨울잠을 자야겠다는 핑계를 댈까. 아니면 이참에 아예 보수로 전향을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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