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유니세프에서 OECD와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 어린이들의 웰빙지수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27위로 하위에 머물렀다. 전에도 늘 하위권에 속해 있었으니 특별한 소식이 아니었으나 씁쓸하긴 여전했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어린이의 정신 건강에서는 34위로 최하위권이었다는 사실이다. 육체 건강 역시 28위로 하위권이었지만 학업 능력이 4위를 기록한 덕분에 그나마 종합 순위 27위가 될 수 있었다. 이웃 나라 일본은 14위로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의 20% 정도가 불안, 우울 등의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강남 지역에서는 최근 5년 사이에 정신과를 찾은 어린이 환자가 세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이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어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슬프다.
행복지수, 노인 빈곤율, 자살률, 양극화, 평등과 공정 등 우리 삶의 실태를 나타내는 지표는 늘 하위권이다. 해가 지나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가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사이는 사법 체제마저 불신을 받고 있다. 그 조사에서 가장 불신하는 국가 기관이 검찰로 나왔다.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야 하는 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나라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이 행복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과 진단, 처방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얼토당토않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으로 지금 조기 대선이 실시되고 있다. 두 주 뒤면 새 대통령이 뽑힌다. 온갖 공약이 난무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후보는 없다. 모두가 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중한다. 경제 규모가 이만하면 이젠 삶의 질에도 신경을 쓸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경쟁과 성장을 외쳐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제는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하나가 입시 위주의 사교육이다. 선행학습이라면서 초등학생이 중고등 과정을 미리 공부한다. 그래야 남들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뒤처지면 안 되니 너나없이 미친 경쟁에 뛰어든다.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찌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겠는가. 아이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학부모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는 이런 우리 사회를 '지옥'이라고 불렀다.
철학과 비전을 제시해 주는 대선 후보가 있었으면 좋겠다. 국민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당선 여부를 떠나서 이런 담론이 형성되는 마중물 역할로도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 아닐까. 이번 유니세프 발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린이가 행복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제 이익만을 챙긴다면 그 공동체의 앞날은 뻔하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