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간다. 노년이 되어도 다르지 않다. 젊었을 때보다 빈도나 강도가 줄어들 뿐이다. 그저께는 아침 식탁에서 아내와 하찮은 일로 입씨름을 했다. 그러고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닫았다. 차분하게 대화로 풀 수 있다면 좋으련만 잘 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침묵이 나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침묵하면서 둘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되면 얼마 가지 않아 연민에 닿는다. 연민은 너나 나나 모두 가련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서 오는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에 대한 원망도 봄눈 슬듯 사라진다. 또한, 나보다 상대가 받은 상처가 어떠했을지를 헤아리게 된다. 연민은 용서보다 힘이 세다.
부부간의 마찰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적절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삶에 활력을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추어탕에 쓰는 미꾸라지를 수송할 때 수조에 가물치를 함께 집어넣는다고 한다. 천적을 투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꾸라지만 있으면 무기력해지고 죽기도 하지만, 가물치가 있으면 살아남기 위해 긴장하고 활발히 움직이게 되어 생존율이 높다는 것이다.
전에 서울서 살 때 이웃에 팔자 좋은 사모님이 있었다. 남편은 착하고 돈 잘 벌고 금슬 좋고, 하나 뿐인 딸은 예쁘고 공부도 잘했다. 누가 봐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모님이었다. 그런데 사모님은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빼빼 말라가고 있었다. 너무 복이 과해서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은 빈정댔다. 외적 조건이 좋다고 사람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인 핀란드가 자살률 또한 최고 수준이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인간은 걱정거리가 없어지면 무료와 권태에 빠진다. 자극적인 것을 원하면서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한다.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다. 아이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러하지 않을까. 갈등과 투쟁과 용서와 화해를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배움의 길에 나이 제한은 없다. 흰머리가 된다고 너그러워지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노부부도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간다. 다만 너무 사나운 가물치가 되면 안 되겠지. 삶에 활력을 줄 정도의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는 필요하다. 그 적절한 조화를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 노년의 지혜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