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급작스레 죽었다. 일흔이 넘어서도 백두대간을 타고, 등산 모임의 대장을 맡을 정도로 건강을 자신했는데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 산에서 일어난 일이라 손 쓸 새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의 목숨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할 수밖에 없다. 건강하다고 오래 사는 게 아니다. 약골이라고 단명하지도 않는다. '골골 팔십'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현대식으로 바꾸면 '골골 백살'이라고 해야 옳겠다. '무병단명(無病短命) 유병장수(有病長壽)'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들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몸이 약하면 아무래도 조심을 하게 된다. 기력이 떨어지니 무리를 할 수가 없다. 반면에 튼튼한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기 쉽다. 과로나 과음을 겁내지 않는다. 이런 지나침이 쌓이면 한순간에 몸이 망가진다.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이 졸지에 죽는 경우를 흔히 본다.
조선 시대 왕 중에서 영조는 83세로 장수했고 재위 기간도 52년이나 되었다. 기록을 보면 영조는 어릴 때부터 약을 달고 살 정도로 허약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병치레가 잦았다고 한다. 조금만 찬 음식을 먹어도 배탈이 났고,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고 소식할 수밖에 없었다. '골골 팔십'의 전형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장수가 마냥 좋다는 것은 아니다. 골골거리며 오래 산들 무엇에 쓸까 싶다. 차라리 건강하고 활달하게 지내다가 한순간에 가 버리는 게 나아 보인다. 지인처럼 좋아하는 산을 타다가 산속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본인은 분명 행복했으리라. 남은 사람들은 아쉬울 수 있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골골 체질에 속한다. 기력이 약해서 무엇을 하든 무리를 못한다. 꽁무니를 빼는 걸 보고 엄살을 부린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성질 또한 소심하고 게으르니 나무늘보과가 아닌가 싶다. 화끈하게 살기는 틀려먹었다.
'튼튼 칠십 골골 팔십'이라는 말 속에는 건강하다고 과신하지 말고, 병약하다고 비관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들어있는 게 아닐까. 장점이 약점이 되고 약점이 장점이 되는 게 인생사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동창회 홈피에는 '본인 부고'라는 제목이 가끔 나온다. 앞으로는 더 자주 보일 것이다. 지금 가나 좀 더 있다가 가나 오십보백보가 아니겠는가.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늘이 허락하신대로 살다가 갈 뿐이다. 살고 싶다고 더 사는 것도 아니고, 죽고 싶다고 아무 때나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갑작스런 지인의 죽음을 보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과 한계를 생각한다. 겸손하고 감사하게 오늘을 살아갈밖에, 인생에서 다른 중요한 게 뭐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