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겨울이 좋지만

샌. 2025. 1. 10. 10:26

나는 겨울이 좋다. 이유는 단 하나다. 칩거하는 데 이만한 계절이 없기 때문이다. 겨울은 다른 계절처럼 바깥 날씨가 유혹하지 않는다. 나갈까 말까 망설일 필요가 없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될 핑계는 충분하다.

 

따뜻한 아랫묵에서 딩굴딩굴하는 호사도 겨울이라야 누릴 수 있다. 옛날과는 차이가 있지만 아파트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영하의 찬바람에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종종거리며 지나간다. 학교로, 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 내 처지가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겨울이 아니라면 이런 안온감과 포만감을 누가 주겠는가.

 

안과 밖의 대비가 겨울만큼 극적인 계절은 없다. 어머니 자궁 속 태아의 편안함이 이와 같을까. 바르르 떠는 문풍지 소리도 정겹다.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면 세상은 온통 은세계였다. 그 순백의 눈 위에 쏟아지던 눈부신 아침 햇살을 기억한다.

 

겨울은 고독을 즐기기에 좋다. 군중 속의 고독은 외롭지만, 홀로 있는 고독은 달콤하다. 겨울은 번잡한 환경으로부터 차단시켜 준다. 방 안에 있으면 겨울의 꼭 닫은 창문이 나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는 것 같다. 강원도 마을에 폭설이 내리면 길이 막히고 이웃과의 왕래도 끊어진다고 한다. 그런 보도를 볼 때마다 강원도에 살고 싶어진다. 몇 달이라도 눈에 갇혀 있고 싶은 것이다.

 

이제 은퇴를 하고 일흔줄에 들어선 지도 한참 되었다. 내 둔해진 몸과 겨울이 무척 잘 어울리는 한쌍 같다. 아무리 빈둥거려도 뭐라고 나무라지 않으니 말이다. 겨울나무를 보라. 대부분의 생명 활동을 멈추고 나이테를 촘촘히 키운다. 내면이 깊고 단단해지는 때다. 겨울나무를 보고 게으르다 욕하지 않는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다던가, 정적인 겨울을 즐기는 대가로 치러야 할 응보가 있다. 나는 태생적으로 위장 기능이 약하다. 자주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에 애로를 겪는다. 그런데 겨울만 되면 증상이 심해진다. 활동량이 줄어드니 위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탓이다. 겨울은 내 위장의 진면목과 대면하는 시기다.

 

몸을 많이 움직이면 증세는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대신 내 몸은 찬 기운과는 상극이다. 배에 찬 바람이 닿으면 싸해지면서 즉시 반응이 온다. 여름에 선풍기 바람을 쐬도 탈이 날 정도다. 활동은 많이 해야 하고, 바깥 찬 공기는 안 되고, 이것이 겨울의 아이러니다. 겨울에 따뜻한 실내에서 빈둥거리길 좋아하는 것은 성격 탓도 있지만 내 몸이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어느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까.

 

올 겨울도 계절이 주는 위안과 위장의 아우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지내고 있다. 노년이 되도록 둘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찾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겨울의 부조화만이겠는가. 인생길 자체가 흔들리고 비틀거리면서 가고 있는 것을. 아무리 나이가 든들 미숙한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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