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따스한 연대

샌. 2024. 12. 31. 14:21

12월 3일에 윤석열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나라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14일에 국회에서 힘들게 탄핵이 의결되었지만, 헌재에서 탄핵 심판을 하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와중에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추락하여 17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나라에 망조가 든 건 아닌지, 2024년의 끝날이 심란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했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국가 폭력에 저항했다. 계엄 날 밤에는 국회를 지키고 군용차량을 막아세웠다. 이번에는 새로운 시위 문화가 등장했다. 촛불 대신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등장하여 흥겨운 음악과 함께 국민의 마음을 밝혔다. 축제 같은 시위였다. 참가하지 못한 시민은 음식과 보온용품을 지원하며 이들을 응원했다.

 

21일과 22일에는 농민과 함께 한 남태령 시위가 있었다. 농민들이 몰고 온 트랙터가 남태령에서 차벽에 막히자 시민들이 함께 하며 추위에 떨면서도 밤을 새워 농성을 했다. 아침이 되자 수만 명의 시민이 합류했고 결국은 장벽을 뚫어냈다. 이 모든 중심에는 젊은 여성들이 있었다.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며 깊은 감동을 받고 울컥했다. 이런 참여와 나눔, 연대의 힘이 살아 있는 한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젊은 여성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원동력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라는 내 선입견을 철회하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깨어 있고 살아 있었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약자를 도와주고 연대하려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현 정치적 상황에 대한 단순한 분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생명과 평화를 지켜내려는 마음이 그들이 거리로 나와 함께 손을 잡게 했을 것이다. 연약한 마음들이 뭉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믿었을 것이다.

 

윤석열의 가장 큰 잘못은 자신과 반대 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부추긴 데 있다. 어느 때나 정쟁은 있었으나 윤석열은 아예 상대를 배척하고 박멸하려 했다. 그와 맞서면 반국가세력이나 용공분자가 되었다. 비상계엄은 이런 망상의 정점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헌법이나 민주 원칙은 안중에도 없었다. 제왕적 권력을 가졌다고 착각한 폭군/얼간이에 의해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걸 보면서 시민들/여성들은 본능적으로 일어섰다.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중이 없는 윤석열,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오만불손하기 그지없는 윤석열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성은 사회 구조상 약자에 속한다. 폭력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저항심이 있다. 동시에 생명과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여성으로서의 본능적인 간절함이 있다. 윤석열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맞서 여성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라고 생각한다. 소외계층과 소수자를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취약계층인 농민들과 연대하며 남태령을 지킨 에너지도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작은 힘이라도 함께 연대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갖게 된 2024년이다. 윤석열이 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이만한 민주주의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영상으로 집회 장면을 되풀이 보면서 젊은 여성들의 열정적이며 밝은 표정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읽는다. 시위가 어쩜 이렇게 흥겨울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 때는 의례 돌멩이가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터지고 화염병이 불을 뿜었다. 시위가 지나간 뒤의 거리는 전쟁터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쓰레기까지 깨끗이 청소하고 해산한다. 마치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밤이 어두울수록 별빛은 더욱 빛난다고 한다. 세상이 시끄럽고 혼돈스러워도 이번에 보여준 따스한 연대가 있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우뚝하게 솟아오를 것이다. 세계에서 왜 K 열풍이 부는지, 우리 국민의 저력을 확인하며 감격했다. 함께 한 시민들이 - 특히 2030 여성들 - 고맙고 자랑스럽다. 정치가 이 마음들을 모아서 정책화하고 틀을 잡아 나간다면 얼마나 멋진 나라가 될까. 밖은 삭풍이 불지언정 2024년 겨울은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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