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유신시대는 나의 20대와 겹친다. 유신시대 7년 동안 대학생과 사병의 신분이었으니 아름다운 청춘을 암흑의 시대에서 보낸 셈이다. 보통 '10월유신'이라 부르는데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단행한 초헌법적 비상조치를 말한다.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한 1972년 10월 17일부터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의 기간이다. 이 동안 아홉 번의 긴급조치와 계엄령, 위수령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말살했다.
사학자인 한홍구 선생이 쓴 <유신>은 이 비극의 시대에 대한 기록으로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여서인지 되풀이되는 역사에 대한 비감이 서려 있다. 사건들마다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나서 내 20대를 돌아보면서 흥미롭게 읽었다. 돌아보니 1970년대는 엄청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 격동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의 부제대로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였던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시대에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을 통해 유신시대를 개관해 본다. 긴 세월이 흘러 멀리서 바라보니 사건이 흘러가는 맥락이 어느 정도 보이는 듯하다.
- 국회 안의 꼭두각시, 유정회
- 윤필용 사건
- 김대중 납치 사건
- 긴급조치와 민청학련
- 인혁당 재건위 사건
- 대통령 저격 미수와 육영수 여사의 죽음
- 장준하 의문사
- 금기의 시대의 청년문화
- 동일방직 노동조합 인분 사건
- 반도상사 노동조합과 중앙정보부
- 도시산업선교회 마녀사냥
- 기자들의 각성, 자유언론실천선언
-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
- 무등산 타잔의 비극
- 조국 근대화의 그늘
- 베트남 파병이 남긴 것
- 기지촌 정화운동
- 유신의 다른 이름, 새마을운동
- 통일벼와 식량증산정책
- 원자력발전과 핵무기 개발
- 강남공화국의 탄생
- 중학교 입시 폐지와 고교 평준화
- 10. 26의 서곡, YH 사건
- 남민전 사건
- 김형욱의 실종과 죽음
- 부마항쟁, 불길이 치솟다
- 1979, 10. 26, 운명의 날
유신시대의 터널을 통과하고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그 성취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지은이는 주인공으로 여성 노동자들을 꼽는다. '여공애사(女工哀史)'라는 단어가 아프게 들린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성취의 주역은 박정희도 아니고 몇몇 이름난 민주화운동가도 아니다.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 할 사람들은 그 시절 가장 어려운 처지에서 자신들의 인간성을 자각하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다. 그 당시 민중의 최전선을 지킨 것은 무쇠팔뚝의 남성 노동자들이 아니라 가녀린 '공순이'들이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않은 그들의 역사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박정희만큼 공과에 대한 논란이 큰 인물도 없다. 구국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부류가 있고, 귀태라는 표현까지 쓰며 경멸하는 부류도 있다. 역사나 인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누구나 각자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한국 사회에 남긴 어두운 유산 중 하나를 지은이는 어느 피디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유신은 오늘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불법으로 사람 잡아다가 고문하고 때리고 한 거 용서할 수 없는 짓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모든 사람들이 투기를 꿈꾸게 만드는 사회구조, 도덕이나 근면 따위는 '웃기는 짜장'으로 만들어버리고 불로소득, 일확천금을 꿈꾸게 만드는 사회구조, 또 그 사람들이 더 높은 아파트를 쌓고, 타위팰리스를 쌓아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호의호식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버린 것이 오히려 박정희 전두환에게 더 준엄하게 따져 물어야 할 죄악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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