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샌. 2024. 6. 29. 10:21

이 책을 쓴 김선영 박사는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종양내과란 암환자가 찾아오는 곳이라 병원에서도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종양내과를 '암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을 돕는 곳'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책의 부제가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다'이다. 지은이가 중3 때 아버지가 담낭암에 걸려 1년 동안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잃은 딸은 의사가 되었고, 환자의 죽음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복기하면서 지은이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들의 사연 및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지은이는 아버지의 죽음부터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음에도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조차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죽음을 어떻게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하찮게 보일 수는 있어도 하찮은 죽음은 없다. 그러니 모든 고통과 슬픔, 소멸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겠다.

"죽음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타인의 슬픔의 깊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저리 너머 저 심연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

 

죽음의 과정에는 대개 극심한 통증, 호흡 곤란, 발열, 그르렁거리는 숨소리, 공포에 찬 비명, 눈물, 고약한 냄새와 분비물 등이 따른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죽음 자체보다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지은이가 강조하는 대로 완화의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명을 연장하려기보다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면서 심리적 안정을 갖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죽음을 대하는 당사자의 올바른 가치관과 함께 가족과 의사의 세심한 협력이 필요하다. 품위 있는 죽음이 거저 주어지지는 않는다.

 

실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품위 있는 죽음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죽음은 모든 것을 파괴할 만큼 무자비하다. 평소의 신념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고 천운에만 맡겨둘 것인가. 지은이가 드문 한 사례를 보여준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암이 재발하고, 간 전이 병변에 고름이 차서 배액관 삽입을 권유했던 할머니가 있었다. 종양 부위에 생긴 감염이라, 시술해도 조절이 잘 될지, 환자의 고통이 나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더 이상 시술로 고통받고 싶지 않다며 호스피스를 택했다. 다소 이르다 싶어 만류하고 배액관 삽입을 강행할까 싶었지만, 약간의 갈등 끝에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며칠 후, 호스피스 병원의 조용한 정원에 침대를 놓고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늦가을 바람을 쐬는 할머니의 사진을 받았다. 나보다 환자가 더 현명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어쩌면 평화로운 죽음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아니 죽음을 앞둔 평화로운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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