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 지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무시할 수 없다. 내용을 알지 못해도 저자를 믿고 책을 사는 경우도 있다. 외국 작가야 정보가 없으니 오로지 책 내용에 집중할 수 있으나, 국내 작가는 단편적이나마 삶이 드러나 있으니 작품만 구분하여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이 있다.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사와 같은 면이 보이지만, 어떤 때는 속된 말로 싼티가 나기도 한다. 문제를 파고 드는 치열함이 있지만 동시에 경솔하고 가벼운 면이 있는 것이다. 내 느낌이 그렇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작년에 나온 공지영 작가의 산문집이다. 하동으로 내려가서 은거하며 살다가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떠나 다시 예수를 만난 신앙고백서라 할 수 있다. 여행사의 성지 순례 패키지 여행을 마친 뒤 예루살렘에 남아 며칠 더 개인적인 일정을 보내며 쓴 순례기다. 그동안 작가는 천주교 신앙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세상의 비난으로 인해 감내해야 한 고통과 함께 성지 순례를 통해 일신해진 느낌을 전한다. 특히 샤를 드 푸코의 사상과 삶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 순례 마지막에는 푸코의 흔적을 찾아 다니며 그를 만난다. 십자가의 성 요한과 상통하는 푸코의 혁명적 사상은 근원적인 자기 버림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신앙의 단계에서 먼발치로 동경하지만 감히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영성이다. 이 책에서 푸코를 새삼 기억하게 된 것도 수확이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고통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고통은 유혹이다'라는 장에서는 고통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먼저 고통이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이다.
첫 번째로, 고통은 우리에게 악심을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로,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남을 판단하게 만든다.
세 번째로, 고통은 우리를 이기적으로 만들며 사랑을 방해한다.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다. 하지만 정말 고통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한센병이 깊어져서 손과 발, 코가 뭉개지고 눈까지 멀어버리는 것은 한센병의 직접적인 병세가 아니라고 한다. 처음 안 사실인데 한센병 균이 우리 몸에 하는 일은 고통을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가 나도 알지 못하고 증세가 심각해진다. 눈을 계속 뜨고 있어도 아프지 않으니 깜박이지 않게 되고, 그래서 심한 안구건조증이 오고 각막이 상해서 눈이 먼다. 이렇듯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고통에도 이점이 있다.
첫 번째로, 고통은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두 번째로, 고통을 통해 우리는 겸손해진다.
세 번째로,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킨다.
인생고(人生苦)라는 말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고통으로 망가지는 사람이 있고, 고통을 디딤돌 삼아 삶을 한 단계 더 높이 승화시키는 사람도 있다. 고통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우리의 몫이 아니던가.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약간 깨달은 것 가지고는 삶은 바뀌지 않는다. 대개는 약간 더 괴로워질 뿐이다. 삶은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야 바뀐다. 결국 이렇게,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고통 말이다. 변화는 그렇게나 어렵다. 가끔은 존재를 찢는 듯한 고통을 겪고도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대신 고통을 거부하려고 헛되이 싸우던 그가 망가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러므로 고통이 오면 우리는 이 고통이 내게 원하는 바를 묻고,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틀이 이제 작아지고 맞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라는 책 제목은 앞으로도 작가는 약자와 소수의 편에 서겠다는 결심으로 읽힌다. 바라기는 지저분한 정치판 싸움에 끼지 말고 하동에서의 쇄신한 일상을 통해 한층 더 원숙한 작품을 만들어 주시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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