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샌. 2024. 7. 12. 11:25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1976년에 미국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유타주에서 개리 길모어가 두 사람을 권총으로 살해하고는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항소를 포기하고 국가가 자신을 빨리 사형에 처하라고 요구했다. 사형제 존폐가 이슈가 된 당시 상황에서 개리 길모어의 돌발 행동은 미국 사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결국 개리 길모어는 다음 해에 처형되었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SHOT IN THE HEART]>는 개리 길모어의 동생인 마이클 길모어가 자신의 형이 왜 그렇게 잔인한 범죄자가 되었는지를 밝히는 책이다. 악의 뿌리에 무엇이 있는지 가계의 역사부터 그들의 신앙이었던 모르몬교의 '피의 속죄' 같은 폭력성까지 파헤쳐 올라간다. 더 나아가면 원주민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자행한 미국이 뿌린 피의 역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미국은 저주받은 땅인지도 모른다.

 

아버지 프랭크 길모어와 어머니 배씨는 네 아들을 뒀다. 그중에서 개리는 둘째고, 마이클은 막내다. 프랭크는 방랑벽이 있는 인물로 배씨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여러 명의 부인과 자식을 둔 상태였다. 정신적 내상을 가지고 있던 프랭크는 가족에게 무시무시한 폭력을 가했고, 이것이 비극의 출발이었다. 책에 기술된 이 가정의 풍경은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불화와 증오 속에서 상처를 받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할 정도였다. 특히 개리는 아버지의 폭력에 분노하면서 일탈의 길로 나갔다.

 

이 책을 쓴 마이클은 늦게 태어난 관계로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개리와도 나이 차이가 커서 자랄 때는 개리의 의식이나 행동에 공감할 수 없었지만 이 책을 쓰기 위해 폭력의 연원을 추적하면서 개리를 이해하게 된다. 폭력에 노출된 세 아들 중 장남의 책임감인지 첫째만 그런대로 버텨 나갔을 뿐, 개리와 셋째는 비명횡사하게 된다.

 

개리는 자신을 망가뜨린 가족과 사회에 대해 복수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엉뚱하게도 생면부지의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죽이고 자신도 파멸의 길을 택한다. 모르몬교의 피의 속죄와 유사한 형식이다. 개리가 성장한 뒤에는 가족의 지원과 보살핌이 있었지만 비뚤어진 성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 이면에는 개리를 만든 미국 사회가 있었던 것이다.

 

마이클은 가족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인간에 내재한 폭력성을 고발한다. 불행한 가족사는 세대에서 세대를 이어오면서 누적된 결과인지 모른다. 인간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연결망의 한 고리다. 과거와 연결되지 않은 인간은 없다. 인간의 피에는 조상의 유산이 흐르고 있으며 세습되면서 과보를 만든다. 운명이라는 말도 그런 뜻에서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책 말미에 개리에 관계된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진다. 왜 아버지인 프랭크가 유독 개리에게 심하게 대했는지 실마리가 풀린다. 인간의 무지와 죄의식, 그리고 증오는 너무 치열해서 소름이 끼친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인간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해 주는 책이다. 저자인 마이클은 가정 폭력을 야기하는 비극의 역사를 드러내 보여준다. 한 개인이란 역사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엉킨 것은 어떤 식이로든 풀어져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겪어내야 할 진통과 고통은 막대하다. 때로는 피를 바치기를 요구한다.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몰입해서 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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