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서울의 봄

샌. 2024. 6. 26. 11:12

 

작년에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였으나 늦게야 보게 되었다. 10.26으로 '서울의 봄'이 오는가 싶었으나 전두환이 주동한 하나회의 정치군인들에 의해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나고 세상은 다시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 영화는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불법 쿠데타를 막으려 했던 수경사령관 장태완을 악과 선의 대립 구도로 짜면서 그날 밤의 9시간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인 만큼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되게 묘사한 장면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장태완과 전두환이 광화문에서 대치한 장면이 그랬다. 장태완은 그때 이미 부하에 의해 체포된 상태였다고 알고 있다. 진압군에 앞장을 섰던 수경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 헌병감 김진기 등이 힘을 못 쓴 이유는 부하들 다수가 반란군 편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명령이 먹히지 않았다. 전두환이 보안사령관 직을 이용한 도청이나 정보의 독점 탓이 컸을 것이다.

 

두 주인공을 부각하다 보니 다른 인물은 왜소화되고 희화화한 면이 없지 않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반란군 진영에서는 두목인 전두환만 바라볼 뿐 우왕좌왕하며 헤매는 모습이 이어진다. 이때 전두환이 카리스마 있게 결단을 내리고 밀고 나가서 반란이 성공할 수 있었다. 진영의 분위기가 설마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또한 육군본부 벙커에 모인 군 지휘부는 너무 무능하고 우유부단해서 안타까웠다. 고군분투하는 정의파도 나오지만 역부족이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전에는 10.26이 일어났을 때 하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이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에 원망도 했다. 만약 노태우처럼 일선 사단장이었으면 합수부장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전면에 나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박정희에 의해 임명된 보안사령관이었다면 누구든 제 2의 전두환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개인의 문제이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하나회로 대표되는 정치군인들의 야심은 전두환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았을 것이다.

 

12.12의 또 다른 주역이었던 노태우의 딸 노소영이 최태원과 이혼을 하면서 1조가 넘는 재산분할금을 받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결혼할 때 노태우가 준 300억대 비자금이 회사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이유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의 가족과 후손들은 돈더미 속에서 떵떵거리며 사는데, 정의의 편에 섰던 사람은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비극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슬프다. 대표적인 분이 정병주 사령관을 지키다가 순직한 김오랑 소령이다.

 

김오랑 소령이 죽자 어머니와 형이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내는 실명한 뒤 실족사를 했다. 총상을 입은 정병주 사령관도 산에서 의문사를 했다. 노태우 정권 때였다. 12.12는 나라를 망가뜨렸지만 여러 사람한테도 엄청난 아픔을 줬다. 이런 미시적인 부분을 조명하면서 역사에 심판이 있는지, 인과응보라든가 권선징악의 원리가 과연 작동하는지를 조명하는 영화도 나왔으면 좋겠다.

 

갑자기 찾아왔던 봄이 그날 된서리를 맞았다. 왜 12.12가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볼 때 일차적으로는 전두환과 그 일당들의 책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뿌리에는 박정희가 뿌린 유신이라는 악마의 씨앗이 숨겨져 있었고, 특정 조건이 될 때 발아한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역사의 무대에서 연기하는 어쩔 수 없는 배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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