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힐빌리의 노래

샌. 2024. 7. 28. 10:18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J.D. 밴슨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1984년 생인 밴슨은 정계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정치 신인이다. 그는 2016년에 자전적 소설인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를 썼고, 2020년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유명해졌다. 이번에 밴스가 부통령 후보에 지명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보게 된 영화다.

 

'hillbilly'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두멧사람, 시골사람이라는 뜻으로 특히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 남부의 산악 지대 주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밴스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영화에도 이들의 삶이 궁핍하고 거칠게 그려져 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더욱 열악한 상태에 빠진 것 같다. 잘 드러나지 않는 미국의 어두운 이면이다.

 

밴스는 가정의 붕괴와 폭력을 경험하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머니는 마약 중독에 수시로 남편을 바꾸며 살고, 밴스 주위에는 나쁜 친구 등 악의 유혹이 가득하다. 그나마 밴스를 지켜준 분이 외할머니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거칠지만 줏대 있고 속사랑이 깊은 분이다. 외할머니는 밴스를 어머니로부터 격리시키고 나쁜 환경에서 손주를 지킨다. 이 시기가 밴스에게 제일 중요했던 청소년기였고, 외할머니 덕에 밴스는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결국 밴스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거쳐 예일대 로스클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다. 개천의 미꾸라지가 용이 된 것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한 입지전적 인물의 성장기면서 그를 둘러싼 가족 이야기다. 가난과 폭력은 지구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숱한 비극을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비극을 두고 인간에게 책임을 묻느냐, 환경에 책임을 묻느냐는 오래된 논쟁이다. 성장한 밴스는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는데 어머니 역시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측면이 있다. 밴스 스스로가 자신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난은 기회의 박탈과 같다고 느꼈다. 가난은 인간에게 펼쳐진 가능성을 차단한다. 그러므로 가난은 공정과 정의에 배치된다. 한 사회가 공정과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빈부격차를 줄이는 일이 시급한 것이다. 

 

밴스는 변호사에서 사업가를 거쳐 정치인이 되었고 마흔밖에 안 된 나이에 트럼프와 동행하는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가 되었다. 요사이 밴스가 하는 발언은 트럼프를 뺨치는 극우적인 경향을 띤다고 한다.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밴스가 힐빌리의 처지를 직접 경험했다면 미국을 더 나은 사회로 개선하기 위해 트럼프와 손을 잡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강력한 신자유주의의 길을 선택한 밴스가 과연 힐빌리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책은 어떤지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미국 사회의 모순과 극복에 대한 문제을 드러내지 않아서 아쉽다. 한 인간의 성공 서사에 그친 감이 있다. 동시에 밴스의 정치 노선에 대해서도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가 트럼프와 손잡고 미국 부통령이 될지, 더 나아가 차차기 대통령까지 넘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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