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를 특징하는 단어 중 하나에 '탈진실[post-truth]'이 있다. 2016년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 post-truth'를 선정하기도 했다. 2016년은 트럼프가 등장하고 당선된 해다. 트럼프가 선거 운동 중에 한 발언의 70%가 가짜였다는 보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제는 미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세상을 보면서 누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은 죽었는가?"
<포스트 트루스>는 미국의 철학자인 리 매킨타이어가 쓴 책이다. 정치적 상황을 중심으로 탈진실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한다. 지은이는 타깃은 주로 트럼프와 공화당이다. 그쪽이 일방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탈진실'의 점잖은 정의는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다.
지은이는 탈진실의 뿌리로 과학부인주의, 인지 편향, 소셜미디어, 포스트모더니즘을 든다. 과학적 사실조차 자신들의 이념이나 이익에 상충되기 때문에 부인하는 것이 과학부인주의다. 대표적인 것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것이다. 의견이 사실보다 우선하게 된다면 탈진실의 운명은 피할 수 없다.
탈진실은 인간에 내재하는 비합리성과도 관련이 있다. 이런 인지편향에는 인지부조화, 집단동조, 확증편향 현상 등이 있다. 인간은 주위에 동일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수록 비합리적인 경향이 강해진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신념이 강할수록 말도 안 되는 오류마저 합리화한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데는 소셜미디어도 한몫을 한다. 정보는 양극화, 파편화되고 한쪽만 소비하면서 편향화한다. 사실과는 관계없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다.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모토도 탈진실의 경향과 연결되어 있다. 회의주의가 우상을 파괴한 공로가 있지만 그렇다고 팩트까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관점주의가 지나치면 세상을 혼돈에 빠뜨릴 수 있다. 그들이 주장하듯 관점만 존재할 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사실을 제대로 아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탈진실의 후견인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탈진실은 윤리적 상대주의, 전후 세대의 나르시시즘, 공동체의 쇠락, 인터넷의 부상 등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할 수 있다. 동시에 사회적 상층부에 속한 자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탈진실적 정신 상태를 강화하고 활용했다. 탈진실의 주체는 거짓으로부터 정치적 이득을 얻는 자들, 과학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자들, 기존 지식의 권위를 허물고자 있던 회의주의의 학자들이다.
이젠 거짓에 맞서 싸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탈진실 시대에는 당파적인 힘이 개입해 사람들을 조종하고 정보의 출처가 파편화되어 있어서 누구든 의도적 합리화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냉철한 지성으로 거짓에 당당하게 맞서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거짓말에 맞서지 않는다면, 단지 무지한 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의도적 인식 회피 단계를 니나 본격적인 부인주의 단계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어떠한 사실이나 증거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된다.
"오늘날 세상에서 누군가가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아무리 애쓴다고 하더라도 결국 세상에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진실은 지금까지 늘 소중했고 앞으로도 계속 소중할 것이다. 제때에 이 사실을 깨달을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