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축소되는 세계

샌. 2024. 3. 27. 10:59

2050년이 되면 세계 경제 성장은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207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감소하는 변곡점에 도달한다. 거기에 기후 변화, 기술 발전, 정치 불안정 등의 요소가 더해진다. 가장 중요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현상일 것이다. 미국의 도시 계획 전문가인 앨런 말라흐가 쓴 <축소되는 세계(Smaller Cities in a Shrinking World)>는 줄어드는 인구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한 책이다. 도시 전문가여서 그런지 '축소도시' 문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설명한다.

 

이 책을 본 것은 우리의 근미래가 궁금해서였다. 인구 감소는 이미 어쩔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시차가 있을 뿐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로 인한 주택 시장의 붕괴,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와 고령 인구 증가로 소비와 투자 감소, 경제 쇠퇴와 글로벌 교역 감소 등의 결과가 경제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며 세계는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보는 미래의 기준점은 2050년이다. 26년 뒤에는 어떤 세상이 될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시스템 하에서 우리 후손은 훨씬 열악한 상황을 맞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심각해지는 국가의 내부 갈등과 불안, 고온이나 해수면 상승 등의 자연재해와 기상 이변, 경제의 침체를 겪게 된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휩쓸고 갈 승자와 패자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지방이나 작은 도시들의 운명은 더 어둡다.

 

어떻게든 지속 가능한 문명을 위한 대안으로 탈성장에 관한 담론과 경제학이 있다. 탈성장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성장을 추구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한다. 탈성장은 기업 이윤, 과잉 생산과 소비 대신 사회적 행복과 생태적 안녕을 우선시하는 사회를 옹호한다. 이를 위해서는 급진적인 재분배와 글로벌 경제의 규모 축소가 필요하며 돌봄과 연대,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가치관을 수정해야 한다. 탈성장은 지구에서 환경적 정의와 모두를 위한 바람직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탈성장 사상은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탈성장 사상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유토피아의 덫'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현실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고 실험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삶의 관성이나 인간의 욕망을 고려할 때 함께 고통을 나누는 탈성장의 균등 사회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물질주의와 경쟁을 포기하는 인간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전제로 하는 시스템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만 새로운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방법보다는 진화적인 수단을 통해서 지속 가능한 경제 변화가 일어날 수는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는 미래에도 인류의 주된 이데올로기가 될 것이다.

 

지은이가 그리는 미래는 낙관도 비관도 아니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빈부격차나 환경 문제 등의 상황은 지금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AI나 로봇, 생명공학 등에서 엄청난 기술 발전이 일어나 세상이 천지개벽하리라고도 보지 않는다. 향후 수십 년간 막강한 지위를 누릴 나라는 미국이라고 전망한다. 상대적으로 중국은 인구 감소와 정치적 불안으로 혼란을 겪을 것이다. 지은이는 차가울 정도의 냉정한 자세로 미래를 내다본다.

 

책에는 저자의 견해가 객관적임을 밝히는 많은 데이터가 나온다. 축소되는 세계에서 사라지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려는 해법도 있다. '네트워크화 된 지역화'라는 용어를 썼는데 실현될 수 있을지는 탈성장만큼 난해해 보인다. 책의 끝 부분에 나오는 결론은 이렇다.

 

"앞으로의 수십 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인구 증가세가 둔화됨에 따라 인구통계학적 변화, 경제 성장 둔화, 정치적 불안정성, 기후 변화의 복합적인 효과가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매년 조금씩 나타나겠지만 향후 수십 년 동안 누적되면서 미래는 우리가 현재 익숙하게 느끼는 것보다 여러모로 훨씬 어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총체적으로 볼 때, 우리 인간은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 들어앉아서 어쩔 도리가 없는 순간이 돼서야 뒤늦게 현실을 깨닫는 개구리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상상 가능한 갖은 변화에 적응해 왔고 지금도 적응을 위해 노력 중이다. 그 과정이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서 어디 뼈가 부러진 데는 없는지 살피고 먼지를 털어낸 다음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이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미 그것은 시작됐다. 우리는 이미 환경적인 지속 가능성, 제조, 에너지 생상, 식량 안보, 좀 더 공평하고 포용적인 사회 및 정치적 공동체 구축 등에서 온갖 실험을 목격하고 있다.

변화는 골치 아프고 고통스럽겠지만 2050년은 지금의 세상보다 좀 더 불공평하고 양극화는 더 심해 있을 전망이다.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끓는 물속의 개구리와는 달리 너무 늦기 전에 솥에서 나올 방법을 우리는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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