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79

디 아워스, 내 사랑, 케빈에 대하여, 어느 가족

디 아워스, 내 사랑, 케빈에 대하여, 어느 가족 - 뜨거웠던 올여름에 본 영화들이다. 밖은 펄펄 끓는데 거실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1. 디 아워스  1920년대의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1950년대와 2000년대를 살아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그려진다.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지, 여성으로서의 고민과 불안 등 정체성을 묻는 영화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고통과 속앓이를 잘 표현했다. 제도적 관습과 틀 안에서 해방을 꿈꾸는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일부분이나마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2. 내 사랑  캐나다 화가인 모드 루이스(Maud Lewis, 1903~1970)의 일생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모드 루이스를 처음 알게 되었..

읽고본느낌 2024.09.07

힐빌리의 노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J.D. 밴슨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1984년 생인 밴슨은 정계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정치 신인이다. 그는 2016년에 자전적 소설인 를 썼고, 2020년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유명해졌다. 이번에 밴스가 부통령 후보에 지명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보게 된 영화다. 'hillbilly'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두멧사람, 시골사람이라는 뜻으로 특히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 남부의 산악 지대 주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밴스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영화에도 이들의 삶이 궁핍하고 거칠게 그려져 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더욱 열악한 상태에 빠진 것 같다. 잘 드러나지 않는 미국의 어두운..

읽고본느낌 2024.07.28

어나더 라운드

술을 소재로 했다고 하여 찾아본 영화다.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가설이 나온다.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 부족하다. 부족한 0.05%를 채워 유지할 수 있다면 인생은 즐겁고 창의적이 된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마르틴은 무미건조한 일상이 재미가 없고 우울하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따르지 않고, 가정에서는 아내와 서먹한 관계며 아이들도 아빠를 본 척 만 척이다. 40대면 겪는 중년의 위기다. 이때 위에 나온 가설을 접하고 맞는지 실험해 본다. 혈중 알코올 0.05%는 대략 소주 한 병을 먹으면 나오는 수치가 될 거다. 마르틴은 몰래 술을 마시며 적당히 취한 상태를 유지한다. 결과는 놀라웠다. 수업은 재미있어지고 가족과도 관계가 좋아진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서일 것이다. 이..

읽고본느낌 2024.07.04

서울의 봄

작년에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였으나 늦게야 보게 되었다. 10.26으로 '서울의 봄'이 오는가 싶었으나 전두환이 주동한 하나회의 정치군인들에 의해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나고 세상은 다시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 영화는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불법 쿠데타를 막으려 했던 수경사령관 장태완을 악과 선의 대립 구도로 짜면서 그날 밤의 9시간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인 만큼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되게 묘사한 장면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장태완과 전두환이 광화문에서 대치한 장면이 그랬다. 장태완은 그때 이미 부하에 의해 체포된 상태였다고 알고 있다. 진압군에 앞장을 섰던 수경사령관 장태완, 특전사령관 정병주, 헌병감 김진기 등이 힘을 못 쓴 이유는 부하들 ..

읽고본느낌 2024.06.26

영화 아홉 편

최근 열흘 사이에 영화 아홉 편을 봤다. 극장에서 신작을 본 건 아니고 집에서 주로 넷플릭스를 통해 본 것이었다. 영화는 한 달에 한두 편을 보는 것이 고작인데 이처럼 단기간에 몰아 본 것은 드문 일이었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독서를 하기는 힘드나 영화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떠나고 싶을 때 영화에 몰입하면 번뇌에 시달리는 나를 잊게 된다. 이번 영화 아홉 편은 그런 효용성이 컸다. 1. 화양연화(花樣年華) 두 번째 보는 것이지만 처음 봤을 때가 너무 오래 되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생활 공간이나 인물의 성격에서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니 동병상련을 가진 두 남녀의 사랑을 절제있게 잘 그려낸 수작이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과 성격에 많이 공감했다. 영화의..

읽고본느낌 2024.06.19

델마와 루이스

1991년에 나왔으니 어느덧 30년이 넘은 영화다. 감독은 리드리 스콧이고 델마 역은 지나 데이비스, 루이스 역은 수잔 서랜드가 맡았다. 브래드 피트가 제이드 역으로 짧게 나오는데 배우로 데뷔한 초창기의 브래드 피트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역이 찌질한데다 연기가 어설퍼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토록 명성이 자자한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를 이제야 찾아봤다. 역시 라스트의 충격이 큰 영화였다. 권위적인 남편을 둔 델마와 식당 웨이트리스인 루이스는 일상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난다. 해방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강간을 당하는 델마를 구해주려다 루이스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둘은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멕시코로 넘어가려던 계획도 틀어지고 둘은 그랜드 캐니언에서 최후의 선택을 한다..

읽고본느낌 2024.06.09

땅에 쓰는 시

우리나라 제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 선생이 직접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선생이 만든 정원과 자택을 중심으로 사계절에 걸친 풍경을 통해 선생의 조경 철학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선생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영화에 나오는 장소를 통해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를 알게 되었다. '땅에 쓰는 시'에서 제일 긴 시간 동안 소개되는 장소가 선유도공원이다. 아마 선생의 대표작인 것 같다. 선유도공원은 근처에 위치한 직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앞마당처럼 드나들었던 곳이다. 옛날 정수 시설을 그대로 활용해서 만든 공원이라 특이하다 여겼는데 정영선 선생의 작품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선유도공원만 봐도 선생의 조경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를 감잡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이..

읽고본느낌 2024.06.07

소풍

노년의 상실과 아픔을 리얼하게 그린 영화다. 생로병사는 인간 존재의 숙명이지만 말년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나 회피하려 한다. 나에게도 닥칠 미래임을 인지하나 애써 외면한다. 직시한다고 뭐 뾰족한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감내하며 살 뿐이다. 영화 '소풍(逍風)'은 이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은 고향 친구면서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둘 다 지병에다 자식들이 골치를 썩힌다는 고민을 갖고 있다. 훌훌 털고 금순이 사는 고향인 남해에 내려온 은심은 역시 어릴 적 친구였던 태호(박근형)를 만나 잠시나마 추억에 젖으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고향은 옛 고향이 아니었다. 다녔던 학교는 폐교되었고, 동네는 리조트가 들어선다고 시끄럽다.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읽고본느낌 2024.06.02

봄날은 간다

오늘이 입하(立夏)다. 어느덧 봄날은 가고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 얼마 전에 영화 '봄날은 간다'를 다시 봤다. 일흔줄에 들어서서 보는 영화는 20년 전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조연 정도로 여겼던 치매 걸린 할머니가 이번에는 비중있게 다가왔다. 두 젊은이의 사랑이 인생의 짧은 한 때의 에피소드라면, 할머니에게는 인생 전체가 걸린 '봄날은 간다'였기 때문이다. 매일 기차역으로 나가 죽은 남편을 기다리던 할머니는 사랑에 아파하는 손주를 위로한다. "버스 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이 영화에 명대사로 회자되는 것이 여럿 있지만("라면 먹고 갈래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할머니의 대사도 심금을 울렸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당신에게 하고픈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갈 때..

읽고본느낌 2024.05.05

나의 올드 오크

영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에 시리아 난민인 여러 가족이 이주해 온다. 폐광촌으로 시들어가는 마을이라 안 그래도 불만이 가득한데 무슬림 이주민이 온다니 주민들은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올드 오크(Old Oak)'라는 펍을 운영하는 TJ는 달랐다. 그는 이주민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사진작가가 꿈인 난민 소녀 야라와 국적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눈다. '나의 올드 오크'는 사회성 짙은 소재를 영화로 다루는 켄 로치 감독의 최근 작품이다. 이 영화 역시 빈민과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감독의 세계관이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번에는 국제적 이슈인 난민 문제와 원주민과의 갈등을 다루었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듯이 사회적 약자들은 연대하지 못하고 서로를 적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원주민이 난민을..

읽고본느낌 2024.02.01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는 부부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든다. 남편인 현수에게 몽유병(렘수면 행동장애)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얼굴을 긁어 상처가 나고, 냉장고에서 생고기를 씹어먹고, 심지어는 창문에서 뛰어내린다. 반려견을 냉장고에 집어넣어 죽이기도 한다. 임신한 아내 수진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은 수진마저 강박증에 시달리고 현수가 귀신에 들렸다고 믿은 나머지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다. '잠'은 공포 미스터리 장르에 들어갈 영화다. 인간의 망상과 집착이 심해져 파멸로까지 나가는 지를 보여준다. 둘은 합리적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었다. 아기를 낳은 뒤에는 분리해서 생활하는 게 상식이지만 부부는 둘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고집한다. 여기에 확증편향이 더해져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다. 이 영화를 본 ..

읽고본느낌 2024.01.07

혼자 사는 사람들

진아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여자다. 혼자 살면서 집과 회사(카드 회사 콜센터 직원)만을 오가는 생활을 한다. 동료들과 대화도 없고, 점심도 외딴 식당에서 혼자 먹으며, 출퇴근 때는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 화면만 본다. 휴대폰에 집중하는 것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신호와 같다. 외부와 단절된 삶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패턴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 두 가지가 생긴다. 하나는, 신입사원 수진을 1:1로 연수를 시켜야 하는 일로 진아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붙임성 좋은 수진에게 매몰차게 대하지만, 솔직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수진을 보며 진아의 마음에는 미묘한 파장이 인다. 다른 하나는, 홀로 사는 옆집 남자가 고독사한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된 사건이다. 뒤이어 입주한 남자는 떠난 사람..

읽고본느낌 2023.12.26

괴물

열흘 전에 개봉한 따끈따끈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따스한 인간애를 다루지만 대체적으로 밍밍한데, 이 영화는 관객을 살짝 긴장시키면서 우리 사회 및 인간의 내면을 잘 담아낸 수작이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중 최고라고 할 만하다. '괴물'은 학교 폭력을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학교 폭력이나 인간 심성의 사악함을 고발하는 영화는 아니다. 같은 사안이더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진실과 허위, 선과 악을 칼로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영화는 3막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어머니인 사오리, 교사인 호리, 사건의 중심에 있는 두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실이 교차한다. 영화의 중심은 미나토와 요리, 두 아이가 ..

읽고본느낌 2023.12.10

비닐하우스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가슴이 먹먹해지며 오래 한숨을 쉬었던 영화다. 내용이 스릴러 영화로 분류될 정도로 긴장을 시키지만, 나는 영화에서 비중 있게 나오는 치매에 걸린 노년의 삶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데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살아가는 문정은 아들과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간병인 일을 한다. 소년원에 있는 아들은 곧 출소할 예정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문정이 자신의 뺨을 때리는 자학 증세가 나오는데 이는 문정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정은 성심성의껏 치매에 걸린 노부부를 간병하는데, 어느 날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고 문정은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든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파멸의 길로 들어가고 만다. 가족이라는 족쇄가 문정..

읽고본느낌 2023.12.01

소공녀

본 지 꽤 되었지만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다. '소공녀'의 주인공인 미소는 자신만의 삶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젊은이다. 일당 45,000원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욕심 없이 살아간다. 또래 젊은이들이 꿈꾸는 돈이나 성공에는 관심이 없다. 미소의 소확행이라면 일이 끝난 뒤의 위스키 한 잔, 담배, 그리고 미소만큼 착한 남자 친구다. 어느 날 거처하고 있던 단칸방의 오른 월세를 부담할 수 없어 미소는 홈리스가 된다. 미소는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싸들고 나서며 길 위의 여행자로 살려고 한다. 그리고 옛날 밴드 활동을 함께 하던 멤버들을 찾아간다. 영화는 옛 멤버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함께 미소와의 교감이나 갈등을 다룬다. 집도 없으면서 위스키와 담배를 즐기는 미소를 보며 염..

읽고본느낌 2023.09.23

더 웨일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어버린 찰리라는 남자가 있다. 강박적인 폭식으로 270kg이 넘는 초고도비만이 되어 보조 기구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더 웨일[The Whale]'은 자학 끝에 죽음을 맞는 - 동시에 세상과 화해하려고 하는 - 찰리의 마지막 며칠을 담고 있는 영화다. 찰리의 인생은 기구하다. 결혼을 하고 딸까지 두었지만 동성 제자와 눈이 맞아 가족을 버렸다. 파트너마저 세상을 떠나자 찰리의 삶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폭식증에 걸려 지금의 몸이 된 채 망가졌다. 다행히 글쓰기 시간강사로 인터넷 강의를 하며 생계는 유지한다. 찰리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마지막으로 딸과 화해하려 한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단출하다. 찰리 외에 딸 엘리, 간호사 리즈, 전도사 토마스 정도다. 그러나..

읽고본느낌 2023.08.26

다음 소희

소희는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2학기가 되어 어느 통신회사 콜센터에 현장 실습을 나간다. 어린 학생이 감내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근무 환경이 꿈 많은 소녀를 절망하게 만든다. 회사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면서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긴다. 발버둥을 쳐서 좋은 실적을 올리지만 그나마 실습 학생에게는 보상을 해 주지 않아 마찰이 생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위안을 받지 못한 소희는 결국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다음 소희'는 6년 전에 전주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의 현장 실습은 여러 차례 문제 제기가 되었지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죽음이 잊을 만하면 일어나곤 한다. 나도 실업계 고등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현장 실습 나간 학생으로부터 작업 환경이 ..

읽고본느낌 2023.07.24

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근황이 나와서 관심을 가지고 본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다. 황 박사는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중 한 순간에 급전직하하여 과학계에서 퇴출되고 잊히게 된 인물이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그는 한때 '생명 복제의 왕'이었다. '킹 오브 클론(King of Clones)'에는 황 박사가 직접 나와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그는 지금 아랍에미레이트에 있는 '바이오테크 연구센터'에서 동물 복제를 하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화면에는 주로 부자들이 개인적으로 의뢰한 반려견 등의 동물을 복제해 주는 것으로 나온다. 아랍에미레이트 정부의 풍부한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황우석 박사의 등장과 몰락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클로닝 기술을 통해 여러 동물을 복제하고 인간의 체세포까지 복제에 성공하자 전세계..

읽고본느낌 2023.07.11

더 크라운 & 더 퀸 & 스펜서

어제 찰스 3세가 영국 국왕에 오르는 대관식 행사가 있었다. 70대의 찰스 3세는 전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워낙 장수하는 바람에 왕세자에 오른 지 65년 만에 왕위에 올랐다. 말썽 많았던 커밀라도 왕비가 되었다. 찰스 3세는 1981년에 다이애나와 결혼했으나 커밀라와의 불륜 관계로 이혼했고, 그 뒤 다이애나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 영국 왕실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 중에서 셋이 떠오른다. '더 크라운', '더 퀸', '스펜서'다. 본 지 꽤 되었지만 기억을 되살려본다. 1. 더 크라운 영국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다. 2016년에 시즌 1을 시작으로 작년에 시즌 5가 나왔다. 총 50부작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이 드라마를 보는 데 나는 3년이 걸렸다. 엘리자베스 2세는 2..

읽고본느낌 2023.05.07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영화를 먼저 보고 감동을 받아 소설을 찾아 읽었다.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가 일흔 살에 쓴 첫 소설로 30주 넘게 아마존 1위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이다. 작가 자신의 야생 동물을 벗 삼아 평생을 보낸 경험이 녹아 있는 소설로, 습지 소녀 카야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사랑과 갈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해안가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진 습지 지역이다. 카야는 가정폭력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습지에서 고립되어 혼자 살아간다. 고작 일곱 살인 소녀가 살기에는 거친 환경이지만 카야는 자연의 품 안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은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가정폭력..

읽고본느낌 2023.02.20

조용한 열정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전기 영화다. 에밀리가 불가사의한 은둔 시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녀의 모습을 좀 더 알게 되었다. 에밀리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살았지만 내면에는 활화산 같은 열정과 갈등이 있었다. 영화는 소녀 시절 에밀리가 다니던 기독교 계통 기숙학교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관습이나 종교적 가르침에 순응하던 다른 소녀들과 달랐다. 독립적이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독교 중심 가치관을 거부하고 에밀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 뒤로 에밀리는 죽을 때까지 집에서 벗어나지 않고 시를 쓰며 은둔해서 살았다. 피상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에밀리는 주관이 강하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는 ..

읽고본느낌 2023.02.09

섀도우랜드

C. S. 루이스(1898~1963)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여서 넷플릭스에서 찾아보았다. 루이스는 유명한 기독교 변증론자로 옥스퍼드대학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독신으로 지내다가 50대가 지나서 미국 시인 조이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 영화 '섀도우랜드(Shadowlands))는 둘의 만남과 사랑, 결혼과 조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전에 루이스의 를 읽었지만 솔직히 책의 명성만큼 감동을 받지는 않았다. 서양인들의 논리적 사고가 우리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 책이었다. 아무튼 루이스는 변증법적 방법으로 결론을 이끄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루이스의 논리에 매료되어 그의 전 작품을 읽고 심취한 후배가 있는데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책으로 만나는 인상과는 완전히 다른 루이스..

읽고본느낌 2023.01.15

더 원더

넷플릭스에서 영화 '더 원더(The Wonder)'를 봤다. 19세기 중반, 대기근 직후의 아일랜드가 무대다. 땅도 사람도 피폐해진 상태에서 시골의 외딴집에 살고 있는 애나라는 소녀가 넉 달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도 생존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지역 사회나 종교계도 호응한다. 간호사 엘리자베스는 현장으로 가서 실상을 조사하는 임무를 받는다. 엘리자베스에 의해 애나가 생존한 비밀이 밝혀지고 가족의 흑역사가 드러난다. 그러나 잘못된 길을 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애나를 살리기 위한해 엘리자베스의 고군분투 끝에 결국은 탈출을 감행하고 성공한다. 한 소녀를 살리면서 사기극이 마무리된다. '더 원더'는 종교색이 짙은 영화다. 기독교의..

읽고본느낌 2022.12.12

인생을 낭비한 죄

오래전에 본 영화 '빠삐용'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빠삐용이 꿈에서 자신을 기소한 검사와 대면하는 부분이다.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절해고도에 갇힌 빠삐용은 어떻게든 탈출해서 누명을 벗으려 한다. 그러나 탈출은 실패하고 독방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악몽을 꾼다. 먼 사막의 지평선에 검사가 나타나 빠삐용을 바라본다. 빠삐용은 외친다.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검사는 말한다. "맞다.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는 살인보다 더한 죄를 저질렀다." 빠삐용은 억울하다는 듯 대꾸한다. "그게 뭡니까?" 검사가 단호하게 말한다. "인생을 낭비한 죄다." 빠삐용은 고개를 떨군다. "나는 유죄다." 젊었을 때 이 장면을 보고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말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빠..

참살이의꿈 2022.11.21

러빙 어덜츠

넷플릭스에 혹시나 볼 만한 게 있는지 들어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다. 많은 경우 실망을 하지만 이 영화는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제목이 '러빙 어덜츠(Loving Adults)'인데 번역하면 '사랑스런/사랑하는 어른들' 쯤 될까, 그러나 내용은 제목과 반대로 끔찍한 살인을 소재로 한 치정물이다. 영화는 미제 살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결혼을 앞둔 딸에게 이 사건을 설명하면서 사랑과 결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건의 진행과 두 부녀의 대화가 교차하며 스토리는 전개된다. 사랑이라는 외피를 쓴 애착과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영화는 잘 보여준다. 두세 차례 반전도 나온다. 청순해 보이는 아내 레오노라가 뒤로 갈수록 섬뜩한 여자로 변한다. 불륜을 저지른 어리바..

읽고본느낌 2022.09.16

고흐, 영원의 문에서

'고흐, 영원의 문에서[At Eternity's Gate]'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1888년에 아를로 옮긴 이후의 인생 후반부를 그린 영화다. 한 예술가의 고뇌와 열정이 고흐 그림의 느낌이 나는 화면에 잘 담겨 있다. 고흐의 격정적인 삶을 차분하면서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내면은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적대적이다. 가난과 고독 속에서 힘들게 예술혼을 불태우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던 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안타깝다. 그렇다고 고흐가 늘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영화는 상당 부분을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하는 고흐를 보여준다. 화구를 메고 그림의 소재를 찾아 초원을 걷는 행복한 고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간관계는 서툴렀지만 자연과의 교감에서는 예민한 촉수를 갖..

읽고본느낌 2022.05.14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

막달라 마리아를 보는 시각이 신선한 기독교 영화다. 부제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다. 신약성서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을 지킨 여인으로 나온다.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또 여자들도 먼 데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 마르코 15,40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모신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 마르코 15,47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의 몸에 발라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 마르코 16,1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는 예수..

읽고본느낌 2022.03.20

더 홈즈맨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영화 세 편을 보았다. 우연히 본 영화였는데 세 편 모두 인상 깊고 여운이 남았다. 이러기는 쉽지 않은데 횡재한 느낌이었다. 그중 한 편이 '더 홈즈맨(The Homesman)'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가 배경인데 척박한 환경에 내동댕이쳐진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서부영화 장르에 들어갈 테지만 아메리칸 원주민과의 싸움이 소재인 전통적인 서부영화와는 결을 달리 한다. 고통받는 약자를 향하는 감독의 시선이 따스하다. 무대는 서부 개척의 최전선인 네브라스카로 거친 환경과 힘든 노동,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여자의 삶은 피폐하다. 그중 세 여자는 정신 이상을 일으키고 미혼이었던 커디에 의해 그녀들의 고향인 아이오와로 옮겨지게 된다. 커디는 짐마차에 세 여자를 태우고 400마일의..

읽고본느낌 2022.03.13

룩 업

'돈 룩 업(Don't Look Up)'이 지구 종말에 관한 영화라고 해서 봤다. 지구와 혜성이 충돌하는 상황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인류의 안위보다는 제 이익이 우선인 정치나 미디어계를 비판하는 영화다. 그러다 보니 혜성 충돌에 관한 사실적 묘사는 부족하다. 여러 군데 건너뛰면서 봤지만 인상적으로 들리는 말이 있었다. '돈 룩 업(Don't Look Up)'과 '룩 업(Look Up)'이다. 하늘에서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는 절체절명의 때지만 상반되는 두 목소리가 있다. "올려다보지 마!"와 "올려다봐!"다. "올려다보지 마"는 지구가 파멸하든 말든 자기의 기득권을 끝까지 지키려 한다. 너희들은 고개를 숙이고 앞에 놓인 길만 보라고 한다. 세월호에서 객실에 갇힌 학생들에게 ..

참살이의꿈 2022.01.13

링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작품이라서 더 관심이 생겼다. 영상의 마술사라는 스필버그 감독이 링컨이라는 위대한 정치인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역시 최고의 감독이라는 걸 이 작품을 보고 나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1864년과 1865년에 걸친 링컨 대통령의 마지막 두 해를 집중적으로 그린다. 당시는 남북전쟁의 막바지였고, 링컨은 노예 해방을 위한 13차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영화의 대부분이 수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하원과의 줄다리기다. 당시 미국 정치의 내막을 잘 모르면 지루할 수 있지만 감독의 역량이 이를 커버한다. 정파들 사이의 불꽃 튀는 싸움이며, 뒤에서 조종하는 링컨의 포용력과 수완이 볼 만하다. 단조롭게 보일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연출의 힘이 ..

읽고본느낌 2021.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