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더 웨일

샌. 2023. 8. 26. 10:09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어버린 찰리라는 남자가 있다. 강박적인 폭식으로 270kg이 넘는 초고도비만이 되어 보조 기구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더 웨일[The Whale]'은 자학 끝에 죽음을 맞는 - 동시에 세상과 화해하려고 하는 - 찰리의 마지막 며칠을 담고 있는 영화다.

 

찰리의 인생은 기구하다. 결혼을 하고 딸까지 두었지만 동성 제자와 눈이 맞아 가족을 버렸다. 파트너마저 세상을 떠나자 찰리의 삶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폭식증에 걸려 지금의 몸이 된 채 망가졌다. 다행히 글쓰기 시간강사로 인터넷 강의를 하며 생계는 유지한다. 찰리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마지막으로 딸과 화해하려 한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단출하다. 찰리 외에 딸 엘리, 간호사 리즈, 전도사 토마스 정도다. 그러나 서로간에 얽힌 심리적 갈등은 복잡하다. 찰리가 거주하는 방이 마치 인간의 마음을 묘사한 것 같다. 그중에서도 찰리와 딸 엘리 사이는 살벌하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딸은 용서할 수 없다. 9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엘리는 아버지를 복수하듯 조롱한다.

 

엘리는 사춘기 소녀의 반항을 넘어선 적대감을 여과없이 표출한다.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는 이런 식으로라도 해소되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찰리는 딸의 말과 행동을 받아주며 이해한다. 어머니는 엘리를 사악하다고까지 하지만 찰리는 솔직하며 착하다고 격려한다. 찰리의 딸을 향한 무한 긍정과 낙관적인 태도가 그의 몸만큼이나 넉넉하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는 교감과 화해가 아닌가 한다. 구원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젊은 전도사 토마스가 자주 나오지만 어쩐지 공허하다. 엘리가 위악(僞惡)이라면, 토마스는 위선(僞善)이다. 영화는 위선보다는 솔직한 위악이 오히려 낫다고 말한다. 찰리가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것도 "솔직하게 쓰라"는 것이다. '솔직하자'는 찰리 자신이 다짐하는 말로 들린다.

 

'더 웨일'은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분장상을 받았다. 찰리 역을 맡은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도 좋았지만, 간호사인 리즈 역의 홍 차우도 그에 못지않았다. 낯익은 동양계여서 혹시 한국인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태국인이었다.

 

"인간은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다. 찰리는 생의 마지막에 딸의 마음을 열고 화해하려 한다. 딸이 여덟살 때 썼던 <모비 딕> 독후감을 들으며 찰리는 딸의 속마음이 어떤지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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