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95

마른장마 중에 경안천을 걷다

장마 기간인데 비를 기다리다니 괴이하다. 고향에 전화를 했더니 너무 가물어서 밭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이제는 장마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지만 기분이 착잡한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겨울의 삼한사온이 사라졌듯 뭔가 허전하다. 마른장마 중에 경안천을 걸으러 나갔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 있는 전형적인 여름 날씨였다. 경안천 물은 무척 탁하다. 이 역시 비가 부족한 탓이다. 백로 한 마리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분주히 쫓아다녔다. 아직은 솜씨가 서툴러 보였다. 경안천변에 세워지고 있는 종합운동장은 골조가 거의 완성되었다. 내년에 이곳에서 경기도민 체전이 열릴 것이다. 오후에 들어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집에 돌아올 때는 비가 쏟아졌다. 반가운 비였다. 다행히 금주는 계속 비 소식이 예보되어 있다. 괜히..

사진속일상 2025.07.15

염천 속을 걸어 도서관에 다녀오다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서울 기온이 37.8℃까지 올랐다. 7월 상순 기온으로는 기상 관측 이래 최고값이라고 한다. 우리 고장도 서울만큼은 아니어도 낮 기온이 36℃에 접근했다. 이런 날 노약자는 외출을 자제하라는데, 삐딱이 기질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일부러 나가는 것이다. 그것도 한낮을 택해서. 반환할 책을 배낭에 넣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공사장의 인부들도 일손을 놓은 듯 조용했다. 애써 언덕배기 힘든 길을 골라 걸었다. 그늘도 없었다. 머리 허연 노인네가 이 염천(炎天)의 땡볕 속을 배낭을 메고 걷고 있으니 제정신인가 여기리라. 하지만 내 성정인 걸 어쩌겠는가. 동네 공원을 따라 우회하여 도서관에 닿았다. 도서관에서는 추리소설 세 권을 빌렸다. 세 권 모두 일본 작..

사진속일상 2025.07.09

6월 걷기 통계

한 달여 전에 '삼성 헬스' 앱을 작동시켰다. 너무 몸을 안 움직이는 것 같아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동안은 하루에 몇 보를 걸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수치로 내 걸음이 측정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효과가 있었다. 목표를 정하고 나니 한 번이라도 더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이왕이면 목표를 이루고 팡파르를 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이었다. 앱에 정한 내 하루 목표는 '걸음 수 8000, 활동 시간 90분, 활동 칼로리 300kcal'다. 6월 한 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30일 동안 셋 모두의 목표를 달성한 날은 5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걸음 수에만 한정하면 8000보 이상 걸은 날이 16일이었다. 이틀에 한 번은 8000보 넘게 걸었으니 상당한 성과였다. ..

길위의단상 2025.07.01

대모산을 넘어 모임에 나가다

수서에서 만나기로 한 면목회의 점심 모임에 이왕이면 걷기를 겸해 대모산을 넘어서 갔다. 대모산입구역에서 전철을 내리려 했는데 지나치는 바람에 개포동역에서 산에 들었다. 역에서 10여 분을 걸으면 들머리가 나온다. 살짝 는개가 내리는 산길이 고즈넉하고 예뻤다. 이럴 때는 "아,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삶에 대한 애정이 뿜뿜 솟아난다. 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강남 지역이 뿌옇게 흐려 있었다. 지금은 장마 기간인데 날씨가 이만하길 다행이었다. 개포동 들머리에서 대모산 정상(293m)을 지나 수서까지 가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다. 현재의 내 체력에 딱 적당한 걸음이다. 모임에서는 9박10일의 일정으로 다녀온 G의 여행담에 귀를 기울였다. 여섯 명이 지인인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하여 안내를 받으며 다녔다..

사진속일상 2025.06.27

남한산성 걷기

용두회의 이번 달 트레킹은 남한산성 걷기였다. 남문에서 만나 수어장대를 거쳐 산성마을로 하산하는 가벼운 코스였다. 다섯 명이 함께 했다. 청명한 하늘에다 초여름에 걸맞게 그리 덥지도 않은 걷기 좋은 날이었다. 수어장대가 위치한 청량산 정상은 482m이고, 123층인 롯데월드타워의 높이는 555m이다. 산 꼭대기에서 타워를 올려다보는 셈이다. 친구들이 간식을 즐기는 동안 잠시 수어장대에 들렀다. 이번에는 D750에 20mm를 물려서 들고나갔다. 장롱에서 감방살이를 하고 있는 카메라에 바깥바람을 쐬어주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전적인 셔터음에 기분이 좋았다. 산성마을에서 두부, 파전에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성남으로 내려가 당구를 즐겼다. 여사장님과 함께 친 복식 게임이 재미있었다. 생맥주집에서..

사진속일상 2025.06.13

초여름 뒷산

우리 부부는 서로가 과하다고 느낀다. 아내는 지나쳐서 과(過)하고, 나는 모자라서 과(寡)하다. 아내는 바깥 활동이 많고, 나는 집에 머무는 날이 많다. 아내는 건강에 관심이 많으며 부지런하다. 내 활동량의 서너 배는 될 것이다. 하루에 1만 보 이상 걷는데, 2만 보를 찍는 날도 가끔 있다. 나는 매일을 평균하면 2천 보쯤 될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경고한다. 나는 아내에게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심한 움직임은 해가 된다고 말한다. 반대로 아내는 내 게으름을 탓하며 나무늘보가 되지 말라고 한다. 오전에 아내는 뒷산에 가서 맨발 걷기를 하고 왔다. 나는 집안에서 빈둥거리다가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밖으로 쫓기듯 나왔다. 정처 없이 나왔다가 마을을 지나 뒷산을 걸치고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뒷산은 산모기를 ..

사진속일상 2025.06.12

용인 탄천 2차 걷기

이번에는 용인 탄천을 하류 방향으로 걸었다. 이 구간은 산책로의 상당 부분이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나 있었다.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왔는데 왕복 6km 되는 거리였다. 시간상으로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더 걷고 싶었으나 구름 한 점 없는 따가운 날씨여서 더 이상의 활동은 무리였다. 아무 준비 없이 맨몸으로 나갔더니 이내 갈증이 찾아왔다. 여름이 불시에 쳐들어온 것 같았다. 길에는 금계국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수온이 높아선지 물에는 전에 비해 청태가 많이 끼었다. 청태는 녹조와 달리 하천 수질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다. 보기에는 지저분하지만. 점심은 넷이서 파스타로 했다. 손주는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이제야 어린이 티를 벗는 것 같다.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해 나가는 고통이 보여져서 안스럽기도 하고 대견..

사진속일상 2025.06.02

사전투표를 하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본 투표일에는 집을 떠나 있어야 해서 어제 아내와 사전투표를 했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의 얼토당토않은 비상계엄으로 갑자기 치러지는 선거다. 잘못을 응징하려는 다수의 결의가 크기 때문에 진즉에 승패는 결정되어 있었다. 다른 때처럼 누가 이길까,라고 조마조마하지 않으며 투표할 수 있었다. 10여 일 전에 전에 휴대폰의 '네트워크 연결'을 초기화 했더니 '삼성 헬스' 앱이 활성화되었다. 다시 죽이기도 뭣해서 그냥 쓰고 있는데 걸음수가 체크되니 내 활동량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기록을 보니 두 주 동안에 외출이 여섯 번이었고, 총걸음수는 5만 보였다. 하루 평균 3천 보 가량 걸은 셈이었다. 동년배와 비교해도 많이 뒤처지는 걸음이다. 이 앱으로 자극을 받아야..

사진속일상 2025.05.31

용인 탄천을 걷다

손주를 보러갔다가 낮 시간을 이용해 용인을 관통해 흐르는 탄천을 걸었다. 상류 쪽 탄천은 처음이었다. 탄천(炭川, 숯내)은 용인시 청덕동 법화산에서 발원하여 용인, 성남을 지나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길이 36km의 하천이다. 오늘 걸음은 용인 구성역에서부터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폭이 점점 좁아지면서 작은 개울로 변했다. 흰뺨검둥오리 가족과 쇠백로가 유유히 노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한 시간 정도 걸어 자전거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왔다. 옆에 청덕성당이 있다. 지도에 보니 여기서 600m를 더 가면 탄천 발원지가 있다고 한다. 시간 여유가 없어서 발원지를 찾아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탄천을 중심으로 세 시간 정도 걸었다. ..

사진속일상 2025.05.19

아차산 둘레길을 걷다

용두회에서 아차산 둘레길을 걸었다. 여섯 명이 함께 했다. 3년 전만 해도 아차산 정상을 지나는 코스를 잡았을 텐데 이제는 힘들게 걷지 말자는 분위기다. 세월이 더 흐르면 이런 길마저 벅차게 다가올 거다. 산길을 걷는 친구들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다가왔다. 데크와 흙길로 된 둘레길은 우리 같은 나잇대가 걷기에 딱 적당했다. 조망이 열리는 곳에서는 서울 시내가 펼쳐져 보였다. 활짝 핀 이팝나무 꽃이 눈부셨다. 아까시 향기가 솔솔 풍겨오는 산길이었다. 걸은 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이었다. 긴고랑골에서 걷기를 마치고 마을버스를 타고 군자역으로 나와 해물탕으로 점심을 했다. 안주가 좋아서 소주가 빠질 수 없었다. 루틴대로 당구 한 게임을 하고 일정을 마쳤다. 요사이 당구는 연승 중이다. 스트로크에 신경..

사진속일상 2025.05.09

봄비 내린 뒷산

봄비가 촉촉이 내린 터라 산길 걷기가 최상일 터였다. 오랜만에 백마산 등산을 할 요량으로 김밥 도시락까지 챙겨 집을 나섰다. 그런데 버스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버스 안내 시스템에도 다음 버스 소식이 뜨지 않았다. 30분이 지나서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가까운 뒷산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정류장의 다른 사람들도 자리를 떴다. 최근에 읽은 에 보면 운명의 장난에 희롱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계획을 세운들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돌발 상황이 생겨 넘어지기도 한다. 마치 돌부리에 걸려 쓰러지듯이. 오늘 같은 경우는 일상의 사소한 해프닝이지만 인생의 행로가 바뀌는 터닝포인트도 있다. 인생은 어쩔 수 없음의 연속인 것 같다. 의도치 않게 접어든 길..

사진속일상 2025.05.05

여주 출렁다리와 금은모래강변공원

여주 신륵사 앞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5월 1일 개통했다. 봄바람도 쐴 겸 개통 다음 날 아내와 다녀왔다. 마침 여주 도자기 축제도 열리고 있었다. 현수교인 이 출렁다리는 길이 515m, 높이 30m로 남한강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출렁다리라고 한다. 우리는 금은모래강변공원에 주차하고 강변을 따라 왕복 걸음을 했다. 걷기 위해서 일부러 먼 곳에 주차를 한 것이다. 출렁다리보다도 오가는 강변 풍경이 오히려 더 좋았다. 강 건너편에서 보는 신륵사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강변을 따라 '여강길'이 있다. 국토종단 자전거길도 지나간다. 금은모래강변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공원 가운데로 여강길 1코스가 통과한다. 공원은 넓은 면적임에도 관리가 잘 되고 있..

사진속일상 2025.05.03

초록 뒷산 한 바퀴

봄날씨에 끌려서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간식 담긴 배낭을 메고 스틱까지 준비해서 등산 흉내를 낸 산길 걷기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따사로운 봄 햇살이 환한 날이었다. 신록이 익어가는 산은 초록 세상이었다. 초록은 생명의 색깔이다. 숲은 아기자기한 생명의 약동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안의 생명 에너지가 공명을 일으켜서 엔돌핀이 샘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계절에 산길을 걸으면 존재 자체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자작나무 숲도 초록 새 잎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쉼터에서 바라본 풍경이 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새 아파트가 여럿 들어섰고 공사중인 곳도 있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앞산에 만들어지고 있는 중앙공원이다. 걷기 좋은 산책로와 다양한 편의 시설을 내년에는 만날 수 있..

사진속일상 2025.04.29

신록으로 물든 남한산성 한 바퀴

밤부터 설사가 많이 나와서 오늘 못 나가겠다고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노년이 되니 이런 식의 약속 어긋남이 자주 있다. 수시로 몸에 탈이 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외출하려고 준비중이었는데 그냥 집에 있기도 뭣해서 남한산성으로 행선지를 잡았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산야는 봄의 신록으로 물들고 있다. 이때의 숲 색깔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특히 신록의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연두빛은 너무나 신비하다. 그윽한 생명의 색이다. 이제 막 옹알이를 하는 아기의 얼굴에 서린 미소 같은 것, 부드러움의 완전체 같은 것. 사진으로는 이 색깔이 전해주는 느낌을 도무지 표현할 수 없다. 성곽길을 걸을 때 곁을 스쳐가는 꽃들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제비꽃이 반겼다. 개별꽃, 양지꽃, 붓..

사진속일상 2025.04.22

꽃 피는 아차산

봄의 한가운데라는 내 기준은 벚꽃이 만개한 때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봄은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 어제 지인들과 아차산을 찾았는데 전체 벚꽃 중에 10% 정도만 꽃을 피운 상태였다. 나머지는 아직 꽃봉오리가 맺힌 정도다. 아차산의 봄에서 제일 아끼는 수양벚나무는 다행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벚꽃이 아쉬웠으나 대신 다른 여러 꽃들과 만나 기뻤다. ▽ 홍매  ▽ 청매  ▽ 복수초  ▽ 광대나물  ▽ 개불알풀꽃  ▽ 히어리  ▽ 미선나무꽃  ▽ 개나리  ▽ 앵두꽃  ▽ 진달래(올해 가장 화사한 진달래를 산길에서 만났다)  ▽ 귀룽나무  ▽ 소나무 산책로  ▽ 산 중턱 쉼터에서 보이는 서울 시내  이날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한 날이었다. 산길에서 기쁜 소식을 듣자 지인들 얼굴이 꽃처럼 밝아졌다...

사진속일상 2025.04.05

설렘을 잃은 봄

봄이 왔건만 봄의 설렘을 잃었다.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매해 버릇처럼 쓰는 말이지만 올해는 각별하다. 왜 그런지 굳이 밝힐 필요가 있을까. 헌재 밀실에 숨어서 그분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답답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뒷산에 올랐다. 산길 초입에서부터 생강나무꽃과 진달래가 반겼다. 아무리 시절이 수상해도 봄이 되면 피는 꽃이 반갑지 않으랴. 인간 세상의 혼탁과 무관하게 봄이 찾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박새 소리도 정겨웠다. 너희들은 여전하게 그 모습 그대로구나.  영남 지역에는 산불 피해가 크다. 스무 명이 넘는 인명 피해에다가 사라진 삼림과 숲의 생명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뒷산 정상부의 괭이눈도..

사진속일상 2025.03.27

청계산 진달래능선을 걷다

용두회의 이번달 걷기는 청계산 진달래능선이었다. 진달래가 피는 때에 맞추었더라면 금상첨화였겠으나 꽃이 나오기 전 이른 봄의 산도 좋았다. 산길에서는 봄이 오는 소식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청계산역 2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원터골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원터골 계곡에서는 얼음 녹은 물이 봄을 재촉하듯 재잘거렸다.   진달래능선을 따라 옥녀봉으로 올라간다. 약간의 황사가 있었으나 크게 개의할 정도는 아니었다.   진달래는 긴 겨울잠에서 이제 막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4월 초가 되면 이 길은 분홍색 꽃물결로 일렁이리라.   유일하게 생강나무꽃이 샛노란 봉오리를 선보이고 있었다.  진달래능선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의 모습이다. 먼 시야는 흐릿했다.  친구들은 중턱까지 오르더니 못 가겠다며 다들 쉼..

사진속일상 2025.03.14

파사성과 여강길 8코스

아침에 일어나니 겨울날 치고는 맑고 바람 없이 따스했다. 바깥나들이를 하자고 아내와  의기투합하여 불현듯 떠오른 장소가 파사성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치고 직접 오르지는 못한 성이었다. 파사성(婆娑城)은 여주시 대신면 파사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석성이다. 6세기 중엽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성은 조선 시대에 다시 쌓은 것이며 성의 둘레는 1,800m이고 성벽의 최대 높이는 6.5m로 규모가 큰 편이다. 성 안에서는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러 시기의 건물터가 확인된다. 파사산은 해발 230m로 야트막하지만 산성에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팔랐다.  파사성에 서면 남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사방이 뚫려 있어 경치가 좋다.   여강길 8코스 파사성길이 이곳을 지..

사진속일상 2025.01.25

두루미를 보고 물윗길을 걷다

철원에 가서 두루미를 보고 물윗길을 걸었다. 새로 개통한 세종포천고속도로를 이용하니 오가는 길이 수월했다. 추위가 가시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오른 따스한 날이었다. 아내와 함께 했다. 두루미를 손쉽게 볼 수 있는 곳은 동송읍 이길리에 있는 두리미 탐조대다. 주기적으로 먹이를 뿌려주기 때문에 두루미가 많이 몰려온다. 재두루미가 90%가량 되고, 적은 숫자의 두루미가 섞여 있다. 기러기와 고니도 있다.   이동하는 길 주변의 논에도 서너 마리씩 모여 있는 두리미 가족이 자주 눈에 띄었다. 올해만큼 두루미를 많이 본 적도 없었다. 행복한 날이었다.   오후에는 물윗길을 걸었다. 철원 물윗길 얼음 트레킹은 순담계곡에서 직탕폭포까지 한탄강을 따라가며 걷는 8.5km를 걷는 길이다. 고석정, 승일교, 내대양수장, ..

사진속일상 2025.01.18

찬바람 맞으며 경안천을 걷다

날이 추워졌다.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한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이틀 전이 소한(小寒)이었다. 옛날 어른들이 '소한이 대한네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무렵이면 한차례 추위가 지나갈 만한 때다. 앞으로 사나흘간 강추위가 몰려올 것이라는 예보다. 더 추워지기 전에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경안천에 나갔다. 중무장을 했건만 찬바람이 세게 불어서 눈물, 콧물이 줄줄 흘렀다. 몸도 자꾸 수굿해졌다. 그러나 한남동에서 밤을 새우며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부끄러웠다. 내리는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앉아서 버틴 '키세스 시위대' 사진에 가슴 뭉클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툴툴댄단 말인가.  백로나 왜가리가 드문드문 눈에 띄고,  이 왜가리는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를 않는다. ..

사진속일상 2025.01.08

동네 추경(秋景)

아직 완숙은 아니지만 우리 동네에도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인간의 마을에도 숲에도 가을 향기가 가득하다. 화려하기로 치면 이맘때의 가을과 필적할 계절은 없다. 가을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한낮의 추광(秋光)이 따스했다. 고운 단풍 따라 내 마음도 곱게 물드는 것 같았다.  뒷산 숲에는 가을이 먼저 와 있었다. 오솔길에는 떨어진 낙엽이 수북했다. 촌촌가인인생(村村家人人生)이던가, 우리의 삶도 나뭇잎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 움이 돋아 여름, 가을을 지나 흙으로 돌아간다. 대자연 순환의 흐름 속 시절인연이 나를 이 순간 이 자리에 있게 한다.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다.

사진속일상 2024.11.04

목현천 걷기

가을비가 흠뻑 내린 다음날 목현천 길을 걸었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내일부터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한다. 찾아온 지 얼마 안 된 가을도 더욱 짙어질 것이다. 목현천은 시골의 개울 느낌이 나서 좋다. 고마리가 피어 있는 천변은 고향의 개울을 보는 것 같다. 여름을 지나면서 모래톱이 많이 자랐다. 수질도 이만하면 합격점이다. 그러나 경안천과 합류한 뒤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인간이 버린 오물과 몸을 섞으면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한가로이 놀고 있다.   고마리는 고향을 연상시키는 꽃이다. 고향 마을 앞 냇가에는 가을이 되면 고마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집의 수챗구멍 주변에도 고마리가 가득했다. 고마리가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고마..

사진속일상 2024.10.20

유유히 뒷산

뒷산에 가을물이 들기 시작했다. 계절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지만 산에 들면 느리고 유유하게 찾아온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을 오시는 산길을 자연의 리듬 따라 나도 유유하게 걸었다. 그러고 보니 '유유하다'는 말이 참 좋다.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노년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유유하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사에 어느 정도 초연해야 할 것이다. 우주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니 변화에 거역하지 않는다. 순리로 받아들이면 시달릴 일이 줄어든다. 괴로움은 외부가 아닌 내 마음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종착점은 장자의 목계(木鷄)가 아닐까. 불교의 무아(無我)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없으면서 '내'가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삑 삑 삑삑~" 산길에서는 청딱따구리의 노래가 연신 들려..

사진속일상 2024.10.17

뒷산에 오르다

여름 동안 뒷산에 들지 못했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산모기의 성화를 견디지 못해서였다. 여름 산의 모기는 2차세계대전 때 미국 군함을 향해 돌진하던 일본의 제로센 전투기들 같다. 전에는 손수건을 휘저으며 기어코 오르기도 했으나 요사이는 귀찮아서 아예 산가까이 가지를 않았다. 그러니 뒷산 들기가 거의 다섯 달만이었다. 가을이 되니 성가시게 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산길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눈에 띄지 않는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만 숲에 가득했다. 오랜만에 와서인지 숲은 한층 깊어진 느낌이었다. 경건한 예배당에 든 듯해서 살금살금 걸은 숲길이었다.  법정 스님은 어느 글에서, 여름이 지나간 가을철 산은 '머스마'인 스님들을 설레게 한다고 썼다. 일과가 끝나는 가을날 오후가 되면 선원이고 강원이고 절 안이 텅텅 빈다는..

사진속일상 2024.10.10

장마철의 깜짝 선물

어젯밤에는 내내 빗소리가 들리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갠 하늘이 반겼다. 이런 날 밖에 나가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햇볕을 가득 받을 짧은 복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사람의 기분은 기상 상태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장마 때는 날씨 따라 마음도 눅눅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니 하고 지내지만 장마가 길어질수록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가끔은 오늘처럼 깜짝 선물을 주니 이런 변덕이라면 환영할 만하다. 너무 햇빛이 쨍 나서인지 경안천에 나온 사람은 드물었다.   오늘 걷기의 주제는 하늘과 구름이다. 이런 하늘이라면 아무리 쳐다봐도 지루하지 않다. 푸른 화판에 흰 물감으로 그려지는 풍경에 넋이 나가다.   동쪽 하늘에는 채운(彩雲)도 나타났다.  7월 16일부터 '세..

사진속일상 2024.07.10

장마 시작

세찬 빗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1시였다. 커튼을 젖히니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검은 그림자가 창에 어른거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오래 뒤척였다. 중부 지방에도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 시작 예보가 있었기에 어제는 한껏 햇볕을 쬐기 위해 경안천에 나갔다. 반바지 차림이었다. 앞으로 3주 정도는 우중충한 날씨를 견뎌야 할 것이다. 당연히 햇빛도 그리워지겠지. 따가운 햇살이지만 싫지가 않았다. 그늘을 마다하고 세 시간 가까이 햇빛 속을 걸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교각 옆에서 쉬고 있을 때 떠오른 말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내 길을 가는 거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경우에는 타인과 비교할 때 위축된다. 비교의 대상은 늘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다. 돈이 많든지, 자식 농..

사진속일상 2024.06.30

장마가 시작된 경안천을 걷다

초여름의 불더위를 몰아내는 장마가 찾아왔다. 한때는 기온이 35℃까지 치솟더니 비가 내리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땡볕에서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은 구름이 햇볕을 가려줘서 경안천 걷기에 나섰다. 배낭 안에는 식수, 참외, 떡을 챙겼다. 반바지를 입으니 상쾌했다. 내린 비로 경안천은 황토색이 되었다. 물은 하수 냄새가 섞인 물비린내가 진했다. 길은 군데군데 질척거렸다. 천 건너편에서는 종합운동장 공사가 한창이다.  걸으면서 이것저것 밀려오는 상념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여러 얼굴들이 명멸한다. 그러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여워지기도 하고 어여뻐지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시공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너를 꼬옥 껴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세 시간여를 걸었다. 맨발걷기에 빠진 아내는 ..

사진속일상 2024.06.24

강동그린웨이를 걷다

용두회에서 강동그린웨이를 걸었다. 일자산허브천문공원에서 일자산 능선을 따라 오륜동까지 걸었는데 서울둘레길 7코스와 겹치는 길이었다. 산을 내려와 다시 성내동까지 걸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래봤자 총 걸은 거리는 5km 남짓 되었다. 초여름 햇살이 따가운 날이었다.  산길에 핀 개망초꽃 너머로 하남 시내 아파트 숲이 빽빽했다.   일자산자연공원 안에 있는 논에서는 공원 인부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못줄을 대고 심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바쁜 모내기철이면 조금이라도 일손을 덜려고 논둑에서 못줄대를 잡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쉬워 보였지만 농사 요령이 있을 턱이 없는 소년에게는 그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성내시장에서 보쌈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둔촌동에 있는 당구장에서 오후 시간..

사진속일상 2024.06.14

한강을 걷다(자양역~강변역)

요사이 날씨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더 이상 바라지 못할 정도로 맑고 밝은 하늘과 땅이다. 대기도 깨끗하며 상큼하기 그지없다. 거의 일주일 정도 기적처럼 이어지는 날씨다. 서울에서 1차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랜만에 한 시간여 한강변을 걸었다. 서울을 떠난 뒤로는 한강을 걸을 일이 없어졌다. 자박자박 내딛는 걸음마다 아스라하면서 쓸쓸한 추억이 되살아났다. 버드나무 그늘에 앉아 강물이 돌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쉬기도 했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한강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두 주 전에 뚝섬한강공원에서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다. 주 행사는 끝났지만 정원 전시는 올 가을까지 계속된다. 작가가 만든 정원과 학생들이 출품한 정원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국제'라는 명칭에 비해 내..

사진속일상 2024.06.05

봄날의 동네 걷기

봄이 한창인 때, 동네 걷기에 나섰다. 우리 동네는 현대와 과거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집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옛날 시골 마을 풍경과 만난다. 전에는 과수원, 논밭이 있었지만 몇 년 전에 논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래도 아직은 농촌 모습이 적게나마 남아 있어 다행이다. 과수원의 복사꽃은 막바지다. 꽃잎은 대부분 낙화하고 일부만 가지에 달려 있다.  걷는 중에 겹벚꽃이 핀 벚나무를 세 그루 만났다. 늦게 보는 벚꽃이 솜사탕 마냥 풍성하고 달콤했다. 꽃그늘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니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예쁜 창문을 가진 집은 유치원 건물이다.  마을을 지나 신록 가득한 뒷산으로 올라갔다.  뒷산을 넘어 건너편에 있는 이웃마을까지 가려한다. 이번에..

사진속일상 2024.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