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한창인 때, 동네 걷기에 나섰다. 우리 동네는 현대와 과거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집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옛날 시골 마을 풍경과 만난다. 전에는 과수원, 논밭이 있었지만 몇 년 전에 논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래도 아직은 농촌 모습이 적게나마 남아 있어 다행이다.
과수원의 복사꽃은 막바지다. 꽃잎은 대부분 낙화하고 일부만 가지에 달려 있다.
걷는 중에 겹벚꽃이 핀 벚나무를 세 그루 만났다. 늦게 보는 벚꽃이 솜사탕 마냥 풍성하고 달콤했다. 꽃그늘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니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예쁜 창문을 가진 집은 유치원 건물이다.
마을을 지나 신록 가득한 뒷산으로 올라갔다.
뒷산을 넘어 건너편에 있는 이웃마을까지 가려한다. 이번에는 새 길을 따라 내려갔다. 처음 가는 길은 늘 설렘을 준다. 애기나리들이 모여 사는 곳을 지나고,
산 아래에는 이택제(麗澤齋)가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순암 안정복(安鼎福, 1712~1791) 선생이 1761년에 지은 서재 건물이다. 부재 등의 교체가 있었지만 가옥의 기본 구조는 당시와 같다고 한다. 문이 잠겨 있어 안에 들어갈 볼 수는 없었다. 선생은 다산과 같은 남인 계열의 지식인으로 이곳에서 살며 후학을 가르치고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고장이 천주교의 발상지임과 함께 실학과도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택재 앞에는 '홀로 앉아서'라는 선생의 시비가 있다. 선생의 다른 시를 하나 찾아 읽어본다. 딱 이 계절에 지은 듯한데 '울적한 봄날이 시름겨워 내 마음 편치 않아'라는 구절이 내 가슴에도 젖어든다.
黯黯春愁自不平
鳥啼花落總關情
王孫芳草年年恨
謾託空山蜀魄聲
울적한 봄날이 시름겨워 내 마음 편치 않아
새가 울고 꽃 지는 게 모두가 마음에 닿는구나
귀한 손도 찾지 않아 해마다 푸른 풀에 한 맺히니
빈산에서 우짖는 두견에게 떠넘겨 볼까 하네
- 春愁(봄날에 시름겨워) / 안정복
점심으로 이 동네 보신탕을 먹었다. 보신탕은 문이 삐걱거리는 이런 허름한 집이라야 제 맛이 난다. 보신탕을 규제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음식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빛공원을 돌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섶에서 이런 게시문을 봤다.
"남을 위해 사는 착한 사람 말고, 나를 위해 사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그래, 맞아,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동네를 걸어 뒷산을 넘고 이웃 동네를 거쳐 한 바퀴 돌아오니 세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마음이 평화로웠던 오늘 동네 걷기였다.
할아버지 기일이서 저녁에는 성당 연미사에 참예했다. 오늘 성경 구절 중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오래 생각했다. 기독교의 핵심이 이 말씀에 담겨 있지 않나 싶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라면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과도 하나일 터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하나라면, 그리고 기독교인이 이 사실을 깊이 내면화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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