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58

사기[32]

한나라 5년 정월에 제나라 왕 한신을 옮겨서 초나라 왕으로 삼고 하비에 도읍을 정하게 했다. 한신은 초나라에 이르자 일찍이 밥을 먹여 주었던 무명 빨래를 하던 아낙을 불러 1000금을 내렸다. 또 하향의 남창 정장에게 100전을 내리면서 말했다."그대는 소인이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다가 중도에서 그만뒀기 때문이다."또 자기를 욕보인 젊은이들 가운데 자기에게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게 하여 모욕을 주었던 자를 불러 초나라의 중위로 삼고, 여러 장군과 재상에게 알렸다."이 사람은 장사일지니, 나에게 모욕을 주었을 때에 내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름이 드러날 것이 없기 때문에 참고 오늘의 공을 이룬 것이다." - 사기(史記) 32,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  한신(韓信)은 젊..

삶의나침반 2024.12.22

사기[31]

영포의 총애를 받는 희첩이 병들어 의사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의사의 집은 중대부 비혁의 집과 문을 마주 보고 있었다. 희첩은 자주 의사의 집에 갔다. 비혁은 자신이 한때 영포의 시중이었으므로 많은 선물을 바치고 그녀를 따라가 의사의 집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희첩이 왕을 모시면서 무슨 말 끝에 비혁의 장점을 칭찬하니, 왕이 화가 나서 말했다."너는 그를 어디서 알게 되었느냐?"희첩이 사정을 자세히 말하자 왕은 그와 정을 통하지 않았나 의심하였다. 비혁은 겁이 나서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왕이 더욱더 화가 나서 비혁을 체포하려 하니, 그는 영포가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밀고하려고 역마를 타고 장안으로 떠났다. 영포는 사람을 보내 뒤쫓게 했으나 미치지 못했다. 비혁은 장안에 이르러 글을 올려..

삶의나침반 2024.12.11

사기[30]

여후(呂后)는 고제(高帝)에게 이렇게 말했다."팽월은 장사이므로 지금 그를 촉 땅으로 옮겨 보내는 것은 스스로 근심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니, 그를 죽이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소첩이 삼가 그를 데리고 왔습니다."그리고 여후는 곧 팽월이 사인을 시켜 팽월이 다시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말하게 했다. 정위 왕염개가 그의 일족을 모두 죽이자고 청했다. 고제가 허락하니, 마침내 팽월의 일족은 모두 죽고 그의 나라도 없어졌다. - 사기(史記) 30,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팽월과 위표는 초한전쟁 시기에 한나라 유방/고제를 도와 큰 전공을 세운 장군이다. 팽월은 도둑질을 하며 지내던 놈팽이였으나 진나라가 망해가는 혼란한 시기에 민란에 합류해서 우두머리가 되어 높은 지위까지 오르고 왕이 되었다. 위표도 비슷..

삶의나침반 2024.12.06

사기[29]

"한나라가 장이를 죽인다면 따르겠소."이에 한왕은 장이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 죽이고 그 머리를 진여에게 보냈다. 진여는 그제야 군대를 보내 한나라를 도왔다. 그러나 한나라가 팽성 서쪽 싸움에서 지고, 장이도 죽지 않았음을 알고는 곧 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한나라 3년에 한신은 이 위나라 땅을 평정했다. 또한 한왕은 장이와 한신을 보내 조나라를 정형에서 깨뜨리고 지수 가에서 진여를 베고 조왕 헐을 뒤쫓아 양국 땅에서 죽였다. 한나라는 장이를 조나라 왕으로 세웠다. - 사기(史記) 2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장이와 진여는 진나라 말기의 초한 쟁패시대에 활약한 인물이다. 젊은 유생 시절 두 사람은 서로 목이 달아나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만큼 깊은 교분을 쌓으며 지냈다. 핍박을 받을 때는 서로 도우며 ..

삶의나침반 2024.11.28

사기[28]

사자가 말했다."나는 조칙을 받아 장군에게 형을 집행할 뿐이오. 감히 장군의 말씀을 폐하에게 전할 수 없소."몽염은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내 죄는 정녕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요동까지 장성을 만여 리나 쌓았으니, 이 공사 도중에 어찌 지맥을 끊어 놓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내 죄로구나."그러고는 약을 먹고 죽었다. - 사기(史記) 28, 몽염열전(蒙恬列傳)  몽염 장군은 진시황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진시황이 죽자 조고의 간계에 빠져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인물이다. 정변이 일어나면 위협이 되는 자는 제거될 수밖에 없다. 몽염은 만리장성을 쌓고 북방에서 30만 대군을 지휘하며 흉노를 지키..

삶의나침반 2024.11.21

사기[27]

이세황제(二世皇帝) 2년 7월, 이사에게 오형(五刑)을 갖추어 그 죄를 논하고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를 자르도록 하였다. 이사는 옥에서 나와 함께 잡혀 있던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내 너와 함께 다시 한번 누런 개를 끌고 상재 동쪽 문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구나."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은 소리 내어 울고 삼족이 모두 죽음을 당했다. 망이궁에 있은 지 사흘 만에 조고가 위사(衛士)들에게 거짓 조서를 내려 흰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궁궐로 향하게 하고, 자신은 한 발 앞서 궁궐로 들어가 이세황제에게 이렇게 말했다."산동의 도적떼가 크게 쳐들어왔습니다."이세황제가 망루에 올라 이것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니, 조고는 이 틈을 타 이세황제를 위협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도..

삶의나침반 2024.11.07

사기[26-2]

형가가 한단에서 돌아다닐 때 노구천이란 자가 형가와 박 놀이를 했는데, 길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노구천이 성을 내고 꾸짖자 형가는 아무 말 없이 달아나 결국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형가는 연나라로 가서, 연나라의 개 잡는 백정과 축을 잘 타는 고점리라는 이와 친하게 지냈다. 형가는 술을 좋아해 날마다 개 백정과 고점리와 함께 연나라 시장 바닥에서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는 그 소리에 맞추어 시장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 즐겼다. 그러다가 서로 울기도 하였는데 마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자유분방했다. 형가는 비록 술꾼들 사이에서 놀았지만 그 사람됨이 신중하고 침착하며 책을 좋아했다. 그는 제후국을 떠돌면서 한결같이 그곳의 현인, 호걸, 장자들과 사귀었다. 그가..

삶의나침반 2024.10.19

사기[26-1]

"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꾸민다고 했다. 지금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내 기필코 원수를 갚은 뒤에 죽겠다. 이렇게 하여 지백에게 은혜를 갚는다면 내 영혼이 부끄럽지 않으리라."그러고는 마침내 성과 이름을 바꾸고 죄수가 되어 조양자의 궁궐로 들어가 변소의 벽을 바르는 일을 했다. 몸에 비수를 품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 양자를 찔러 죽이려는 생각이었다.양자가 변소에 가는데 어쩐지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그래서 변소 벽을 바르는 죄수를 잡아다 조사해 보니 그가 바로 예양이었다. 그의 품속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예양은 이렇게 말했다."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했소."그러자 주위에 있던 자들이 그의 목을 베려고 하였다. 그때 양자가 ..

삶의나침반 2024.10.13

사기[25]

자초는 진나라의 많은 서얼 중 한 사람으로서 제후 나라의 볼모이므로 수레와 말과 재물이 넉넉하지 않고 생활이 어려워 실의에 빠져 있었다. 여불위가 한단에서 장사하다가 그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말했다."이 진귀한 재물은 사 둘 만하다."그리고 자초를 찾아가 설득했다."나는 당신의 가문을 크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자초는 웃으면서 말했다."먼저 당신 가문을 크게 만든 뒤에 내 가문을 크게 만들어 주시오."여불위가 말했다."당신이 모르는 모양인데, 제 가문은 당신 가문에 기대어 커질 것입니다."자초는 그 말뜻을 깨닫고 안으로 불러들여 마주앉아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여불위는 이렇게 말했다."진나라 왕은 늙었고 안국군이 태자가 되었습니다. 남몰래 들은 말로는 안국군이 화양 부인을 총애하시는데 화양 부인에게는..

삶의나침반 2024.09.28

사기[24-2]

그만두자꾸나!나라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홀로 답답한 마음 누구에게 말하랴!봉황새는 훨훨 날아 높이 갔네.스스로 날갯짓하며 멀리 가 버렸네.깊은 연못 속 신룡(神龍)은깊숙이 잠겨 스스로 제 몸을 소중히 한다네.밝은 빛 마다하고 숨어 지낼 뿐어찌 개미, 거머리, 지렁이와 놀랴?성인의 신덕(神德)을 소중히 여기고탁한 세상 멀리하여 스스로 숨네.준마도 고삐를 매어지게 한다면어찌 개나 양과 다르다 하랴!어지러운 세상에서 머뭇거리다 재앙 받은 것,또한 선생의 허물이로다!천하를 두루 둘러보고 어진 임금을 도와야 할 터인데어찌 이 나라만 고집했는가?봉황새는 천 길 높이 하늘 위로 날다가덕이 밝게 빛나는 걸 보면 내려오지만,작은 덕에서 험난한 징조를 보면날개를 쳐 멀리 날아간다.저 작은 못이나 도랑이어찌 배를 삼킬 만한..

삶의나침반 2024.09.22

사기[24-1]

굴원은 강가에 이르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가를 거닐면서 읊조렸다. 그의 얼굴빛은 꾀죄죄하고 모습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야위었다. 어떤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당신은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굴원이 대답했다."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어부가 물었다."대체로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 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셨습니까?"굴원이 대답했다."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

삶의나침반 2024.09.14

사기[23-2]

"오늘날 임금들은 천하의 뛰어난 선비들을 무거운 권력에 눌려 엎드리게 하고, 세력 있는 지위만을 제일로 여기므로 얼굴을 돌려 행실을 더럽히면서까지 아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섬기게 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친하고 가깝게 하기를 밟니다. 이렇게 된다면 뜻있는 선비들은 바위 굴 속에서 엎드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충성과 신의를 다하여 대궐 밑으로 들어가는 자가 있겠습니까?" - 사기(史記) 23-2,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추양(鄒陽,  BC 206~129)은 제나라 사람으로 양나라 효왕의 문객으로 있었다. 그런데 추양을 시샘하는 자들이 참소를 하여 옥에 갇히게 되고 왕은 죽이려고 했다. 추양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될까 봐 옥중에서 왕에게 자신의 심정을 밝히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

삶의나침반 2024.09.05

사기[23-1]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근심을 덜어주고 재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령 보상을 받으려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이니 저 노중련은 차마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 망정 세상을 가볍게 보고 내 뜻대로 하겠노라!" - 사기(史記) 23-1,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노중련(魯仲連)은 제나라 사람으로 권력과 부보다는 명예를 귀하게 여기는 선비였다. 벼슬을 탐하지도 않았다. 노중련이 조나라에 있을 때 조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가 포위되는 위기에 놓였다. 직전에 조나라 군사 40여 만 명이 생매장 당한 장평전투가 있었다. 이때 이웃 나라를 설득해 연합전선을 펴서 진..

삶의나침반 2024.08.26

사기[22]

전단은 성안에서 소 1000여 마리를 모아 붉은 비단에 오색으로 용무늬를 그려 넣은 옷을 만들어 입히고, 쇠뿔에는 칼날을 붙들어 매고 쇠꼬리에는 갈대를 매달아 기름을 붓고 그 끝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성벽에 구멍을 수십 개 뚫어 그 구멍으로 소를 내보내고, 장사 5000명이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꼬리가 뜨거워지자 소가 성이 나서 연나라 군대의 진영으로 뛰어드니 연나라 군사는 한밤중에 크게 놀랐다. 쇠꼬리에 붙은 횃불은 눈부시게 빛났는데, 연나라 군사가 자세히 보니 모두 용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쇠뿔에 받히는 대로 모두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장사 5000명이 나뭇가지를 입에 문 채 공격했고, 성안에서는 북을 울리며 함성을 질렀다. 노인과 아이들이 모두 구리 그릇을 두들겨 대며 성원을..

삶의나침반 2024.08.18

사기[21-3]

"예전에 소첩이 괄의 아버지를 모실 때, 그 무렵 제 아들의 아버지는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먹여 살리는 이가 수십 명이고, 벗이 된 사람은 수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왕이나 종실에서 상으로 내려준 물품은 모두 군대의 벼슬아치나 사대부에게 주고, 출전 명령을 받으면 그날부터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아들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되어 동쪽을 향해 앉아서 부하들의 인사를 받게 되었지만 군대의 벼슬아치 가운데 누구 하나 제 아들을 존경하여 우러러보는 이가 없습니다. 왕께서 내려주신 돈과 비단을 가지고 돌아와 자기 집에 감추어 두고 날마다 이익이 될 만한 땅이나 집을 둘러보았다가 그것들을 사들입니다. 왕께서는 어찌 그 아버지와 같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 씀씀이부터 다릅니다. ..

삶의나침반 2024.08.11

사기[21-2]

"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 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 하기 때문이오."염파가 이 말을 듣고는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서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미천한 저는 상경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습니다."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 - 사기(史記) 21-2, 염파인상여열전..

삶의나침반 2024.07.31

사기[21-1]

"지금 신이 진나라에 이르니 왕께서는 신을 별궁에서 만나고 예절을 하찮게 여기며 아주 거만하십니다. 그리고 화씨벽을 받으시고는 비빈들에게 차례로 건네주면서 신을 희롱했습니다. 신은 왕께서 화씨벽을 받은 대가로 조나라에 성을 내줄 마음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화씨벽을 다시 돌려받은 것입니다. 왕께서 기필코 만일 신을 협박하려고 하신다면 신의 머리는 지금 이 화씨벽과 함께 기둥에 부딪쳐 깨질 것입니다." - 사기(史記) 21-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전국시대에 조나라는 강국인 진나라 옆에 위치해서 잦은 침략과 협박을 받았다. 염파와 인상여는 조나라 말기에 장군과 재상으로 있으면서 조나라를 지켜낸 인물이다. 당시 조나라는 천하의 보물이라는 화씨벽(和氏璧)을 가지고 있었다. 진나라가 가만히 두고 볼..

삶의나침반 2024.07.22

사기[20]

"신은 모욕스러운 비방으로 선왕의 명성을 떨어뜨릴까 봐 가장 두렵습니다. 이미 연나라를 버리고 조나라로 가는 큰 죄를 지었는데, 또 연나라가 지친 틈을 타 조나라를 위하여 연나라를 쳐서 연나라에게 앞서 저지른 죄를 요행으로 면해보려는 것은 도의상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신은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자주 군자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다만 왕을 모시는 신하들이 주위 사람들의 말을 가까이하여 멀리 내쳐진 신의 행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할까 염려되어 감히 글을 올려 말씀드립니다. 부디 군왕께서 신의 뜻을 마음으로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삶의나침반 2024.07.08

사기[19-4]

채택이 말했다."제가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저 네 사람이 화를 입었는데 당신은 어찌 거기에 머무르려 하십니까? 당신은 어째서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되돌려 어진 사람에게 물려주도록 하고 물러나 바위 밑에서 냇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게 되면 반드시 백이 같이 청렴하다는 이름을 얻고 길이 응후라 불리며 대대로 제후의 지위를 누릴 것입니다. 허유나 계자처럼 겸양하는 마음이 있다고 칭찬을 받으며, 왕자교나 적송자 같이 오래 살 것입니다. 재앙을 입고 삶을 마치는 것과 비교하면 어느 편이 낫겠습니까? 당신은 어디에 몸을 두려 합니까? 차마 떠나지 못하고..

삶의나침반 2024.07.01

사기[19-3]

"우경은 어떤 인물이오?"이때 후영이 옆에 있다가 말했다."사람이란 본래 알기가 힘들지니 남을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우경이란 인물은 짚신을 신고 챙이 긴 삿갓을 쓴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조나라 왕을 한 번 만나 백옥 한 쌍과 황금 100일을 받았고, 두 번 만나 상경에 임명되었으며, 세 번 만나 재상의 인수를 받고 만호후에 봉해졌습니다. 그때는 천하 사람들이 다투어 그를 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위제가 궁지에 빠져서 곤란해져 우경에게 매달리자, 우경은 높은 작위와 봉록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재상의 인수를 풀어놓고 만호후의 봉록도 버리고 몰래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남의 곤궁함을 긴급하게 여겨 공자를 의지하러 온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어떤 인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사람이란 본래 알..

삶의나침반 2024.06.22

사기[19-2]

범저가 말했다."네 죄가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수고가 대답했다."제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 속죄해도 오히려 부족합니다."범저가 말했다."네 죄목은 세 가지이다. 너는 예전에 내가 제나라와 내통한다고 여겨 나를 위제에게 모함했으니 첫 번째 죄이다. 위제가 나를 욕보이기 위하여 변소에 두었을 때 말리지 않았으니 두 번째 죄이다. 위제의 빈객들이 취하여 번갈아 가며 내게 오줌을 누었으나 그대는 모른 척했으니 세 번째 죄이다. 그러나 오늘 그대가 죽음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두꺼운 명주 솜옷을 주면서 옛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대를 풀어주겠다."이렇게 말을 끝냈다. 범저는 궁궐로 들어가 소왕에게 보고하고 수고를 숙소로 돌려보냈다.수고가 범저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가자, 범저는 크게 잔치를..

삶의나침반 2024.06.12

사기[19-1]

양후가 왕계에게 물었다."당신은 제후의 식객 따위는 데려오지 않았을 테지요. 그런 자들은 쓸모도 없으며 남의 나라를 어지럽힐 뿐이오."왕계가 대답했다."감히 그러지 못합니다."양후는 그대로 헤어져 떠나갔다. 범저가 말했다."저는 양후가 지혜로운 선비라고 들었는데, 일처리는 더디군요. 방금 수레 안에 사람이 숨어 있지 않나 의심하면서도 뒤져 보는 것을 잊고 가더군요."그리하여 범저는 수레에서 내려 달아나며 말했다."이 사람은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10리 남짓 갔을 때 정말로 양후는 기마병을 보내와 수레를 뒤지게 했으나 아무도 없으므로 그냥 돌아갔다. 왕계는 드디어 범저와 함께 함양으로 들어갔다. - 사기(史記) 19-1,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범저(范雎)의 일생에서 여러 결정적 장면이 나오지만 ..

삶의나침반 2024.05.29

사기[18]

"초나라 왕께서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이 친형제보다 더합니다. 이제 당신은 20년이 넘게 초나라 재상으로 계셨고 왕께는 아들이 없습니다. 만일 뒤에 왕이 돌아가시고 왕의 형제가 왕위에 오르면 초나라는 임금이 바뀌고, 새 군주는 예전부터 친밀했던 사람들과 친척들을 소중히 여길 것이니, 당신이 어찌 오래도록 총애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당신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정권을 잡은 지 오래니 왕의 형제들에게 예의에 벗어난 행동도 많이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형제가 왕위에 오르면 재앙이 당신 몸에 미치게 될 텐데 어떻게 재상의 인수와 강동이 봉읍을 지닐 수 있겠습니까? 지금 소첩만 임신할 것을 알 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소첩이 당신의 총애를 받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삶의나침반 2024.05.23

사기[17-2]

조나라 효성왕은 신릉군이 진비의 군사를 속여 빼앗아 조나라를 존속시켜 준 일을 고맙게 여겨 평원군과 상의하여 성 다섯 개를 공자의 봉읍으로 주려고 했다. 신릉군은 이 이야기를 듣고 교만한 마음이 생겨 공을 자랑하는 안색을 보였다. 그러자 빈객 중 한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세상일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 입장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지만 위나라 입장에서 보면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 공로가 있다고 하시니, 이는 공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이 ..

삶의나침반 2024.05.12

사기[17-1]

공자(신릉군)는 사람됨이 어질고 선비들에게 예의로 대우했다. 선비가 어질든 그렇지 않든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예를 갖추어 사귀고, 자기가 부귀하다고 해서 교만하게 구는 일이 없었다. 그의 어짊에 선비들이 수천 리에서 앞을 다투어 몰려와 공자에게 몸을 의지하여 식객이 3000명이나 되었다. 그 무렵 제후들은 공자가 어질고 식객이 많음을 알고 섣불리 위나라를 공격하려 하지 않은 지 10여 년이나 되었다. - 사기(史記) 17-1,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4 공자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위나라 신릉군(信陵君)이다. 신릉군은 위나라 소왕의 막내아들로 이름은 무기(無忌)였다. 사마천은 신릉군이 어질고 겸손하며 선비들을 존경하면서 사사로운 이익보다 나랏일을 중시한 것을 높게 평가한다. ..

삶의나침반 2024.04.26

사기[16]

평원군이 말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문하에 3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모수가 말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 사기(史記) 1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진나라가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 왕은 평원군을 초나라로 보내 합종을 맺고..

삶의나침반 2024.03.30

사기[15-2]

풍환이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고 나서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길을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맹상군..

삶의나침반 2024.03.23

사기[15-1]

"내 너에게 이 아이를 버리라고 했는데 감히 키운 것은 무엇 때문이냐?" 문(文)이 머리를 조아리며 어머니 대신 말했다. "아버님께서 5월에 태어난 아들을 키우지 못하게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영이 대답했다. "5월에 태어난 아들은 키가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롭다고 하기 때문이다." 문이 또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을 하늘로부터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으로부터 받습니까?" 전영이 대답하지 않자 문이 다시 말했다.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서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그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전영이 말했다. "너는 그만하여라." - 사기(史記) 15-1, ..

삶의나침반 2024.03.15

사기[14-2]

순경(荀卿)은 조나라 사람인데 쉰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나라에 건너와 학문을 닦았다. 제나라 양왕 때에는 순경이 가장 나이 많은 스승이었다. 제나라에서는 열대부 자리가 모자라면 그때마다 채워 넣었는데 순경은 세 차례나 좨주가 되었다. 제나라 사람 중에서 어떤 이가 순경을 참소하자 그는 초나라로 떠났다. 초나라의 춘신군은 그를 난릉의 현령으로 임명했다. 춘신군이 죽자 순경도 관직에서 쫓겨났지만 이 일로 집안 대대로 난릉에서 살았다. 이사(李斯)는 일찍이 순경의 제자였는데 훗날 진나라 재상이 되었다. 순경의 시대에는 세상의 정치가 혼탁했으며 멸망하는 나라와 난폭한 군주가 잇달아 나오고, 성인의 기본적인 도리를 닦아 몸으로 실천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무속에 빠져 길흉화복의 징조를 믿고 못난 유학자들이 하..

삶의나침반 2024.03.04

사기[14-1]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다. 그는 자사(子思)의 제자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맹자는 학문의 이치를 깨우친 뒤 제나라 선왕을 섬기려고 했지만, 선왕이 자신의 주장을 실행하지 않으므로 양나라로 갔다. 양나라 혜왕도 맹자의 주장을 입으로만 찬성하고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의 주장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 실제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진나라는 상군(商君)을 등용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화했으며, 초나라와 위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여 싸움에서 이겨 적국을 약화시켰다. 제나라 위왕과 선왕이 손자(孫子)와 전기(田忌) 같은 인물을 기용해서 세력을 넓혔으므로 제후들은 동쪽으로 제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과 연횡에 힘을 기울이고 남을 침략하고 정벌하는 것..

삶의나침반 202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