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26-2]

샌. 2024. 10. 19. 11:03

형가가 한단에서 돌아다닐 때 노구천이란 자가 형가와 박 놀이를 했는데, 길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노구천이 성을 내고 꾸짖자 형가는 아무 말 없이 달아나 결국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형가는 연나라로 가서, 연나라의 개 잡는 백정과 축을 잘 타는 고점리라는 이와 친하게 지냈다. 형가는 술을 좋아해 날마다 개 백정과 고점리와 함께 연나라 시장 바닥에서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는 그 소리에 맞추어 시장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 즐겼다. 그러다가 서로 울기도 하였는데 마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자유분방했다. 형가는 비록 술꾼들 사이에서 놀았지만 그 사람됨이 신중하고 침착하며 책을 좋아했다. 그는 제후국을 떠돌면서 한결같이 그곳의 현인, 호걸, 장자들과 사귀었다. 그가 연나라로 가자 연나라의 숨어 사는 선비 전광 선생도 그를 잘 대접했으며 형가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 사기(史記) 26-2, 자객열전(刺客列傳)

 

 

형가(荊軻)는 중국 역사상 제일 가는 자객이다. 암살의 대상이 진시황이었다는 사실도 한 몫 했으리라. 형가는 위나라 출신이었지만 뜻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녔다. 이 내용은 <사기>에서 그의 인물됨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작은 다툼에는 끼질 않았고, 백정과 어울리는 등 행동이 파격적이었다. 그는 의협심이 강한 선비였으며 품은 뜻이 크고 침착하며 자유분방했다.

 

군사 강국이었던 진나라가 위나라, 조나라를 쳐부수고 연나라 코 밑까지 쳐들어왔다. 연나라는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진시황(당시는 진왕)을 암살하기 위해 자객 형가를 보낸다. 형가는 진시황 면전에까지는 갔으나 숨겨둔 단검을 빼서 찌르려고 할 때 천운은 진시황 편이었다. 단검이 빗나가고 형가는 그 자리에서 난도질 당하고 만다. 이 장면은 영화 '영웅'에서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진시황을 죽이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업을 시도한 형가의 이름은 남았다. 사마천은 말한다. "그가 펼친 뜻이 분명하고 제 뜻을 속이지도 않았으니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어찌 허망한 일이겠는가." 암살 시도 뒤 1년이 안 되어 연나라는 멸망했다.

 

<사기>에는 위 글에 나오는 노구천과 고점리의 후일담이 나온다. 형가와 장기를 두며 다투었던 노구천은 형가의 암살 미수 소식을 듣고 훌륭한 인물을 알아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다. 형가와 축을 타며 놀았던 고점리는 뛰어난 연주 솜씨가 알려져 진시황 앞에까지 나아갔다. 형가의 친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진시황은 그의 솜씨가 아까워서 눈을 멀게 한 뒤 연주를 하게 했다. 고점리는 진시황 곁에 있을 때 축 속에 숨긴 납덩어리를 던졌으나 진시황을 맞추지 못하고 역시 죽임을 당했다. 그 뒤부터 진시황은 죽을 때까지 타국 출신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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