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25]

샌. 2024. 9. 28. 10:49

자초는 진나라의 많은 서얼 중 한 사람으로서 제후 나라의 볼모이므로 수레와 말과 재물이 넉넉하지 않고 생활이 어려워 실의에 빠져 있었다. 여불위가 한단에서 장사하다가 그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말했다.

"이 진귀한 재물은 사 둘 만하다."

그리고 자초를 찾아가 설득했다.

"나는 당신의 가문을 크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자초는 웃으면서 말했다.

"먼저 당신 가문을 크게 만든 뒤에 내 가문을 크게 만들어 주시오."

여불위가 말했다.

"당신이 모르는 모양인데, 제 가문은 당신 가문에 기대어 커질 것입니다."

자초는 그 말뜻을 깨닫고 안으로 불러들여 마주앉아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여불위는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 왕은 늙었고 안국군이 태자가 되었습니다. 남몰래 들은 말로는 안국군이 화양 부인을 총애하시는데 화양 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으니, 왕의 후사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화양 부인뿐입니다. 지금 당신 형제는 스무 명도 더 되고, 당신은 둘째 서열인데다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제후의 나라에 볼모로 있습니다. 그러니 만일 왕이 세상을 떠나고 안국군이 왕위에 오르면 당신은 형이나 여러 형제와 아침저녁으로 태자 자리를 놓고 싸울 수도 없습니다."

자초가 물었다.

"옳습니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불위가 대답했다.

"당신은 가난하고 객지에 나와 있어 어버이를 공손히 섬기거나 빈객과 사귈 힘이 없습니다. 네가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당신을 위해 1000금을 갖고 서쪽으로 가서 안국군과 화양 부인을 섬겨 당신을 후사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자초는 이에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반드시 당신 계획대로 된다면 진나라를 그대와 함께 나누어 가지도록 하겠소."

 

- 사기(史記) 25,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한나라의 상인이며 거부였던 여불위(呂不韋)는 욕심이 끝이 없었다. 재산을 불리고 지키자면 권력과 한 몸통이 되어야 함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는 한나라에 볼모에 와 있던 진나라 왕족 자초(子楚)에게 통 큰 투자를 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남달랐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대목은 여불위와 자초가 처음 만나서 의기투합하는 장면이다.

 

여불위의 막후 노력으로 자초는 진나라로 돌아가 왕[장양왕]이 되었다. 장양왕은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고 낙양의 10만 호를 식읍으로 주었다. 여불위는 소원대로 권력과 재물을 한 손에 움켜쥐게 되었다. 장양왕이 3년 만에 죽고 아들이 즉위했는데 그가 바로 진시황이다. 여불위는 어린 왕을 대신해 국정을 좌지우지했음은 물론이다. 진시황을 낳은 여인은 원래 여불위의 첩이었으므로 진시황이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여불위의 물불 가리지 않는 솜씨를 보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다.

 

국정을 농단하던 여불위는 진시황 9년에 노애 사건에 연루되어 독주를 마시고 자진한다. 노애 사건은 진시황의 어머니인 태후와 여불위가 얽힌 진나라 최대의 섹스 스캔들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천하를 호령했던 여불위의 말로는 비참했다.

 

여불위는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출중했고 이재에 뛰어났다. 동시에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으며 다방면에 관심이 컸던 것 같다. 그는 식객들로 하여금 <여씨춘추>를 쓰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더라도 탐욕이 절제되지 못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여불위는 보여준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회한에 잠겼을 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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