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24-1]

샌. 2024. 9. 14. 10:02

굴원은 강가에 이르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가를 거닐면서 읊조렸다. 그의 얼굴빛은 꾀죄죄하고 모습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야위었다. 어떤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

"당신은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어부가 물었다.

"대체로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 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배 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 사기(史記) 24-1,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굴원(屈原)은 전국시대 초나라에 살았던 시인이자 정치가였다. 초 회왕을 섬기며 진나라에 대항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했으나 모함을 받아 추방되기에 이르렀다. 사마천의 기록을 보면 회왕은 무척 귀가 얇은 왕이었던 것 같다. 간신들의 꾐에 넘어가 결국은 자신도 진나라에 볼모로 잡히고 죽는 신세가 되었다.

 

초 회왕이 죽고 경양왕이 등극했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쫓겨난 굴원은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며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죽기 전 강가에서 한 어부와 만나 나눈 대화가 '어부사(漁父辭)'라는 노래로 전한다. 굴원과 어부의 대화는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이상과 고결함을 지킨다는 것은 세상과의 갈등과 부조화를 감내해야 한다. 굴원은 끝까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념과 지조를 지켰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는 간단치 않다. 이상주의가 지나치면 독단과 오만이 되고. 현실주의가 지나치면 제 잇속만 챙기는 기회주의자가 된다. 인류 역사는 이상과 현실의 투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싸움은 지금 우리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굴원의 삶과 죽음은 현세를 힘들게 살아가는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굴원은 진흙 속에서 뒹굴다 더러워지자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씻어 내고, 먼지 쌓인 속세 밖으로 헤쳐 나와서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연꽃처럼 깨끗하여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워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지조는 해와 달과 그 빛을 다툴 만하다."

 

중국 사람들은 굴원이 죽은 음력 5월 5일을 단오로 지내며 그를 기린다. 이날은 송편을 멱라수에 던지는데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 대신 송편을 먹으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또 중국인들이 즐기는 용선 경주도 물에 빠진 굴원을 구하기 위해 다투어 배를 저어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중국인들의 굴원을 대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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