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23-1]

샌. 2024. 8. 26. 10:20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근심을 덜어주고 재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령 보상을 받으려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이니 저 노중련은 차마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 망정 세상을 가볍게 보고 내 뜻대로 하겠노라!"

 

- 사기(史記) 23-1,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노중련(魯仲連)은 제나라 사람으로 권력과 부보다는 명예를 귀하게 여기는 선비였다. 벼슬을 탐하지도 않았다. 노중련이 조나라에 있을 때 조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가 포위되는 위기에 놓였다. 직전에 조나라 군사 40여 만 명이 생매장 당한 장평전투가 있었다. 이때 이웃 나라를 설득해 연합전선을 펴서 진나라가 물러나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조나라 평원군이 봉지를 내리고 천 금을 주려 했지만 노중련은 사양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때 노중련이 평원군에게 한 말이 인용한 첫 번째 발언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주지만 보상은 받지 않는다는 선비의 자부심을 설파하고 있다.

 

한참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제나라가 연나라의 공격을 받고 많은 성을 빼앗겼다. 전단 장군이 활약하며 국토를 수복하고 있었는데 요성은 1년이 지나도 함락되지 않았다. 이때 노중련이 성을 지키고 있던 연나라 장군에게 편지를 보내 항복을 받아냈다. 사연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연나라 장군은 사흘을 흐느껴 울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성은 자연스레 되찾았다. 제나라 왕은 노중련의 공적을 치하하고 높은 벼슬을 주려고 했다. 노중련은 달아나 바닷가에 숨어 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 망정 세상을 가볍게 보고 내 뜻대로 하겠노라!"

 

노중련은 고상한 선비의 품성을 지키며 살아간 분이다. 어떤 면에서는 도가적 삶을 실천한 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과 담을 쌓지는 않았다. 고통에 처한 이웃을 보면 앞장서서 해결해 주며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단순한 은둔자는 아니었다. 사마천은 앞의 두 사례를 통해 노중련의 올곧고 청빈한 삶을 소개한다. 간신과 기회주의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노중련 같은 선비 정신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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